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권수로만 따지면 신기록을 찍었다.
물론 함정이...

언제나 얇은 귀가 펄럭대는 바람에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50권 세트를... 쿨럭!
읽어보지 않은 작품들도 제법 섞여 있는데다 나름 기름기 빠진 가격이라 복습하자는 심정으로 지른 세트. 품질도 일단 병아리 오줌만큼이긴 하지만 무료책보다는 나은 편이기도 하고... ㅋ 분량도 권당 50 페이지 전후라서 집중해서 읽을 책을 하나 밀어내고나서 머리 식히기 딱 좋더라. 다만 표지, 작가 소개, 본문, 판권만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친절한 구성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뻥튀기(?)를 걷어내면 읽은 분량은 제법 비루하다.
`어제까지의 세계`를 읽느라 무려 2주를 잡아먹은 게 컸다...

그럼 잔말은 이쯤 하자.

1. サクリファイス새크리파이스 - 近藤史恵곤도 후미에(킨들)
2. 벙어리 삼룡이 - 나도향(리디 페이퍼)
3. 연애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리디 페이퍼)
4. 술 권하는 사회 - 현진건(리디 페이퍼)
5. 토지 3권 - 박경리(리디 페이퍼)
6. 치숙 - 채만식(리디 페이퍼)
7. 감자 - 김동인(리디 페이퍼)
8. 불꽃火花 - 마타요시 나오키又吉直樹
9. 깨뜨려지는 홍등 - 이효석(리디 페이퍼)
10. 만무방 - 김유정(리디 페이퍼)
11. 어제까지의 세계 - 재레드 다이아몬드(리디 페이퍼)
12. 탈출기 - 최서해(리디 페이퍼)
13. 경희 - 나혜석(리디 페이퍼)


새크리파이스는 자전거 경주인 로드 레이스를 소재로 한 소설. 마침 한국어판도 출간이 되어 있고 동일한 소재를 채용한 만화(겁쟁이 페달)와 애니메이션(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과 함께 감상하면 봉인을 푼 것처럼 깊은 매력을 느낄 수 있다(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을 추천한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어느 재야 독서 고수의 추천으로 읽었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어떨까 싶었는데 정말 너무 마음에 드는 작품. 아마존강을 배경으로 백인이면서도 원주민의 삶을 이해하고 동시에 연애소설을 읽는 것으로 원시의 삶에도 완전히 녹아들지는 않는 경계인인 주인공 호세 볼리바르 노인은 자연과 문명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녹아 있는 독특한 인물이다. 이 작품을 추천해주신 분처럼 본인도 이 작품은 두고두고 다시 읽을 것 같다.

9월에 토지는 별로 진도를 빼지 못했다. 3권에 해당하는 한 권을 읽은 게 전부. 변덕스럽게 `어제까지의 세계`와 나눔 받은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읽은 덕분이다.
토지 3권에서는 의지할 곳을 잃은 서희와 조준구의 투쟁이 드디어 시작된다. 배경인 평사리도 서서히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들어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귀녀와 강포수의 모습이 많이 인상에 남는다. 어찌 보면 토지의 배경이 된 시대에 비로소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인간상이라는 느낌. 박경리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적어도 아직까지의 인상으로는) 운명에 휘둘리는 경향이 짙은데 귀녀와 강포수는 운명 앞에서 새로운 태도를 취해 남다른 인상을 남겼다.

불꽃은 사실 작년에 킨들판으로 읽었던 작품이지만 리디에 한국어판이 등록된 것을 보고 한국어판도 다시 읽었다. 워낙 가슴에 와닿은 작품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도 이 책을 계기로 다시 본격적인 책읽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뜻깊은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을 두고 이런 평가를 한다면 모순적일 수 있겠으나 불꽃은 진정성이 진하게 배어 있는 작품이다. 젠체 하지 않고 솔직하게 위로의 손길을 건네고 있어서 나 역시 크게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다만 번역가분이 바쁘셨는지 몰라도 군데군데 번역이 덜 다듬어진 곳이(주로 초반에서 중반까지) 눈에 들어와서 살짝 아쉬웠다.

만무방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진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되는 작품이다. 시간이 지나도 걸작은 빛을 발한다는 진리를 실감했다.

어제까지의 세계는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내놓은 책. `어제까지의 세계`인 전통사회의 모습을 통해서 문명을 고찰하는 내용이다. 예전에 읽었던 포스트 식민주의 책들(번역과 제국 등)과 연애 소설 읽는 노인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다음 순서를 제쳐두고 붙잡게 되었다. 다만 분량도 분량이지만 속에서 자꾸 부대끼는 통에 생각하고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조사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결론적으로 몹시 실망스러운 책. 현대인의 입장에서 실용적으로 득이 될만한 부분에서만 `전통 사회`의 가치를 인정하고 평가하고 있는데 이건 변명할 여지가 없는 식민주의의 시각이다. 하물며 그렇게 골라낸 것들도 전통 사회를 관찰해서 이끌어낼 필요성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의 정체성을 결정적으로 해체해버렸다. 이 책의 주제는 재레드의 전문 분야라 할 수 있는 생리학, 생물학만으로도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는 것들이며 이미 거의 상식화된 내용이라 구태여 재레드가 다시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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