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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송태욱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6월
평점 :
*협찬도서*
인생에는 계절이라는 것이 있다. 인생의 봄에서 한여름까지는 뭔가를 요구하는 어머니의 강한
욕망이 어머니에게 강한 욕망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딸들에게는 미래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
만 단풍이 짙어지고 나서는 어머니의 강한 욕망이 겉돌기 시작했다. 엄동설한이 되어도 계속
해서 허덕이는 어머니는 섬뜩했다. 섬뜩할 뿐만 아니라 인생의 비극이 종종 그러는 것처럼 희
비극적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세월은 흐른다. 어머니의 전두엽 파괴가 점점 심해질때쯤
골든이어스 라는 요양원에 들어갔다. 어머니의 치매는 미쓰키를 점점 지치고 힘들게 하지만
어머니의 이런 모습은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슬픔과 초조한 덩어리로 전락하고 있었다. 이
런 어머니를 보며 미쓰키는 어머니가 완전한 치매환자가 되어 행복과 불행을 구분할 수 없기
를 바란다. 가끔은 어머니가 불쌍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어머니가 이제는 죽을 시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도대체 어머니는 언제 되는가?
어머니가 죽어야 자식인 미쓰키는 정신적, 육체적 해방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죽기를 바라는 두 딸, 나쓰키와 미쓰키
어머니가 드디어 죽어서 장례를 치르고 제일 먼저 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계산하고 있는 두 딸
에게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미쓰키의 어머니는 빨리 죽었어야 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미쓰키가 진정한 해방, 자유를 누렸어야 했다고 응원하게 된다.
게이샤였던 외할머니는 운 좋게 돈많은 부호를 만나 정실부인이 되고 두 자녀를 낳아 양육한
다. 어느날 자녀들의 젊은 가정교사와 눈이 맞아 두 아이를 버리고 집을 뛰쳐나와 새살림을
차린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나이는 무려 23살 차이가 난다. 외할아버지는 성실하고 유
능한 인재였는데 외할머니를 만나면서 자신의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게 된다. 그 둘 사이
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한동안 사람을 듬뿍 받고 자랐다. 하지만 결국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
를 떠나 오뎅꼬치집 여종원과 다른 살림을 살게 되지만 끝까지 어머니를 사랑해주고 좋은 혼
처를 구해 과한 혼수를 해서 결혼을 시킨다. 하지만 어머니는 몇 년 살지 않고 딸을 남겨두고
도망 나와 재혼을 하고 두 딸을 낳게 되는데 나쓰키와 미쓰키다.
어머니는 두 딸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려고 노력한다. 자신이 처한 환경, 경제력 능력을 무
시하고 항상 더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큰딸인 나쓰키는 독일 유학을 둘째달인 미
쓰키는 프랑스 유학을 보내 공부를 시켰다. 그러한 어머니의 뜻에 맞게 나쓰키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부잣집에 시집가서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여유로운 삶을 산다. 둘째 미쓰키
도 프랑스 유학시절에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는데 남편은 대학교수가 되고 본인은 대학에서
시간강사와 번역일을 하면서 친구들에게 신데렐라라는 부러움을 받으며 산다
하지만 아버지가 나이가 들고 병세가 짙어져 병원, 요양원에 머물 때 어머니는 샹송을 배우러
다니면서 자기를 가르치는 선생을 좋아해 아버지한테는 찾아가지도 않고 간호도 하지 않으ㄴ
채 아버지 버린다. 그래서 아버지의 병간호는 거의 미쓰키가 한다. 그렇게 아버지를 비참하게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면서 화가 난 미쓰키는 어머니와의 절교를 선언하지만 그 충격에 어머니
는 자전거 사고를 당해 병원 신세를 지게 되고 퇴원해서도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해 지팡이와
특히 둘째딸 미쓰키를 의지하며 살아가게 된다. 끊어지지 않는 모녀의 인연.
그런데 어머니의 사치와 요구사항은 끝이 없다. 냉방병에 시달리면서도 철부지 같은 어머니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기 위해 애쓰는 미쓰키
미쓰키가 지쳐갈 때쯤 어머니가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회복이 된다해도 혼자 생활할
수 없기에 시설 좋은 요양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아버지가 남긴 집을
판다. 10년은 더 살 수 있을거라 믿었던 어머니는 1년도 채 못살고 돌아가신다. 그래서 집을
처분한 돈을 두 딸이 유산으로 받게 되는데 두 사람 모두 생천 처음 3,680만엔이라는 거금을
갖게 된다. 특히 미쓰키는 남편이 대학 교수이고 본인이 대학 강사지만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남긴 유산이 자신을 진정 자유롭게 해줄거라고 생각하며 희망을
키운다. 하지만 미쓰키의 남편 데쓰오는 여러번 여자 문제로 미쓰키를 실망시켰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해도 안식년을 맞아 베트남에 1년간 파견을 나갔는데 좋아하는 여자와 함께 살림
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 메일을 열어보고 확인을 하게 된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주고 받
은 메일에는 이혼, 위자료 등등이 세세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나이 50이 넘은 미쓰키는 지금
까지 남편한테 사랑받고 살지 못했음을 되짚어 보고 먼저 이혼을 요구한다. 이처럼 자신있게
먼저 남편에게 이혼을 말하고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은 나쓰키와 미쓰키 두 딸들이 그렇
게 빨리 죽어주기를 바랬던 어머니가 남긴 유산 덕분이었다.
-늙음은 잔혹해서 정신이 하늘 높이 비상하고 피가 끓어오르기를 원해도 감동을 생명의 원천
으로 담을 수 있는 잔 자체는 해마다 얕아진다.
-미쓰키가 아버지에 대해 계속 가져온 죄의식. 그것은 자신도 알 수 없는 마음의 움직임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면서도 어머니의 노후야말로 불행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이끌
었다.
-늙어서 무거운 짐이 되었을 때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지 않을 수 있는 딸은 행복하다. 아무리
좋은 어머니를 가져도 수많은 딸들이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는 순간쯤은 찾아오는게 아닐까?
게다가 딸은 그저 어머니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이 아니고, 늙음의 끔찍함을 가까이에서
직접 보는 고통, 앞으로의 자기 모습을 코앞에서 보는 정신적인 고통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싶
은게 아닐까.
-인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걸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납득하지 못하고 포기한 기억은 응어리처
럼 남는다.
가정이 하나의 울타리가 되어 나의 행복을 가두고 나의 꿈을 좌절시키는 원천 같아서 누구나
한번쯤은 가정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가정이 또한 내 행복의 원천임을 알고 지
키려고 노력하며 사는 것도 우리의 모습이다. 미쓰키도 아버지를 버리고 사치와 허황된 꿈을
꾸며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철부지 늙은 어머니를 원망하고 빨리 죽어주기를 바라지만, 끝까
지 어머니를 지키고 가슴 아파하며 곁에서 살뜰히 보살핀다. 오늘날 다들 이기주의적인 성향
이 강해지고 모든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나’가 중심이 되어가지만 늙은 부모를 편안하게 모
시고 그들의 행복한 삶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싶어하는 원초적인 본능은 여전히 튼튼한 가정
을 지켜내고 있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