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96
세사르 아이라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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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르 아이라의 <바라모>는 “체계적으로 준비된 삶 따위는 한 순간의 엉뚱한 아수라장 앞에서 아무 힘도 못 쓴다”는 진리를, 시크하고 뻔뻔할 정도의 쿨함으로 입증해 보이는 아방한 코미디이자 철학적인 잔혹극이다. 


1923년 파나마시티, 오늘의 불운아 바라모는 시인이나 예술가는커녕 세상에서 가장 영혼 없는 얼굴로 서류나 철할 것 같은 소심한 하급 공무원이다. 그런 그의 평온하고 지루한 일상에 대형 엿 같은 사건이 터지니, 바로 나라에서 준 한 달 치 월급 봉투 속 돈이 위조지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억울함에 분통을 터뜨리기는커녕, 이거 잘못 쓰다가 거대한 비리 음모에 휘말려 철창신세를 지는 건 아닐까..하는 새가슴 특유의 패닉에 빠진 바라모는 그 가짜 돈을 버리지도, 쓰지도 못한 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축축한 밤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바로 이 황당한 공포가 그를 기이함이 폭발하는 밤의 세계로 떠밀어 버린다. 그날 밤 파나마의 골목길은 정상적인 이성이 마비된 미친 자들의 정모 장소 같다. 바라모는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이상한 인물들과 부딪히며, 박제된 골프공의 철학적 가치에 대한 쓸데없이 진지한 대화부터, 마당이 사막으로 변해간다는 해괴망측한 이론까지 들어줘야 하는 서스펜스를 겪는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정신과 상담을 예약해야 할 것 같은 이 어처구니없는 우연의 연속 속에서 바라모는 멘탈이 털릴 대로 털린 채 날이 밝아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여기서 골 때림 시작... 날이 새고 피곤에 지친 바라모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펜을 잡더니, 평생 시 한 줄 안 써본 손으로 순식간에 시 한 편을 갈겨쓴 것이다. 그리고 더 웃긴 건, 단 몇 시간 만에 얼렁뚱땅 쓰인 이 시가 훗날 중앙아메리카 현대 시학의 사조를 새로 쓰는 위대한 걸작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현실적인 개연성을 따진다면 꺼지라 하겠지만,,, 세사르 아이라의 문학판에서는 이게 바로 가장 완벽하고 쿨한 예술의 탄생 공식인가! 작가는 계획을 세우거나 머리를 쥐어짜며 글을 다듬는 고상한 예술가 흉내를 비웃는다. 그에게 예술이란 고통스러운 고뇌의 산물이 아니라, 재수 없는 사건과 엉뚱한 우연들이 충돌하면서 멘탈에 균열이 생길 때 픽 하고 터져 나오는 불꽃놀이에 가까운 듯하다.


바라모가 쓴 시가 희대의 걸작이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그 뒤로 깔끔하게 펜을 꺾고 다시는 시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끈질기게 다듬지 않고 단 한 번의 해프닝으로 전설이 되어 사라진 이 일회성이야말로 초현실주의자들이 그토록 원하던 무의식의 한 판 승부이자 거대한 낭만이다. 한편 소설 속 ‘위조지폐’는 문학 그 자체를 비웃는 영리한 메타포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가짜 돈이 진짜인 척 유통되는 순간 사람들을 패닉에 빠뜨리고 사건을 만들어내듯, 문학 역시 100% 픽션에 불과하지만 현실에 침투해 사람들의 머리통을 깨우는 진짜 힘을 발휘한다. 게다가 평범한 소시민이 밤새 겪은 황당한 헛소동을 가리켜 후대의 비평가들이 “현대 시학의 분기점”이라며 엄근진하게 숭배하는 모습은, 우리가 거창하게 신봉하는 ‘위대한 예술’이라는 타이틀조차 세상이 만든 정교한 위조지폐일 수 있음을 시크한 유머로 꼬집는다. 


결국 <바라모>는 삶을 굳이 치밀하게 계획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삶이 건네는 뜻밖의 엿과 황당한 우연을 경쾌하게 받아칠 때, 일상의 지루한 틀 뒤에 숨어 있던 진짜 예술적 순간이 툭 하고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애 쓰지 말쟈. 위조지폐를 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밤거리로 내몰린 바라모의 심정 그대로 케세라 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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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개들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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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데뷔작이자 라틴아메리카 '붐(Boom)' 문학의 포문을 열었던 대표작 <도시의 개들>은 페루 리마의 레온시오 프라도 군사학교라는 폐쇄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권력과 규율이라는 명목 아래 자행되는 비인간적인 폭력과 가부장적 마초이즘의 생얼굴을 냉혹하게 파헤친 사실주의 소설이다. 엄격한 계급과 군국주의적 질서를 통해 국가의 엘리트를 양성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소설이 보여주는 군사학교의 실상은 약육강식과 가혹행위가 일상화된 야만의 축소판이다. 제목에 나오는 ‘개들’은 학교에 막 입학하여 참혹하고 잔혹한 신고식을 치르는 1학년 신입생들을 가리키는 비속어이지만, 동시에 권력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서로를 뜯어먹고 길들여지며 사육되는 생도 전체, 나아가 위선적인 독재 사회와 권위주의적 구조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씁쓸한 초상을 상징한다.


학교라는 특수한 울타리 안에서 생도들은 저마다 다른 계층과 출신 배경을 지니고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생존을 위해 결성된 비공식 모임이나 집단적 폭력 구조 속에서 너무나 쉽게 악마화된다. 이 엄혹한 생존 환경 속에서 약자로 몰린 인물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고, 결국 이 사관학교 내부를 흔드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비극이 터진 순간에도 학교 당국과 집단은 진실을 규명하고 정의를 바로세우기보다는 조직의 명예와 시스템의 안위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앞세워 사건을 은폐하려 든다. 폭력 그 자체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진실을 묵살하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기득권의 침묵과 가부장적 권위주의다. 소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진실을 고발하려는 인물의 갈등을 보여주지만, 결국 그 역시 거대한 권력의 벽과 사회적 압박 앞에 무릎을 꿇고 현실과 타협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요사는 이 서사를 이끌어가면서 여러 화자의 시점을 자유롭게 오가고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정교하게 교차시키는 '다성악적(polyphonic)' 기법을 선보인다. 특히 학교 안에서 가장 무자비하고 압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조차 단순한 악인으로 다루지 않고, 하층민으로서 가난과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나운 개가 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 서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한편,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가부장적 마초이즘은 요사 문학의 강력한 동력이자 동시에 중요한 비평적 화두가 되는데,요사는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남성 중심적 지배 문화와 군대식 폭력성을 냉혹하게 고발하려는 명확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텍스트를 전개하지만, 폭력과 성적 지배를 묘사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감각적이고 생생하여 때로는 남성적 카타르시스를 자극한다는 지적을 받고, 여성 인물들은 독립된 주체나 내면을 지닌 인물이라기보다, 남성 생도들의 욕망과 질투, 결핍을 자극하는 매개체나 가부장적 폭력의 배경으로 소모되는 한계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 마초성은 긍정적으로 미화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사회적 병리로 해부된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학교라는 폭력적인 울타리를 벗어난 인물들이 돌아간 사회 역시 군사학교의 축소판에 불과하며, 그들 모두가 계급적 안락함과 타협을 선택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흡수되는 모습은 "폭력의 울타리를 벗어난 우리는 진짜 인간이 되었는가, 아니면 그저 좀 더 교묘하게 길들여진 도시의 개가 되었는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출간 당시 페루 군부에 의해 국가 모독이라는 이유로 불태워지기도 했다던, 집단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존엄이 파괴되는 과정을 폭로하는 동시에 붐 세대 남성 작가가 지닌 가부장적 시선의 한계와 그것을 넘어서려는 문학적 열정을 동시에 증명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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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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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악을 왕의 망토처럼 차분하게 두르고 다녀야 한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감지하지 못하는 체하는 후광처럼. 대기의 투명한 진흙 속에서도 흐려지지 않는 윤곽은 타락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형식에 관한 최고의 악이다" 세자르 모로, <죽도록 사랑하기>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 <새엄마 찬양>의 초입에 등장하는 인용으로 이는 소설 전체가 지향하는 미학적·철학적 역설을 완벽하게 집약하고 있는 듯하다. 이 문장은 유약하고 성찰 없는 도덕성이 세속의 탁함 속에서 맥없이 형체를 잃어버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자신의 금기와 욕망을 직시하고 넘어선 타락과 완벽하게 다듬어진 예술적 형식이 얼마나 압도적이고 치명적인 존재감을 갖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사는 이 작품에서 도덕적 선악의 기준을 철저히 탈색시킨 채, 관능의 세계를 서양 미술사의 명화들과 정교하게 엇물려놓으며 하나의 완벽한 미학적 성채를 구축해낸다. 브론치노의 <비너스, 쿠피도, 어리석음과 시간의 알레고리>나 프랑수아 부셰, 프랜시스 베이컨 등의 그림은 단순히 인물들이 감상하는 배경 장식에 그치지 않고 인물들의 욕망을 투영하고 행동을 유발하며, 도덕적으로 단죄받아야 할 금기된 행위들을 완벽한 artistic form으로 변주하는 핵심적인 텍스트로 기능한다. 의붓아들 알폰소와 새엄마 루크레시아 부인, 그리고 아버지 돈 리고베르토 사이에서 벌어지는 유혹과 파국은 표면적으로는 세속적인 불륜과 금기의 파기를 다루는 듯하지만, 서사를 이끄는 동력은 도덕적 죄의식이 아니라 미적 완전성에 대한 탐닉이다. 천사처럼 무구한 얼굴과 은밀한 악마성을 동시에 체현한 어린 알폰소는 브론치노의 그림 속 쿠피도처럼 어른들의 욕망과 관계를 조용히 조종하며, 정교하게 연출된 판 안에서 도덕적 우위를 점하던 성인 인물들은 유혹과 관능 앞에 맥없이 무너져 내린다. 그리하여 소설은 관능과 아름다움이야말로 세속의 단단하고 편협한 도덕적 질서를 비웃듯 집어삼키는 '최고의 악'이자 가장 강력한 권력임을 증명하는 탐미주의의 승리로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의 화려한 미학적 성취 뒤에 숨은 서늘한 질문, 즉 탐미주의적 승리의 대가를 치르는 척결 대상이 왜 오직 여성인 루크레시아여야만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알폰소는 도덕을 초월한 신화적·자연적 악으로서 미학적 완벽함을 얻고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으며, 돈 리고베르토 역시 밤마다 명화를 통해 관능적 환상을 구축하는 남성적 시선의 주체로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지만, 관능을 실현한 루크레시아는 가부장적 질서를 위협한 단 한 명의 죄인으로 낙인찍혀 집안으로부터 철저히 축출당한다. 이러한 결말은 남성의 관능과 에로틱한 상상력은 고결한 예술적 유희나 미학적 탐구로 포장되는 반면, 그 유혹의 프레임 안에서 반응한 여성의 관능은 가정을 파괴하고 윤리를 더럽힌 오물로 취급받아 모든 도덕적 부채와 사회적 형벌을 혼자 뒤집어쓰게 되는 지독한 성별 불균형과 가부장적 이중잣대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이러한 척결의 편향성은 비단 <새엄마 찬양> 한 작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요사의 작품 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여성관과 페미니즘적 비판 시각과 깊이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의 문학은 남미 사회의 폭력성과 독재, 마초주의의 야만성을 파헤친 뛰어난 서사적 기교로 찬사를 받아왔으나, 그 서사를 구성하는 여성 인물의 재현 방식에 있어서는 지속적으로 가부장적 남성 중심 시선의 한계를 드러낸다. 첫째로 요사의 작품에서 여성은 독립적인 내면과 주체성을 지닌 존재라기보다 남성 주인공의 성적 환상과 관능적 욕망을 투영하는 대상이나 미학적 관찰의 객체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의 육체는 아름답게 찬미되지만, 그 찬미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프레임을 틀어쥐고 시선의 정치를 행하는 남성들이며, 여성은 그 남성적 환상이 작동하기 위해 배치된 미학적 도구에 가까운 위치를 점한다. 둘째로 요사가 정치적·사회적 폭력을 고발하는 정통 소설들에서도 여성 인물들은 가부장적 권력과 마초적 폭력의 최전선에 노출된 희생자로 그려진다. 이러한 묘사는 독재와 남성 권력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강력한 장치로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늘 지배당하고 짓밟히며 수동적으로 수난을 겪는 무력한 피해자의 틀 안에 고착시킨다는 페미니즘적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셋째로 요사의 서사는 여성을 조형할 때 가부장제가 오랜 세월 구축해온 이분법적 프레임을 유의미하게 해체하지 못한다. 결국 요사는 19세기 탐미주의 문학이 지녔던 여성을 팜프 파탈이자 관능의 객체로 위치시키던 고전적 한계를 20세기 남미라는 공간으로 가져와 재현하였으며, 미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관능의 유희는 남성 인물들이 나누고 그로 인한 도덕적 단죄와 파국의 비극은 여성에게 떠넘기는 가부장적 서사 구조를 완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엄마 찬양>이 선사하는 미학적 충격과 서사적 긴장감은 여전히 강력한데, 이는 역설적으로 요사가 구축한 이 화려하고 서늘한 탐미주의적 성채가 도덕의 무기력함을 증명함과 동시에, 그 성채의 가파른 계단이 어떤 여성의 희생과 축출을 딛고 세워졌는가를 눈부시게 비춰주기 때문이다. 도덕을 초월한 완벽한 미적 형태가 주는 매혹에 압도당하는 동시에, 그 완벽함의 뒤편에서 작동하는 가부장적 권력의 서늘한 계산법을 읽어냄으로써 비로소 텍스트의 미학적 성취와 정서적·사회적 한계를 입체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여튼 분량이 적어서 후루룩 넘어가면서도 이래 저래 좀 힘들었던, 이전에 웃겨서 웃느라 웃으며 읽었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역시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소설이었다. 이 찝찝함을 가부장적 역사 서사를 여성의 시선으로 재구성하는 라틴아메리카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로 좀 잠재워야겠...추천 받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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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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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라틴아메리카 현대문학이 다다를 수 있는 미학적 완성도, 거친 현실을 아름다움으로 변주하는 독보적인 문장의 힘, 그리고 관료주의를 통쾌하게 꼬집는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표면적으로는 읽는 내내 배를 잡게 만드는 코믹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웃음의 장막 아래에는 권력의 위선과 국가 시스템의 기형성을 정확히 겨냥한 예리한 정치적 함의가 촘촘히 엮여 있다. 서사는 아마존 오지 주둔 페루 군대 내의 통제 불가능한 성적 욕구와 민간인 마찰, 군기 확립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환장 극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지극히 금욕적이고 철저한 원칙주의자인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가 책임을 맡아 군인들을 위한 이동 창녀 조직, 일명 ‘수국초특(수비대와 국경 및 인근 초소를 위한 특별봉사대)’을 운용하게 된다. 판탈레온은 특유의 꽉 막힌 고지식함으로 여성 대원들의 봉사 횟수, 이용 시간, 수용 인원, 심지어 사정거리와 침대 간 거리까지 수학적·행정적으로 완벽히 데이터화하며 조직을 폭발적인 성공으로 이끈다. 이 ‘수국초특’의 가동 과정은 겉으로는 청교도적 엄숙주의를 부르짖으면서도 속으로는 부패해 가는 페루 군부와 정치 권력에 대한 통렬한 패러디로 완성된다. 이 기형적인 시스템 안에서 군부와 정치계는 거대한 매춘업소로 변모하고, 손 하나 묻히지 않는 장성급과 영관급은 그 업소의 관리인이며, 판탈레온 같은 하급 장교는 비윤리적 실무를 서류로 깔끔하게 세탁해 바치는 뚜쟁이나 기둥서방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사회 최하층으로 취급받던 창녀들이야말로 시스템을 가동하는 실질적 ‘엘리트 집단’이 되는 자극적인 역설을 통해, 소설은 묵직한 정치적 비판과 풍자를 신랄하게 전개한다. 소설 중간중간 삽입되는 군 공식 보고서의 영혼 없는 코믹함, 사적 편지, 라디오 방송 대본, 환각적 독백 등 다양한 텍스트를 촘촘히 직조해 낸 다성악적(Polyphonic) 구성은 가히 이 작품의 백미이자 독서의 재미를 200% 보장하는 요소다. 특히 5장,8장의 정신없이 이어지는 교차 대화가 아주 흥미로운데, 관료주의는 숫자를 위해 성(性)과 인간을 통제하고, 방주교는 구원을 위해 어린아이의 생명을 십자가에 매달아 제물로 바친다. 요사는 이 두 집단을 교차시키며, 국가 시스템의 차가운 관료주의 역시 사이비 종교의 광기와 다를 바 없이 기형적이고 위험하다는 점을 폭로한다. 권력의 민낯을 신랄하게 밝혀내는 고도의 정치적 풍자, 숭고한 블랙 유머, 그리고 경이로운 문장미가 완벽하게 맞물려 완성된 걸작, 이 책은 현재 내 책장 배 올해의 책 1위로 등극하엿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진짜 미친 사람....도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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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충 사육 준수 사항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48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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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 작가의 장편소설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은 갓 구운 소금빵의 겉바속촉한 비주얼과 짭조름한 풍미를 완벽하게 복제한 식용 애벌레 '빵충'이라는 미친 설정으로 시작해, 벼랑 끝 청년의 생존 투쟁과 인간의 터져 나가는 탐욕을 기쾌하고 뻔뻔하게 그려낸 신개념 코믹 크리처 서스펜스다. 한때 망할 놈의 음악을 한답시고 트럼펫을 불며 폼 잡다가 밑바닥을 치고 시골로 튕겨 나온 주인공 정한은, 인생 막판 뒤집기로 전 재산을 털어 정부 지원 신산업인 '빵충 사육'에 영끌 투자를 감행한다. 꿈틀거리는 빵충이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대박을 치고 통장에 찍히는 대기업급 숫자를 보며 정한은 마침내 흙수저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고 착각하지만, 이 기묘하고 맛있는 애벌레를 안전하게 키우려면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까다로운 '사육 준수 사항'이라는 룰북이 존재한다. 문제는 조금이라도 더 살찌우고 크게 키워 거액을 벌어들이려는 사육자들의 눈먼 탐욕과 "설마 별일 생기겠어?"라는 안일함이었다. 경고를 씹고 하나씩 규칙을 어기기 시작하자, 소설은 씁쓸한 짠내 나는 청년 잔혹극에서 한순간에 약을 사정없이 판 듯한 엽기 크리처 난장판으로 대폭주한다. 귀여운 소금빵 코스프레를 벗어던진 빵충들은 식인 성향을 드러내며 통제 불능의 괴물로 변모하고, 사육장은 단숨에 코믹과 비명이 난무하는 헬게이트로 변한다. 이러한 설정과 서사 구조는 1904년 발표된 H. G. 웰스의 고전 SF 소설 <신들의 양식은 어떻게 세상에 왔나>를 소름 돋을 정도로 강렬하게 연상시킨다. 웰스의 소설에서 성장을 촉진하는 신물질 '허클라 물질'이 연구자들의 부주의와 관리 소홀로 유출되어 쥐와 닭, 곤충들을 공포의 거대 크리처로 탈바꿈시키고 끝내 기존 문명의 질서를 위협했던 것처럼, <빵충 사육 준수 사항> 역시 인간의 오만함과 방심이 초래한 생물학적 파국이라는 거대한 장르적 계보를 잇는다. 웰스가 20세기 초 과학기술의 폭주와 문명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문명론적 풍자를 보여주었다면, 김혜영 작가는 이 영리한 모티브를 가져와 현대 한국 사회의 청년 생존 투쟁, 자본주의의 날것 그대로인 욕망, 그리고 B급 매운맛 감성으로 완벽히 재해석해 냈다. 작가는 황당무계한 세계관을 쓸데없이 고퀄리티인 취재력과 디테일한 묘사로 밀어붙여 독자에게 웃기면서도 가슴 졸이는 고밀도의 도파민 폭탄을 안긴다. 그러고 보면 작품 속 '사육 준수 사항'은 단순한 벌레 키우기 매뉴얼이 아니라, 웰스의 소설 속 통제력을 잃은 인간 사회처럼 자본주의라는 미친 굴레 속에서 인간이 최소한 짐승이나 벌레가 되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마지막 양심의 마지노선이었을지도 모른다. 파국이 몰아쳐 사육장이 개판 오분전이 된 와중에도 도망치는 대신 자기가 싼 똥을 치우고 과오의 대가를 치르겠다고 나서는 정한의 무기는 다름 아닌 '음악'이다. 돈이 안 된다며 던져버렸던 그 망할 놈의 예술이, 역설적이게도 지옥 같은 파국 속에서 그를 괴물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남게 만드는 유일한 가오이자 영혼의 방파제가 되어준 셈. 소금빵 탈을 쓴 애벌레가 선사하는 골 때리는 웃음과 서늘한 스릴, 그리고 삭막한 자본의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을 건져 올린 것이 결국 예술이었다는 이 서늘하고도 아름다운 역설ㅋ 깊고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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