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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악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1
레이몽 라디게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14년 5월
평점 :
레이몽 라디게의 소설 <육체의 악마>는 전쟁이라는 비극의 이면에서 피어난 미성숙한 청춘의 파멸적 사랑과 지독한 허무주의를 해부한 소설이다. 16세에 집필하여 20세에 요절한 이 발칙한 작가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사적 대재앙을 그저 꼰대들의 감시가 사라진 개꿀 같은 '방학'으로 규정하며 포문을 연다. 사회적 규율이 셧다운 되자 소년 프랑수아에게 찾아온 것은 애국심이 아니라 목적지 없는 지독한 권태였고, 그는 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전선으로 남편을 보낸 연상의 유부녀 마르트를 간택해 금지된 불장난을 시작한다. 라디게는 이 지저분한 설정을 순애보로 포장하지 않는다. 도리어 사랑이라는 고결한 가면 뒤에 숨은 인간의 치졸한 이기심과 찌질함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집요하게 까발린다. 프랑수아는 마르트와의 연애가 권태의 늪에 빠질 때마다 일부러 질투를 유발하고 의심을 투척하며 관계를 짓밟는다. 이는 사랑의 확인이라기보다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는 미성숙한 자아의 비틀린 발악이다. 결국 제목이 가리키는 육체의 악마란 기성세대가 구축한 지루한 세상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며, 통제 불가능한 육체적 충동을 통해 권태라는 거대한 늪에서 빠져나가려 했던 청춘의 파괴적인 반항을 의미한다. 이 소설이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련되게 읽히는 비결은 고딩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는 냉소적이고 시크한 필력에 있는 듯하다. 감정에 취해 울부짖는 대신, 마치 남의 연애 진흙탕 싸움을 구경하는 냉정한 관찰자처럼 차분하고 건조하게 팩트만을 나열한다. 이 고단수적인 절제미 덕분에 읽는 동안엔 불륜과 책임 회피라는 막되먹은 서사 속에서도 기묘한 문학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육체의 악마>는 전쟁중이라는 완벽한 알리바이 속에서, 인간이 권태라는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랑이라는 환상 아래 감추어진 독점욕과 허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투명하게 증명해 낸다.
PS. 고전 속 소재로 불륜이 심심찮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보쟈ㅋ 고전이 쓰인 옛날(특히 19세기 전후)의 결혼은 남녀가 눈이 맞아 하는 로맨스가 아니라, 가문과 재산, 신분을 결합하는 가장 강력한 사회적 제도였다. 즉, 결혼을 유지한다는 건 그 사회의 법과 도덕, 종교의 시스템을 잘 따르고 있다는 증명이고. 불륜이 발생하는 순간, 그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정절, 명예, 종교적 계율, 가부장제 같은 모든 가치가 한꺼번에 도마 위에 오르고,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인간 군상의 속물근성과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들킬까 봐 땀을 쥐는 공포, 금기를 깰 때의 짜릿함, 소유욕과 질투까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막장급 감정 소용돌이를 단 한 편의 소설로 뽑아내기에 이보다 완벽한 실험실이 또 있었을까ㅋ 평화롭고 안정적인 삶에서는 인간의 진짜 본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데, 작가들은 인간의 내면을 극한까지 몰아세우고 싶어 하고, 불륜은 그 자체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극한 상황을 보장하니까. 평화로울 땐 세상 젠틀하던 인간도 이 불장난 속에 던져지면 찌질함과 잔인함의 바닥을 여실히 드러내니까. 결국 고전 속 불륜은 ‘안전하지만 지루한 현실(권태)’과 ‘위험하지만 짜릿한 환상(열정)’ 사이의 밀당을 보여주는 거대한 비유가 아니었을지. 지독한 일상의 지루함을 깨부수려 불 속으로 뛰어들지만, 대문호들은 냉정하게도 그 불타는 열정마저 결국 또 다른 권태나 파멸로 끝난다는 현생 팩폭을 또 날려주니까. 그러니까 고전 속 불륜은 자극적 찌라시가 아니라,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욕망과 나약함을 해부하기 위해 작가들이 날카롭게 벼린 문학적 메스였던 셈 아닐까. 라고 고전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아...애써본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