-
-
수도원의 죽음
C. J. 샌섬 지음, 나중길 옮김 / 영림카디널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정말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 역사 미스터리라는 이름이 붙은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고풍스러운 느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평범한 진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에, 역사 미스터리를 보며 그다지 감흥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수도원의 죽음>의 죽음을 읽기 시작할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던 듯 싶다.
책을 받고 잘 만들어진 책이라는 생각을 하며, 600 페이지가 넘는 책의 두께에 살짝 질리기도 했지만, 읽어 나가면서 역사에 관한 이야기는 짧게 나오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꼽추라는 특색을 가진 주인공 샤들레이크가 등장함으로 한층 내 흥미를 자극했다. 종교에 크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성경 구절은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더 익숙하게 다가갈 수도 있었다. (제목에 수도원이 들어간 것과 역사 미스터리란 사실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장미의 이름>에 관한 언급은 빠질 수가 없었다...)
<Dissolution>이라는 원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제목 <수도원의 죽음>이라는 것은 수도원의 해체를 의미한다. 국왕화 교황의 싸움 이후에 부패한 수도원을 해체시키려는 헨리 8세 국왕과 토머스 크롬웰이 특사를 파견하여 전국에 수도원을 해체하려고 하는 것이고, 특사 중 한 명인 샤들레이크는 살인사건이 벌어진 스칸시 수도원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는 계속해서 살인이 벌어지고, 음모가 밝혀지는 것이다.
수도원과 수도사를 생각하면 굉장히 성스러운 장소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미스터리 팬으로서는 폭풍의 산장과 같이 하나의 추리소설을 위한 좋은 배경의 느낌이다. 남자나 여자만 있는 지루한 곳도 아니고, 여러 인간 군상이 모일 수도 있고. 이 책에서의 느낌은 군대가 사람이 사는 곳이듯, 이곳 수도원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고, 그곳에 사는 수도사들 역시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유혹을 받는 사람들인 느낌이었다.(내가 느꼈던 군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일반 사람들과 다를바 없는 그들 역시 예쁜 여자 하인이 들어오면 꼬시려고 노력을 하는 수도사, 젊은 남자의 육체를 좋아하는 수도사들 등장하는데,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는 여러 종교라는 옷을 입은 사람들도 이들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종교와 관련된 미스터리를 쓰게 되면 과연 종교의 힘, 신의 힘에 관해서 작가는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가에 상당히 흥미를 느낀다. 교황이라는 존재와 그들이 믿는 존재가 그들의 뒤에 있긴 하지만, 그것들의 존재는 항상 멀리 있고, 자신의 옆에는 현실이 있을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과연 작가는 신의 힘을 조금이라도 넣을 것인가, 아니면 역시나 신은 멀리서 바라 보기만 하는 존재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신의 힘이 들어가면 판타지가 되어 버리려나..
책 뒤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몰랐지만, 원래 특사라는 존재는 굉장히 큰 힘을 가진 존재였다. 그렇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 샤들레이크의 행동을 보면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도 않기에 몰랐지만, 자신의 권위를 이 정도면 굉장히 아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매력은 역시 꼽추 탐정인 샤들레이크였다. 처음에 이름을 외우는 것에 약간 고생을 했지만, 다행히 금방 익숙해졌고 그가 하는 행동과 고민이 간절하게 다가왔다. 장애인이 되어 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고민들도 마음에 와 닿았고, 건강한 청년과 아름다운 여인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질투, 옳다고만 생각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의 표현도 아주 좋았다. 꼽추라고 생각해서일지 모르지만,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어딘지 위험해 보였다.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모습도 그렇고..
미궁속으로만 빠질 것 같은 사건도 역시 하나의 계기로 인해 자연스럽게 풀리기 시작하고, 주인공 샤들레이크는 탐정 답게 모든 걸 생각해낸다. 보통 역사 미스터리는 결말이 약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결말부가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사건의 결말도 결말이지만, 주인공의 변화하는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뭐, 어찌 보면 전형적인 미스터리 작품의 결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역사라는 걸 아주 잘 섞은 느낌이다. 책을 읽으며 역사에 파묻히는 느낌이 아니고, 150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느끼게 해 주는 느낌이랄까. 다른 역사 미스터리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미스터리적 재미, 역사적 재미와 감동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두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고나 할까.
역사 미스터리에 관한 선입견을 바꾼, 그리고 연말이면 항상 하는 개인적인 올해의 미스터리에 최고의 자리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는 여유있게 들어갈 만한 작품이었다.
p.s. 원제도 참 멋지지만, 번역판 제목도 잘 갖다 붙였다. 중의성도 느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