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을 입은 여인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박노출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보통 전 책을 봤을 때 500 페이지가 넘어가면 '아, 두껍다' 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대하게 됩니다.  그랬으니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제 반응은 '뭐..뭐야..' 였습니다.  읽지도 않고 두께에 질려버린 것이지요.  더군다나 요즘은 소설은 잘 읽지 못하고 속독으로 읽을 수 있는 책들만 골라서 대충 읽는 습관을 들이고 있었기에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몸 생각하며 일찍 자는 게 원인이기도 했겠죠.
 

  아무튼 그런 걱정을 안고 스밀라 보다도 두꺼운 책을 안고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는 구성이 눈에 띄었습니다.  서로 다른 등장인물들의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봤던 오리엔트 특급 살인 등의 작품과 다른 점은 정해진 시간에 발생한 사건에 관해 여러 명이 다른 시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시간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진술을 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서술방식이 발전해서 독초콜릿 사건이나 오리엔트 특급 살인처럼 발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역시나 여러 사람이 진술을 보는 건 커다란 재미였습니다.  당시의 사회상도 느낄 수 있고, 같은 인물에 대해서 다르게 느끼는 사람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추리소설적 재미를 뒷부분에서 느낄 수 있긴 하지만) 이 작품의 재미가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거액의 돈을 상속받게 될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서로 사랑하는 한 남자, 그 여인의 돈을 노리고 있는 귀족이 등장하는 초반부의 내용이야 상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 뒤에 벌어질 이야기에 대해서는 궁금증 때문인지 책을 계속 붙잡고 있게 되더군요.  그렇다고 내용이 상상을 계속 벗어나는 건 또 아니던데..뻔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제 취향일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대충 뒤적여 보니 결말은 이미 프롤로그에서 암시하고 있군요.

 

  아주 좋았던 건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였습니다.  다른 추리소설의 모태가 된 작품일지도 모르겠을 흰 옷을 입은 여인 앤 캐서릭이나 계속해서 로라를 지켜주는 마리안과 정직한 청년 하트라이트, 또 똑똑한 악당의 전형인 포스코 백작이나.  여기 등장하는 하트라이트가 저보다 어리다는 사실이 좀 신기하기도 했습니다.(만 나이로하면 동갑이군요...-_-) 마리안이 결혼을 하지 않고 계속 동생 곁에 남아서 동생을 지켜주는 모습이 나오는데,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엔 로라가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오만과 편견>을 읽으면서도 들었던 의문인데 이 귀족들은 도대체 뭐하면서 먹고 살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만과 편견>에서는 열심히 놀러다니기만 하고, 이 작품에서는 매일 왔다갔다만 할 뿐이니까요.  뭐, 음모를 꾸며서 돈을 마련하는 게 돈을 벌기 가장 쉬운 방법이긴 하겠습니다만...

 

  소설의 압권은 역시 모든 걸 설명하는 백작의 편지였습니다.  작가는 퍼시벌이나 포스코 백작 측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대충 무슨 일이 있을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지만, 마지막 편지에선 '오호'를 연발하며 계속 읽게 만들더군요.  뭐, 결말부에서 주인공 친구가 등장하는 건 약간 뜬금없긴 했죠.

 

  고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미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시대를 뛰어 넘는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출간된지 150 년이 지난 작품이 지금 읽어도 새롭게 느껴지고 이런 뛰어난 재미를 갖고 있는 걸 보면서 '고전'의 힘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출판계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일본 소설을 보면 읽기는 쉽지만 내심 가볍다는 생각이 계속 들고, 한 작가의 작품이 인기가 있으면 한 부라도 더 팔아야겠다는 심정으로 그 작가의 작품을 계속 출간하는 게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 음반시장을 보면 김동률이나 브라운 아이즈의 음반이 잘 나가고 있다고 하네요.  그들의 뛰어난 장인정신이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하는데, <흰 옷을 입은 여인>과 같은 묵직한 고전 작품도 대중에게 인정을 받고 스테디 셀러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2,3의 <흰 옷을 입은 여인>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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