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조금씩 늦는 것 같지만 그러려니 하는 8월 결산. ^^; 8월 동안 읽은 건 요렇다. 노는 날도 제법 있고 해서 시간적으로는 여유가 있었는데도 더위 먹고 맛이 갔는지 영 시원찮음. 목욕탕이 짧은 단편인 걸 고려하면 양적으로는 얼마 안된다...(심지어 일본어 원서는 목욕탕 말고는 읽지도 않았...)



1. 죄와 벌(하)

2. 토지 1

3. 목욕탕

4. Das Bad(일본어 원문이 수록된 목욕탕의 독일어 원서)

5. 과학 혁명의 구조

6. 토지 2



1. 죄와 벌(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으로 벌써 출간된지 제법 됐음에도 이제야 혼자서 첫삽을 떴다. 7월에 상권을 읽고 8월에 하권으로 마무리. 역시나 러시아 소설 최대의 장벽인 이름 때문에 고전.

하지만 주인공이 라스꼴리니꼬프 외에도 로쟈, 로지온 로마노비치, 로마니치, 로지까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다면적이고 혼돈 상태에 있는 주인공의 내면을 드러내는 의도적인 장치로 보여 재미있었다.

거기에 라스꼴리니꼬프의 안티테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스미드리가일로프가 등장하면서 라스꼴리니꼬프와의 대비를 통해 주제의식을 심화시키고 인물간의 관계에 새로운 긴장감을 형성한 건 기가 막힌 안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스미드리가일로프는 여러 모로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2. 토지 1, 2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쩐과 공간의 압박 + 게으름으로 번번히 실패하던 녀석. 덕분에 나에게는 넘어야 할 장벽 같은 소설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도망가지 못하도록 구입 전부터 여기저기서 티를 내면서(?)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한두명도 아닌 등장인물들을 생생하게 재현해낸 것은 아무래도 돌을 깎듯 다듬어낸 날것 같은 말에 있지 않나 싶다. 본래부터 큰 구상으로 시작했던 작품인지 2권 말미까지 와서야 등장인물들의 전사前史가 대략 마무리될 정도로 호흡이 길다.

생생한 재현이라는 관점에서는 어려서 읽었던 `객주`라는 소설과도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 반갑기도 했다.

다만 어려운 어휘들을 따로 정리해주는 수고를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자책에서 링크 처리를 하지 않아서 직접 검색하느라 중간 중간 호흡이 끊기는 건 많이 아쉬웠다.

그리고 또 하나. 등장인물의 수가 워낙 많다보니 따로 인물 소개를 해주고 있는데 절대 보면 안됨!!! 완전 스포 덩어리다. 인물 관계도 적는 게 귀찮아서 그냥 정리하려고 여기 펴봤다가 완전 피봤다. ㅜㅜ



3. 목욕탕, Das Bad

재독 일본인 작가 다와다 요코의 작품인데 `깐따삐아어`로 적힌 것 같은 느낌이다. 원본을 일본어로 집필하고서도 정작 일본에서는 출간하지 않은 변태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을 읽기 전에는 비슷하게 재독 한국인 작가이면서 `압록강은 흐른다`를 집필한 이미륵을 떠올리기도 했다.

작품 얘기를 하자면 워낙 알아먹기 어려운 탓에 일본어 원문이 같이 수록 되어 있는 독일 출간본까지 구해서 읽었는데도 알아먹기 어려웠다. 한국어판의 문장이 워낙 요상했던 탓에(?) 일전의 리뷰에서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떠들었는데 사실은 독일어 판본의 문장이 본래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최근 몇 년 사이에서는 가장 강려크한 멘붕에 빠지기도...
(ㅡㅡ;;;;)

그나마 우격다짐으로 얻어낸 결론이 혀를 뽑히고서(?) 삶과 죽음, 꿈과 현실 등 `경계`가 허물어지고 그 상황에 관계를 던져넣음으로서 이른바 `관계의 민낯`을 날 것으로 드러내놓는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독일과 일본이라는 거리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자궁으로 상징되는 모성에 강하게 이끌리고 동시에 얽매여서 그 모성으로부터 졸업하지 못하는 관계. 직업(본질?)이 계속 바뀌면서도 인화지에 고정된 사진처럼 서로를 얽어매고 구속하는 크산더와의 관계 같은 것들. ㅋ



4. 과학 혁명의 구조

뭐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현재 유통되고 있는 `패러다임`이라는 용어의 용례와 의미를 만들어낸 책이다.

10여년 쯤 전에 종이책으로 3판을 읽었었지만 누가 진성 문돌이 아니랠까봐 머리만 쥐어뜯었던 물건이다.(흰 것은 종이요 검은 건 글씨로다. ㅋ)

마침 몇년 전에 개정된 4판이 번역도 많이 뜯어고친데다 고맙게도 전자책으로도 나와줘서(이번에도 완소 까치글방) 새마음 새기분으로 재독.

저자인 토머스 쿤은 물리학, 천문학, 화학, 전자기학을 중심으로 과학이 잘못된 지식이나 무지를 극복해온 역사가 아니라 마치 게슈탈트 붕괴처럼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패러다임 쉬프트`를 해온 역사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과거의 관점과 새 관점은 양립할 수도, 객관적인 기준으로 비교할 수도 없다는 `공약 불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진보`라고 볼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굉장히 애를 써서 역시 비슷한 시기에 역사의 진보를 역설했던 EH .카(역사란 무엇인가)를 떠올리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쿤의 해설 덕분에 지금 관점에서 보면 멍청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시대)의 과학 이론이 어떻게 수백년간 떠받들여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덧붙여서 현대 과학도가 뉴턴의 이론을 공부할 때 프린키피아를 직접 읽을 필요가 없는(외려 읽어선 곤란한) 이유를 알게된 것도 큰 소득이었다. 즉 과학에서는 종의 기원이나 바로 이 과학 혁명의 구조 같은 희귀한 예를 제외하면 고전을 읽는 것이 큰 곤란을 초래한다. 인문학도의 관점에서는 소위 `쎈 놈`이라고 하는 원전을 읽는 것이야말로 꼼수를 부리지 않고 공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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