猫を棄てる 父親について語るとき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文藝春秋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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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출간된지 몇 달 안 된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물론 2019년에 문예지 문예춘추에 게재되었을 때 화제가 된 글이라 이른바 중고신인 같은 느낌이긴 하지만...

분량도 대단히 짧아서 100페이지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짧은 글애는 작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하루키의 근간과 그의 역사의식, 윤리의식이 모두 담겨 있다.

하루키는 지극히 내밀한 개인사를 고백하면서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이야기하고 역사수정주의에 반대함을 드러낸다.
더불어 이 에세이는 하루키가 스스로 털어놓는 아버지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부제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父について語るとき]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

하루키의 삶에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모양이다.
그것이 작용이건 반작용이건.

그리고 그런 아버지와 또한 어머니에 대한 고백을 통해 이야기를 역사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윤리의식의 영역으로 이끌어 간다.
따라서 이 글은 신변잡기에서 사작하나 신변잡기에 그치지 않는다.
하루키 특유의 담담하고 건조한 문체로 인해 이 글은 논픽션의 힘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글이 됐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 하루키가 아버지와 함께 기르던 고양이를 버리러 근처 해변에 갔던 일로 시작한다.
반세기도 훨씬 더 전의 일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이야기다.

그런데 하루키 부자가 해변에 고양이를 버리고 돌아오자 해변에 버리고 왔을 그 고양이가 집에서 나와 이 부자를 반긴다.
근처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자전거를 타고 다녀온 것인데.
결국 이 고양이는 이후로도 하루키 가족과 함께 살게 된다.
하루키의 아버지도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다.
원했던 결과는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뒤로는 파란만장한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가족사의 주된 축은 아버지의 사연이다.

일본의 제국주의가 극단으로 치닫던 시절이라 일본은 곳곳에서 전쟁을 벌였고 하루키의 아버지는 이 시절에 세 번이나 군에 징집된다.
군에서 제국 일본의 비정한 전쟁범죄를 목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번번히 사지로 보내지기 전에 징집에서 해제되어 목숨을 건진다.
하루키의 어머니 역시 전쟁으로 큰 불행을 겪었음을 밝힌다.
그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것 또한 하루키가 이 글을 쓰도록 이끈 원동력일 것이다.

그런데 하루키는 이 역사의 불행 덕에 본인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좋은 것이건 부정적인 것이건 과거는 현재의 자신을 이루는 근간임을 하루키는 직시하고 있다.

또한 성인이 되고서 평생 의절상태였다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야 암묵적으로나마 화해를 한 아버지와의 관계가 틀어진 것 역시 이 전쟁의 영향이 있음을 고백한다.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고백조차 역사와 맞물리고 있는 구성에서 하루키는 자신의 윤리의식과 역사의식을 드러낸다.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것.

개인적으로 이런 무거운 주제를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할 일에서부터 펼쳐내는 그 자연스러운 구성과 전개에 감탄했다.
(나느 하루키의 소설들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무엇보다 하루키의 윤리의식과 역사의식을 솔직하게 접할 수 있어서 인간으로서 반갑고 고마웠다.

인기작가의 글이고 하루키를 설명할 중요한 텍스트가 될 것이 분명한 만큼 이 글 역시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되라라 생각한다.
출간이 된다면 꼭 읽어보십사 추천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아래는 밑줄을 친 일부를 번역한 것이다.

いずれにせよ、僕がこの個人的な文章においていちばん語りたかったのは、ただひとつのことでしかない。ただひとつの当たり前の事実だ。 それは、この僕はひとりの平凡な人間の、ひとりの平凡な息子に過ぎないという事実だ。それはごく当たり前の事実だ。しかし腰を据えてその事実を掘り下げていけばいくほど、実はそれがひとつのたまたまの事実でしかなかったことがだんだん明確になってくる。我々は結局のところ、偶然がたまたま生んだひとつの事実を、唯一無二の事実とみなして生きているだけのことなのではあるまいか。
어쨌거나 내가 이 개인적인 문장을 통해 가장 말하고 싶었던 건 단 하나뿐이다. 단 하나의 당연한 사실이다. 그건 내가 평범한 한 인간의 평범한 아들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진지하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실은 그것이 우연한 하나의 사실일 뿐이라는 게 점점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우연이 낳은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


言い換えれば我々は、広大な大地に向けて降る膨大な数の雨粒の、名もなき一滴に過ぎない。固有ではあるけれど、交換可能な一滴だ。しかしその一滴の雨水には、一滴の雨水なりの思いがある。一滴の雨水の歴史があり、それを受け継いでいくという一滴の雨水の責務がある。我々はそれを忘れてはならないだろう。たとえそれがどこかにあっさりと吸い込まれ、個体としての輪郭を失い、集合的な何かに置き換えられて消えていくのだとしても。いや、むしろこう言うべきなのだろう。それが集合的な何かに置き換えられていくからこそ、と。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대한 대지를 향해 떨어지는 수많은 물방울 중 이름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한 한 방울이지만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빗물 한 방울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으며 그것을 계승해야 하는 빗물 한 방울로서의 책임이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그것이 어딘가에 뒤섞여서 개체로서의 윤곽을 잃고 집합적인 뭔가로 바뀌어 사라진다 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집합적인 뭔가로 바뀌어가기 때문에,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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