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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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의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은 한마디로 “지구가 망해가는데 연애는 무슨 연애냐” 싶다가도 “아, 그래도 사람이 멸망 직전엔 손이라도 잡아야지” 하게 만드는 스펙터클 감성 디스토피아 소설집이다. 보통 영화에서 지구 종말이라고 하면 헐리우드 액션 배우가 망치를 들고 나타나 운석을 깨부수거나 Hero가 나타나 전 세계를 구하지만, 이 책은 그딴 영웅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아주 잔인하고도 지극히 현실적인 팩트를 기반으로 시작한다. 대신 이상기후, 해수면 상승, 미세먼지 폭탄, 변종 바이러스 같은 온갖 지구의 억까 속에서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가는 아주 평범하고 불쌍한 인간 1,2,3,4...의 이야기가 10편의 단편으로 빽빽하게 담겨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이건 어디 멀리 있는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내일 출근길에 마스크 세 개 겹쳐 쓰고 보트를 타야 할 것 같은 실감 나는 서늘함이 등골을 스친다. 특히나 이 책에서 가장 골 때리면서도 울컥하게 만드는 지점은 바로 제목에 당당하게 들어가 있는 ‘사랑’이라는 단어다. 방독면을 써야 숨을 쉬고 깨끗한 물 한 컵 구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여야 하는 마당에 낭만적인 고백이나 염장 지르는 로맨스는 당연히 사치다. 여기 나오는 사랑은 지극히 찌질하고, 비참하며, 때로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발악에 가깝다. 부자들은 에어컨 빵빵하고 안전한 해발 고도로 이사 갈 때 약자들은 물에 잠겨가는 반지하에서 서로 체온을 나누며 “너라도 살아라” 하고 물병을 건네는 게 이 동네의 사랑 방식이다. 작가는 인간들이 지구를 막 써먹어서 벌받는 와중에도 끝까지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오염된 공기 속에서 손을 잡아주는 행위야말로 인간이 동물이나 기계와 다른 마지막 폼생폼사의 근거라고 말한다. 심지어 이 사랑은 남녀 간의 연애질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 때문에 고통받는 동물이나 파괴된 자연, 그리고 하필 이런 망해가는 세상에 태어나버린 불쌍한 2세들을 향한 짠한 연민으로 뻗어 나간다. 결국 이 소설집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지구를 구하자” 같은 거창하고 도덕책 같은 소리가 아니다. 어차피 인간이 저지른 업보로 세계가 멸망의 길을 향해 천천히 수몰되어 가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옆 사람한테 짜증 내지 말고 사탕 하나라도 더 챙겨주는 다정함을 잃지 말자는 지극히 현실적인 위로다. 세상이 차갑게 식어가고 미세먼지가 앞을 가로막을지라도, 서로의 멍청함과 약함을 품어주는 그 오지랖과 온기야말로 디스토피아라는 거대한 똥밭에서 인간이 피워낼 수 있는 최고의 저항이자 마지막 유머라는 사실을 이 책은 아주 뼈아프고도 위트 있게 증명해 낸다. 올 여름 최고 기온을 찍을 때 이 책을 읽었다. 이 염천에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이 책을 본 사람과 안 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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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망한 사랑
김지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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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작가의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은 관계의 균열과 삶의 파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서사를 담담하게 그려낸 현실 밀착형 작품이다. 망한 사랑. 와중에 붙은 ‘조금’ 이라는 수식어가 어쩐지 확실히 망했음을 확인시켜 주는 듯하다. 조금 망하든 완전 망하든 뭐래도 일단 망한 것은 망한 것이세요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다시 붙여보고 싶은 일말의 희망으로 보여 짠하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확정적으로 망했네 싶고. 그러나 극적이거나 비극적인 파멸 대신 일상에서 슬그머니 어긋나거나 망가진 사랑을 다루면서, 건조함 속에 묘한 위트와 특유의 대화체 중심 서사로 묵직한 가라앉음 대신 이상한 안도감을 선사한다. 빚, 주거 문제, 연애와 우정의 균열 등 외부적 현실 조건이 개인을 흔드는 과정을 그리면서도, 인물 간의 건조한 대화를 통해 묵묵히 상황을 견뎌내는 과정을 포착한다. 원초적인 불평등과 결핍 속에 내던져진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이 처한 불행 앞에서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식의 자기연민이나 피해의식에 빠지지 않는다. 비극을 드라마틱하게 포장하거나 극복하려 애쓰지 않고, 이미 망해버린 현실을 삶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채 담담하게 다음 순간을 살아낸다. 작가의 퀴어 정체성과 맞물려 형성된 사회적 외곽 인물들의 감각은 삶의 비참함에 압도당하는 대신 ‘망함’을 초월해버린 단단하고 무심한 태도로 이어진다. 감정적 낭비나 자기 연민 없이 현실을 무덤덤하게 견디는 이 서늘함과 초월적 태도...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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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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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게 원래 태어나보니 빈손이고 죽을 때도 빈손이라 근본적으로 개털이자 무의미의 연속인데, 그렇다고 냅다 한강 물 온도 체크하러 가거나 방구석에서 징징대지 말고 어차피 허무한 인생, 비겁함 없이 우아하고 센스 있게 살다 가자 라고 김영민 교수가 고전(장자, 사기 등) 들먹이면서 죽비 때리는 책이다. 즉, "토닥토닥 다 잘 될 거야~" 같은 염가의 힐링에 속아 시간 버리지 말고, 어차피 다 망하고 죽을 목숨이라는 차가운 팩트를 기껍게 받아들인 다음, 그 허무함이라는 배경화면 위에서 차나 한 잔 정갈하게 우려 마시고 드립이나 치면서 오늘 하루를 미학적으로 폼나게 버텨내자는 철학적 츤데레의 유쾌한 생존 가이드북. 인생에 대단하고 거창한 우주적 의미 같은 건 원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역설적으로 '잘해야 한다'는 거대한 압박감에서도 놓여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삶이 진짜 팍팍하고 힘든 사람한테 "어차피 인생 무의미하니까 집착 버리고 우아하게 살아"라고 하는 건,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꼰대질과 방향만 다를 뿐 또 다른 형태의 '상팔자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 본인은 서울대 교수라는 안정적인 지위에서 고전 읽으며 차 마실 여유가 있으니 할 수 있는 유희 아니냐는 비판도 충분히 가능하고. 결국 이 책이 '뼈 때리는 통찰'로 읽히느냐, 아니면 '선비질하는 꼰대의 가르침'으로 읽히느냐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태와 온도 차에 달려 있다. '꼰대의 가르침'처럼 느껴진다면 굳이 깊게 의미 부여하며 모실 필요도 없다. 그 마저도 "어라, 이 양반도 은근히 선비질하네?" 하고 쿡 찔러보며 가볍게 소비하는 게, 어쩌면 이 책을 가장 '김영민스럽게' 읽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의 목표를 잃어버렸거나, 번아웃&허무감으로 마음이 빈곤해진 이들이라면... 헛헛함과 유쾌함 사이의 묘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즐기면서, 책 속의 건조한 드립들을 한 편씩 음미해 보쟈. 잠깐들 쉬어 가보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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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감정 교육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3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지영화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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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은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정점이자, 현대 모더니즘 소설의 문을 연 거대한 걸작'이라고 일컫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게 제작된 고품격 고구마 서사시이기도 하다. 1840년부터 1867년까지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시골 출신 훈남 청년 프레데릭 모로가 파리로 상경해 야망, 연애, 정치적 혼란 속에서 훌륭하게 자빠지고 몰락하는 과정을 정교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프레데릭은 연상의 유부녀 아르누 부인을 평생 최애로 모시며 짝사랑하는 와중에도, 돈 많은 미망인이나 화려한 기생 사이를 바쁘게 양다리 걸치며 꼴값을 떤다. 그리고 예술가, 혁명가, 투기꾼 등 파리의 각종 속물들과 어울리며 호기롭게 시도하는 사업마다 족족 말아먹고, 결국 그 어떤 사랑도, 야망도 결실을 보지 못한 채 늙어가며 "아 우리집에 금송아지 있었지" 같은 소리나 중얼거리는 결말을 맞이한다. <감정교육>의 가장 큰 문학사적 의의는 시련을 극복하고 어엿한 어른이 되는 기존 교양소설의 공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인공이 완벽하게 '노답·노성장'으로 일관하는 '성장 없는 교양소설''을 완성했다는 점이라 하겠다ㅋ 제목인 '감정교육' 역시 "사랑을 통해 성숙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감정이 어떻게 무기력하게 마모되고 낭만적 환상이 현실이라는 팩트 폭격 앞에 박살 나는가"를 알려주는 역설적이고 서늘한 튜토리얼이랄까... 더욱이 플로베르는 프레데릭의 찌질한 낭만적 방황을 1848년 2월 혁명과 쿠데타라는 당대 프랑스의 대혼란과 완벽하게 병렬시킨다. 청년들이 외치던 거창한 혁명 공약이 결국 정치가들의 배신과 속물주의 속에서 헛소리로 끝났듯, 프레데릭의 사랑과 야망 역시 지저분한 타협 속에서 허무하게 스러져 가게 말이다. 즉, 거창한 꿈을 품었다가 허탈하게 무너지는 개인과 역사의 콜라보를 그려낸 씁쓸한 환멸의 파노라마인 셈이다. 여기서 플로베르의 또 다른 대작 <보바리 부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플로베르가 '환멸'을 다루는 재주란 정말....ㅋㅋ 두 소설의 공통점은 드라마나 소설을 너무 많이 봐서 눈만 높아진 주인공이 초라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자멸한다는 점인데, 엠마 보바리가 삼류 연애소설에 빠져 시골 의사 남편을 무시하고 로맨스를 찾아 탈출을 시도하듯, 프레데릭 역시 낭만적 성공을 꿈꾸며 파리를 기웃거리지만 감정과 통장 잔고만 소모할 뿐이다. 둘 다 실행력은 없으면서 이상만 높은 인물들이라 잔인한 플로베르는 이들에게 어떠한 동정표나 도덕적 쉴드도 쳐주지 않고, 팝콘을 씹듯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들의 허영심을 폭로한다. 차이라면 두 작품의 '환멸의 규모'랄까. <보바리 부인>이 좁혀진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엠마라는 개인이 사치와 불륜 끝에 사채 빚에 짓눌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매운맛의 극적 비극이라면, <감정교육>은 대도시 파리 전체를 무대로 온갖 속물들이 얽히고 설키며 세월의 흐름 속에 주인공의 열정이 잔잔하게 마모되어 가는 순한맛의 미지근한 허무를 보여준다. (과연 이게 순한맛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비유하자면 <보바리 부인>은 한 개인의 망상과 파멸을 정교하게 해부한 '현미경'이고, <감정교육>은 한 세대 전체의 찌질함과 역사적 혼란을 널찍하게 담아낸 '망원경'이라 할 수 있을 듯. 출간 당시 <감정교육>은 "주인공이 너무 답답하다", "줄거리가 산만해서 답답해 죽겠다"는 독자들의 야유 속에 묻혔다고 하는데, 훗날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 같은 현대 문학의 거장들에게 "삶의 무의미함과 찌질함을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내다니!"라는 찬사를 받으며 현대 모더니즘 문학의 기틀을 다진 위대한 걸작으로 남았다고 한다. (혹시 동족상잔일까....ㅋㅋ) 심지어 그 중 프루스트는 말했단다. "<감정교육>의 프레데릭은 바로 나" 라고ㅋ 여튼 거창한 야망과 낭만적 환상을 품고 파리에 상경한 청춘이 현실의 속물주의와 역사적 혼란 속에서 완벽하게 무기력해져 가는 과정을 서늘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문학사상 가장 고품격인 '성장 없는' '환멸'의 서사시! 읽어보시라. 진짜 너무 재밌다. 소설의 묘미란 정말...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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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왕 헨더슨 ㅣ 펭귄클래식 115
솔 벨로우 지음, 이화연 옮김 / 펭귄클래식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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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벨로, <비의 왕 헨더슨>은 무료한 부자 백인이 아프리카에서 어쩌다 왕으로 데뷔하게 되는 진기명기 피땀눈물 대서사시로, 물질적 풍요 속에서 깊은 허무와 실존적 위기를 겪는 50대 미국인 거부 유진 헨더슨이 내면의 갈증("I want, I want")을 해소하려 아프리카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희극적 실존주의 소설이다. 1세계 백인이 찾아봤자 별 것도 없는ㅋ 자아 찾기를 위해 오지 탐험하는 스토리는 차고 넘치고 그게 그거다 싶고, 게다가 그런 서사는 자칫 시대착오적인 백인 우월주의나 시혜적 태도, 혹은 야만 대 문명의 진부한 이분법으로 빠지기 쉬워 사실 흐린눈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솔 벨로는 헨더슨을 거창하고 완벽한 구원자로 두지 않는다. 그저 덩치만 거대할 뿐 속은 텅 비어 있는, 우스꽝스러운 문명병 환자로 그려낼 뿐이다. 오히려 아프리카 부족들과 그들의 왕 '다후'가 헨더슨보다 훨씬 더 깊은 철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헨더슨은 그들의 지혜와 넘치는 생명력 앞에서 끊임없이 깨지고 깨달음을 얻는 존재일 뿐이다. 유색인종을 단순한 배경이나 계몽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고, 기묘할 정도로 대등하고 존중감 있게 다루는 이 시선이야말로 이 소설을 한 끗 다르게 만드는 지점이다. 헨더슨이 와리리 부족에서 사자와 교감하며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고정된 '존재(Being)'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성(Becoming)'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서사 자체로도 말도 안되게 재밌다. 솔 벨로 소설의 단점을 감히 하나 꼽자면 다소 멋없어 뵈는 특유의 제목들 아닐까 싶다가도, 읽다 보면 깊은 철학적 성찰과 특유의 위트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글맛에 빠져 "이거 말고는 답이 없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그의 작품에는 늘 명확히 이해되는 어떤 한계와 경계가 존재하고, 그것이 묘한 쓸쓸함과 뭉클함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여튼 허무와 존재의 열망 사이에서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현대인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묻고, 내면의 야성과 생명력을 되찾아주는 영혼의 구원기 <비의 왕 헨더슨> 적극적으로다가 영업을 해보며ㅋ 번외로 읽기 전부터 의미심장하더니 완독 후 전율을 느낀 한국어판 표지 디자인은 펭클 통틀어 가히 최고라고 생각할 정도로 멋지다. 내 책장 배 올해의 커버상 드림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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