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티콘
제니 페이건 지음, 이예원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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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한참 공부를 하다 잠깐 졸 때 갑자기 방에 들어와 등짝을 후려치던 엄마가 생각난다. 열심히 공부할 땐 쳐다도 안 보던 엄마는 항상 잠시 쉬느라 딴짓을 하거나 잠을 자는 기막힌 시간에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난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딱 그 시간에 맞춘 것일까 하며. 요즘은 드라마도 게임도 엄마 눈치 안 보고 한다지만 그때는 정말 오싹했다. 하지만 엄마의 감시에서 자유로워진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시자가 늘었다. 거리의 CCTV가 자동차의 블랙박스가 어딜 가든 따라다니고, 장 보러 자주 가는 마트도 내 행동을 녹화한다. 우리는 타인의 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감시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아나이스가 생각하는 것처럼.

열다섯 살 아나이스는 수없이 많은 시설로 옮겨 다니고,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잦은 크고 작은 범행들로 아나이스를 보는 경찰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그러다 평소 유난히 아나이스를 싫어하는 여자 경찰을 폭행해 의식이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고 파놉티콘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아이들이 있었다. 문을 닫을 수 없는 방, 감시탑. 자신이 실험실에서 배양된 실험체라고 생각하고 있는 아나이스는 감시탑이 더 가까이서 자신을 감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파놉티콘에서의 추방이 결정되고, 그곳에서 사귄 친구도 죽자 아나이스는 떠나 새로운 이름으로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는 자유의 몸이 된다.


처음에는 파놉티콘이라는 책이 무척 불편했다. 제대로 된 정신 상태를 가진 아이가 할 말과 행동인가 싶었고 이해를 해보려 몇 번을 봐도 내 사고방식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물론, 어른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그런 어른들을 보면서 자랐다면 거칠고 비뚤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버거웠다. 어른들이 어른답지 못한 세상이라 아이가 아이답지 못한 것도 어쩔 수 없다지만 세상에 대항하는 방법이 너무 거칠었기에. 다 ​읽은 지금도 편해진 것은 아니다다만, 약간의 이해가 불편함을 조금 상쇄시켰을 뿐이다. 아나이스가 계속 생각했던 내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등에 대한 것들의 질문들은 나 역시도 해봤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아이였기에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고, 덜 불편할 수 있었다. 책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아나이스가 화자다. 글로 전해지는 아나이스는 무척 생생하다. 마치 모세혈관까지 투명하게 비치는 듯하다. 망상과 공상과 현실이 뒤섞인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꽉 들어찬. 날 것의 불편함이 책을 읽는 내내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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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트롤 : 치질라의 역습 래트브리지 연대기 2
앨런 스노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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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트브리지에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산다. 그 생명체들은 각자의 특징을 가지고 인간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아서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할아버지와 함께 해상 세탁소에서 일을 도와주던 어느 날, 지나가던 백작부인이 널어놓은 빨래를 보고 난리를 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일로 세탁소 식구들은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물어내야하는 억울한 상황에 처한다. 기한 안에 갚지 못하면, 더 큰 벌이 기다리고 있지만 갑작스럽게 큰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고 아서 할아버지가 아파 의사를 불러야 했지만 항상 처방이 같은 의사들을 믿을 수 없어 고민하던 중, 아픈 사람들을 공짜로 치료해주는 시설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는 신문을 보게 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할아버지를 센터 의사에게 보이자 의사는 검은물약을 처방했고 할아버지는 아프기 전보다 더 건강해진다. 


의사는 세탁소 식구들에게 한 번에 돈을 만들 수 있는 일을 제안한다. 배를 타고 검은물약의 재료를 구해오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반대했던 할아버지의 뒤늦은 허락으로 아서는 출항하지 못하고 박스트롤 피시와 함께 배가 정박하는 다음 항구를 향한다. 한편, 세탁소 직원들은 의사의 말에 따라 재료를 구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악랄한 치즈 사냥꾼인 스내처와 일당들이 나타나 이들을 협박하고 배의 지휘권을 빼앗는다. 겨우 배로 숨어 들어온 아서와 피시는 스내처가 장악한 배의 상황에 당황하지만 식구들과 협력하여 스내처를 몰아넣고 배의 지휘권을 돌려받는데 성공한다. 겨우 가둬놓은 스내처 일당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결국 도망치고, 다시 스내처의 말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상상을 했다. 무거운 짐들을 가지고 다녀야 할 때, '짐에 손.발이 달려 집까지 따라오면 좋을텐데'라는. 박스트롤을 처음 본 날, 난 그 상상이 실현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히, 치즈들은 완벽하게 구현된 상상 속 캐릭터였다. 비록 난 무겁고 들기 싫은 물건에 한정되어 치즈는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누군가가 잠시 꿈꿔봤던 세계를 글로 옮겨놓은 듯해 기분이 묘했다이름만큼이나 아기자기하고 귀여웠던 박스트롤은 바깥보다 안쪽에서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책의 내용에 충실한 작은 삽화들이, 가끔 나오는 신문의 기사가, 기계의 설계도가 그 이유다. 글이 빡빡하게 쓰여진 책만 보다 그림과 글이 있는 책을 보니 눈도 쉴 수 있고, 귀여운 그림에 웃음도 났다. 


치질라의 역습이라는 거창한 이름과 본문에 들어가기 전 나오는 치질라의 설명에 조금은 두근거렸다. 마지막으로 도쿄에서 발견되었다는 치질라가 어떻게 그곳까지 올 수 있었을까를 비롯해 표지에서 보이는 치질라는 귀여운데, 마냥 귀엽지는 않겠지, 주인공은 괴물퇴치기를 가지고 있을까하는 갖은 상상을 하며 치질라의 등장을 기다렸었다. 책을 읽어나가며 기대감은 무너졌지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귀여운 박스트롤과 용감한 아서, 그리고 세탁소 식구들의 모험담이 기대감보다 나를 더 즐겁게 해줬기 때문이다. 아서와 할아버지가 개성을 이해하고 다름을 존중하며 다양한 종족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은 행복한 느낌과 존경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책을 통해 모험은 꿈꾸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용기가 없어 모험을 하지 못하는 나 대신 친구와 모험을 떠나준 아서. 그들은 앞으로 어떤 유쾌한 모험을 떠나게 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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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달인이 되려면 잘못된 문장부터 고쳐라 - 우리가 몰랐던 명문장의 진실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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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쓰기는 매번 어렵지만 글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읽고난 후의 서평은 더하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도 신경쓰여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저자의 글쓰기 책을 보지만, 글은 커녕 여전히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서평조차 쓰지 못한다. 씁쓸하지만 조금씩 실력이 나아질거라 생각하며 이 책도 봤다. 책은 글쓰기 달인이 되려면 잘못된 문장부터 고치라고 한다. 어렵고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글쓰는 실력은 확실하게 키워줄 것 같아 책의 내용이 더 궁금했다.


책은 문법을 다룬다. 외국어 공부를 할 때, 매번 문법에서 좌절했다. "한국어는 쉬운데 외국어만 유독 문법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대로된 국어 문법을 설명한 책을 보니 한국어문법도 쉽지 않음을 느꼈다. 책은 우선 문법 설명을 하고 유명저자들의 잘못된 문장을 올바르게 고친다. 고쳐야하는 이유도 적혀있다. 가끔 책을 읽다보면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이 있었다. 이제껏 작가가 글을 잘못쓰는 일은 없을테니 내 이해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은 유명한 작가가 쓴 글이 잘 쓰여진 글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많은 책을 읽었다. 그 많은 책 중에는 읽기 쉬워 술술 읽히는 책이 있었고, 이해하지 못해 읽기 어려운 책도 있었다. 책을 몇 권이나 낸 작가들이 정말 틀린 글을 쓸까하는 의심도 들었는데, 작가의 원문과 문법에 맞게 고친 글을 비교해 읽어보니 이해도가 달랐다. 갑작스러운 영어, 어려운 단어, 미사여구, 긴 문장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잘 읽힌 책은 문장이 간결하고 설명이 직관적이며 쉬운 단어를 쓴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처음에는 주어, 서술어 등 학교를 졸업한 후 볼 일이 없었던 단어들과 마주하기가 어색했다. 이미 배운 것들이지만 잊고 있었다고만 생각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는 정확한 문법을 알지 못해서 어려웠고 모국어의 문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점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부끄러움보다 글쓰기를 알려주는 책은 많지만 제대로 된 문장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그동안 내가 찾던 책을 발견한 것 같아 기뻤다. 아직은 글쓰기 햇병아리도 되지 못하지만, 글쓰기 달인이 될 수 있는 기초를 탄탄히 다져줄 책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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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바다 - 마음을 행복으로 물들이는 컬러링북
아나스타샤 카트리스 지음 / artePOP(아르테팝)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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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을 시작으로 무수히 많은 컬러링 북이 등장했다. 정원, 꽃, 나비, 각종 자연의 생물체들과 도시의 풍경, 요리. 나도 많은 컬러링 북을 가지고 있지만 바다라는 친숙하고도 낯선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은 처음이었다. 처음 접하는 것은 으레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나만의 바다라는 건 어떤 것을 담고 있을까. 많은 감정 중에서도 호기심이 먼저 생겼다. 책 표지의 듬직한 거북이도 마음에 들었고, 혹 내가 모르고 있던 해양생물들을 마음껏 만나볼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감에 기분이 좋았다.

 

 

내 상상 속 바다 풍경과는 사뭇 다른 풍경과 해마가 제일먼저 나를 반겼다. 그만큼 내가 상상력이 없는 건가 싶기도 하고, 책이 이상한 거라고 우겨보고도 싶었다. 자신을 한껏 뽐내고 있는 불가사리, 각종 해조류가 마치 서커스를 하는 듯했다. 그래서 나도 한껏 화려함을 살렸다. 가지고 있는 색연필을 마음껏 사용해 표현했다. 컬러링은 미술에 자신 없는 사람들에게는 스트레스라고 한다. 어떤 색으로 칠할지 고르는 것, 기껏 칠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등이 이유인데 이 세상에 존재할 듯하지 않을 듯한 풍경들을 칠하고 있자니 "어차피 없는데 뭐 어때? 똑같이 칠하려야 그럴 수도 없고"란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역시 컬러링은 마음편한게 최고인 듯!!!




 

 

정체모를 생물들의 정체를 의심해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무리지어 빙글빙글 도는 물고기떼도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면 탐정이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펭귄과 거북이 고래, 해마, 니모, 소라게 등 바다를 통째로 담은 책은 상상력과 추리력을 향상시켜주는 듯 하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생활에 깊숙이 들어온 컬러링 북. 땅 위의 풍경들에 지친, 화려한 꽃과 나비가 지겨워진 사람들이 반길만한 특색있는 바다 속 세계. 조금은 난해하긴 하지만 책 제목 그대로 나만의 바다를 만들 수 있는, 딱 떨어지지 않아 오히려 더욱 풍성한 바다를 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 21세기북스 서포터즈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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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걸스
로렌 뷰키스 지음, 문은실 옮김 / 단숨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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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은 자음과 모음의 장르문학 브랜드다. 단숨에 읽어버릴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작품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고, 말 그대로 단숨에 읽어버렸기에 이번에 나온 샤이닝 걸스에도 기대가 컸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제바스타인 피체크의 작품이 나와 맞았던 것 뿐이었을까. 샤이닝 걸스는 생각 외로 난해했고 그래서 아쉬웠다.

하퍼는 '더 하우스'라는 집을 발견하게 된다. 그 집은 일정시대이긴 하지만 자유롭게 시간을 넘나들 수 있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빛나는 소녀'들을 죽여야했는데, 그는 기꺼이 살인을 하며 그 행위를 즐기기까지 한다. 빛나는 어린 소녀를 찾고, 그 소녀가 컸을 때 다시 찾아가 잔인하게 살해하며 그만의 증표를 현장에 놓고 사라진다. 범행의 흔적과 시신은 있지만 범인을 잡을 수는 없다. '더 하우스'가 더할나위 없는 보호막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한 명의 소녀가 있다. 커비라는 이름의 소녀는 놀이터에서 혼자 놀다가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커비에게 조랑말 인형을 주며, 다시 찾아올거라 말한다. 커비가 대학생이 된 후, 그는 정말 그녀를 찾아왔다. 개와 산책을 하고 있을 때 찾아온 그는 개와 그녀를 무참히 살해한 후 떠난다. 하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커비는 신문사의 인턴이 되어 연쇄살인범이라 생각되는 범인을 잡기위한 단서를 추적해간다.

샤이닝 걸스는 시간을 넘나들며 살인을 해 잡을 수 없는 연쇄살인마와 가까스로 살인마에게서 생명을 건진 소녀의 이야기다. 분명 소재는 흥미로웠고,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었다. 하지만, 막상 읽다보니 연도가 뒤죽박죽으로 섞여있어서 하퍼가 어느시대에 가 있는지 피해자들과의 접점은 언제였는지 정리가 잘 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타임리프 스릴러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복잡했는데, 하퍼와 아이들의 이야기가 짧막하게 왔다갔다하고 갑자기 뚝 이야기가 끊겨서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커비의 살해를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다시 그녀를 찾아왔을 때부터는 현재시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혼란스러운 앞부분과 더불어 '더 하우스'에 얽힌 비밀이 끝내 다뤄지지 않은 점이 못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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