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채식주의자 : 한강 연작소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7월
평점 :
판매중지


먼저 고백해둔다. 맨부커상, 채식주의자, 한강. 모두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래, 생업을 핑계로 몇 년 간 문학과는 데면데면 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 작품을 읽고 주워 섬기는 것도 낯간지럽고 해서 나중에나 읽을 요량으로 있었으나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을 읽어보지도 않은 `무식한 녀석`이 되는 것 같은 분위기에 항복을 선언. 아무래도 나는 영혜처럼 자유로워지기는 불가능할 듯 싶다. 사람의 눈과 입은 천근보다 무겁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 작품은 `욕망`에 맞딱뜨린 3인(영혜, 그(인혜의 남편), 인혜)을 통해 욕망의 본질을 한 겹 한 겹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가 한 겹 한겹 포개 놓은 욕망의 모습과 의미들은 수없이 많은 결을 이루고 있어서, 마치 페스츄리나 양파를 마주한 것 같다.
그만큼 이 작품은 주제의식을 다각적이고 다층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의미의 결들은 중간 중간의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와 뒤엉키면서 생각지도 못한 울림을 자아낸다.

영혜는 욕망에 솔직하고 충실해지는 인물이다. 그녀에게 욕망은 자유이며 그밖의 인간사회의 모든 규범은 구속이고 억압일 뿐이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그것은 브래지어를 입지 않게 되는 것으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몽고반점에 등장하는 `그`는 사실 대부분의 욕망을 성취한 자이다. 그것은 그의 아내 인혜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마치 어머니와도 같은 아내 인혜의 헌신 덕에 그는 경제적으로 가정적으로 심지어 원하던 직업에서 생리적인 욕정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욕망을 이미 성취한 것 같다.

그럼에도 그는 영혜의 그것과도 비슷하게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럼 도대체 이녀석의 정체-본질은 뭐라는 뜻일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것은 위험하다. 어둠 속에서 손짓하는 이 꽃잎을 잡았다가는 그의 모든 성취가 산산히 부서질 것이다.
벗겨지기 시작한 그의 머리와 불러온 그의 배, 즉 망가지고 흉물스러워진 그를 감추고 보호해주던 모자와 점퍼를 이녀석은 모조리 벗겨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를 파괴할 것이다. 영혜의 욕망이 종국에는 자기 파괴로 치달아 가듯이.

나무 불꽃의 인혜는 아마도 독자 대부분이 감정을 이입하게 되지 싶다. 그녀는 항상 자리를 지키는 나무이자 어머니이다. 아들에게뿐만이 아니라 남편인 그에게도 그녀는 어머니였고 동생 영혜에게도 어머니다. 보살피고 보둠어주는 그 모든 짐을 인혜는 기꺼이 떠맡는다.

인혜에게도 때로 욕망이 손짓해오는 것 같지만 그녀는 영혜가 한 것처럼 브래지어를 벗을 수 없다. 아들이 좋아하던 옷, 어머니로서의 옷으로 갈아입고 견뎌낼 뿐이다. 때로 죽음을 원하는 듯하면서도 그녀는 의사에게 간다. 죽음을 원하면 안되냐고 반문하는 영혜와는 다르게.

납득할 수 있는 이유조차 없이 자기 파괴로까지 치달아가는 영혜에게 끝까지 저항하는 인혜의 모성은 그래서 눈물겹다. 깊고 복잡한 울림이 있다.

항복을 선언하고 이제라도 이녀석을 들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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