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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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마블이라는 게임 덕분에 수도 코펜하겐은 익숙하지만, 사실 덴마크란 나라 자체는 크게 와 닿는 나라는 아니다.  위치도 그렇고 기후도 그렇고, 문화도 물론 그럴 것이다.  이 소설 한 권이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줄 수 있었을까?

  이 소설은 흔히 볼 수 없는 덴마크 소설이다.  덴마크어로 쓰여진 작품을 제대로 번역해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보기에 영역본을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중역이다.  그런데 덴마크를 잘 모르고, 중역인 작품을 읽는데도 참 좋다는 말밖에는.

  주인공 스밀라의 이름을 들었을 때 20 대 중반의 아름다운 금발 여성을 상상했지만, 소설 속에서 그녀는 그런 모습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30 대 후반의 나이, 소설에 살인사건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하드 보일드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모습이랄까.  그럼에도 매력적인 주인공이다.  그녀의 독백을 듣고 있으면 그녀의 생각과 인생에 빠져들게 되고, 그녀가 말하는 눈에 관한 얘기와 수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었다.

  이 소설을 추리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인데, 그 살인이 약간은 독특하다.  살인에는 항상 동기가 필요한데, 이 피해자가 죽음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재산도 없는 어린 소년을 죽임으로써 얻는 게 과연 무엇일까?  덕분에 자살로 보이는 상황에서 주인공 스밀라는 '눈' 을 통해서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 사건이 살인이라는 걸 간파해 내고 단독으로 범인을 찾아 나서게 된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아이가 높은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으므로.  물론 보수는 없다.

  여기서 스밀라의 행동에 관해 이야기가 많을 수 있지만, 그녀의 인생에서의 우선순위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그녀에게 있어 돈이나 명예보다는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던 그 소년이 훨씬 중요했던 것이다.

  스밀라가 하는 행동들 여기저기 숨어 다니고, 넘어지고 피가 나면서도 자신의 집념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서 보면 책의 제목을 '스밀라의 모험' 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나 맞아서 피가 나는 모습을 보면 내 자신에게도 그 아픔이 전해지는 듯했는데, 딕 프랜시스의 소설에서 느꼈던 기분과도 비슷했다.  머리에서 피가 나도 전혀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그곳의 여자들 특히나 사냥꾼의 후예들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책은 도시, 바다, 얼음 이렇게 3 개의 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덴마크라는 나라의 특성상 이런 구성이 가능한 것이다.  육지에서의 수사와 섬으로 향하는 배의 잠입, 그리고 마지막 도착해서의 모습까지.  육지에서는 그네들의 눈의 모습이 그려지고, 바다에서는  찬 바다 바람과 공기, 얼음에서의 차가움이 자꾸만 눈에 잡힐 듯해서, 난로를 틀어주지 않는 주말 추운 기숙사의 방에서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신세가 처량한 느낌이 자꾸 들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묘사를 잘하는지.

  계속 흥미롭게 책을 잡고 읽어나가는 데 중간을 지나고 후반부를 향하고 있으니, 자꾸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책의 내용이 어려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책이 두꺼워서 그랬는지 졸려서 그랬는지, 번역이 이상했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자꾸만 묘사하는 그 추위와 스밀라가 느끼는 아픔 덕분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자꾸만 읽었던 부분을 반복해서 읽게 되고, 다 읽고 나서의 기쁨이 더 컸던 생각이었다.

  책을 덮고 나서 생각해 보니 참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어린 아이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내가 정확히 이해를 했는지 어쨌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나에게 있어선 작품의 플롯이나 살인사건과 해결에 관한 것보다는 '스밀라' 라는 인물 자체와 스밀라가 보는 세상에 관한 묘사가 더욱 기억에 남았다.

  또  개인적인 관심사와 작품을 연관시키자면 수학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스밀라가 가끔 언급하는 내용을 보는 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고, 특히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에 관한 내용을 언급할 때는 과연 이 작품을 발표할 때 정리의 증명이 끝났었는지 궁금증을 갖기도 했다.  또 항해를 하게 되면서 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데 가진 직업 덕분에 'AP 묄러' 라는 회사나 선급이나 선박에 관한 용어가 나오는 것을 보며 조금은 더 즐거울 수 있었다.  마일즈 데이비스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던가?  덕분에 작가를 하려면 아는 것도 많아야겠다는 걸 새삼 다시 느끼기도 했다.

  사건과 음모에 관한 내용도 상당히 뛰어났기에 이 작품을 추리소설로 보느냐 마느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겠고.  그런 거야 어쨌든 상당한 시간이 걸렸음에도 크게 만족할 수 있는 독서였다.  한두 번 정도는 더 읽어야 그녀의 세계를 이해하는 게 좋겠지만, 언제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스밀라가 보여주는 매력적인 세계로 빠져서 보내는 주말을 보내는 것도 즐거운 주말을 보내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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