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도 더 전에 나를 장르 문학의 세계, 즉 무협소설의 세계로 인도한 소설이다. 물론 그 시절에는 출판사도 다르고 제목도 달랐지만...

장르 문학에 대한 천시가 뿌리 깊은 한국에서 버텨내기 위한 방편이었을까? 책 소개문이나 작가 소개란은 으레 중국의 교과서에 실렸다는 얘기나 작가인 김용을 연구하는 대학의 분과가 개설되어 있다던지 하는 일화들, 즉 주류 사회에서 얼마나 인정 받은 작품인가를 드러내려 애쓰는 문구로 치장되어 있다.

그 문구들이야 물론 사실이기는 하지만 작품의 내용보다도 주류 사회의 평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야말로 주류 사회에서 `무협`이라는 장르 문학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가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 그 평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거나 뒤집을 생각은 없다. 그럴만한 재주가 없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다만 어느 장르가 됐건 그 장르라는 계급장을 떼고 건져올릴만한 걸작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 리뷰하는 `사조영웅전`은 `무협`이라는 계급장을 떼고서 걸작의 반열에 올릴 수 있는 작품이다. 이미 세상에 나온지 반세기도 더 지난(사실이다) 작품을 새로 번역해서 출간한다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사실 저자인 김용의 작품은 한 편의 예외도 없이 걸작이다.)

무협이라는 장르를 변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고백해서 나는 김용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무협 소설을 읽지 못한다.(아, 물론 몇몇 예외는 있다. 백발마녀전 같은...)
국산 무협 소설 특유의 후까시(?)가 잔뜩 들어간 문체에 내성이 없는 탓이다...

작품에 대해서는 이 한 마디로 평가를 대신해보련다.
이 작품에는 소설이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즐거움이 담겨 있다.

덧붙여서 진입 장벽을 조금 낮춰줄 몇 마디를 적는다.
- 무협이라는 장르적 관습에 신경 쓰지 말 것.
삼국지도 장르로 따지면 무협에 속한다.
무협의 장르적 관습을 따르고는 있으나 사조영웅전은 중국의 남송시대 말기를 배경으로한 대하역사소설이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독자가 이 작품으로 무협이라는 장르에 입문한다. 읽다 보면 알아서 학습이 된다. 몇십 년쯤 뒤에도 그럴 거라 단언할 수 있다. 벌써 반세기도 넘는 세월 동안 그래왔으므로. 물론 무협 소설에 입문하자고 읽는 것은 아니다. 읽다 보니 무협이라는 장르는 즐기는 법을 터득하는 것 뿐이다.
- 중국어 번역투 내지 투박한 만연체에 속지 말 것.
첫권을 읽어내면 문체 따위는 신경도 안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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