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아마도 4독일 것 같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핼릿 카가 1961년에 강연한 것을 엮은 책.
감사하게도 다시 개정판이 나오면서 출판사에서 전자책으로도 작업을 해준 덕택에 이국땅에서도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와 회의주의가 암처럼 번지던 시대에 역사의 진보를 믿어야함을 역설한 카의 이 저작은 출간된지 50년이 넘은 지금에도 여전히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도 이 책은 많은 판본이 판매중일 정도로 잘 나간다!
(아마도 베른협약의 불소급에 관한 조항 덕이 아닐까 싶다. 회원국간 출판물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베른협약은 가입 전에 무판권으로 출간된 책에 대해서는 이후 동일한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지금 리뷰하는 판본은 정식 라이센스를 획득한 책이다.)

영화 변호인에서 학생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검사가 피고 학생들이 소위 `빨갱이`라는 증거로 학생들이 이 역사란 무엇인가를 돌려봤음을 제시하고, 송강호가 분한 변호사 송우석이 저자 에드워드 카가 영국의 외교관이었음을 들어 이를 논박하는 장면이 등장해 많은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물론 이 장면은 실제로 벌어졌던 인권 탄압 사건인 `부림사건`의 재판을 재현한 것이니 에드워드 카의 저작은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의 역사에도 발자취를 남긴 셈이다.

군부독재에 숨죽이고 살던 당시의 선배들은 이 책에서 무엇을 읽었을까?
주지했다시피 카는 이 책에서 역사의 진보를 믿어야함을 역설했다.
진부한 표현이 되겠지만 아마도 선배들은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심정으로 역사의 진보(민주화)를 기다렸던 게 아니었을까?
과연 오는지조차도 알 수 없는 고도를 하염 없이 기다려야만했던 선배들에게 에드워드 카의 목소리는 그 기약 없는 기다림을 버티게 해주던 격려와 위로가 아니었을까?

과거뿐만이 아니라 2016년 현재의 대한민국에도 역사란 무엇인가는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카는 회의주의와 허무주의가 득세하는 것을 쇠퇴해가는 사회가 보이는 병리적 증상으로 진단했다.
연애고 결혼이고 다 포기했다는 `삼포세대`, `오포세대`라는 자조적인 표현이야말로 쇠퇴를 시작한 대한민국의 회의주의와 허무주의를 함축한 표현이다.
반세기도 더 전인 1961년에 카가 맞서 싸우고자 했던 현실이 2016년의 내나라 대한민국에서 뒤늦게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많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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