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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망한 사랑
김지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평점 :
김지연 작가의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은 관계의 균열과 삶의 파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서사를 담담하게 그려낸 현실 밀착형 작품이다. 망한 사랑. 와중에 붙은 ‘조금’ 이라는 수식어가 어쩐지 확실히 망했음을 확인시켜 주는 듯하다. 조금 망하든 완전 망하든 뭐래도 일단 망한 것은 망한 것이세요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다시 붙여보고 싶은 일말의 희망으로 보여 짠하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확정적으로 망했네 싶고. 그러나 극적이거나 비극적인 파멸 대신 일상에서 슬그머니 어긋나거나 망가진 사랑을 다루면서, 건조함 속에 묘한 위트와 특유의 대화체 중심 서사로 묵직한 가라앉음 대신 이상한 안도감을 선사한다. 빚, 주거 문제, 연애와 우정의 균열 등 외부적 현실 조건이 개인을 흔드는 과정을 그리면서도, 인물 간의 건조한 대화를 통해 묵묵히 상황을 견뎌내는 과정을 포착한다. 원초적인 불평등과 결핍 속에 내던져진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이 처한 불행 앞에서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식의 자기연민이나 피해의식에 빠지지 않는다. 비극을 드라마틱하게 포장하거나 극복하려 애쓰지 않고, 이미 망해버린 현실을 삶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채 담담하게 다음 순간을 살아낸다. 작가의 퀴어 정체성과 맞물려 형성된 사회적 외곽 인물들의 감각은 삶의 비참함에 압도당하는 대신 ‘망함’을 초월해버린 단단하고 무심한 태도로 이어진다. 감정적 낭비나 자기 연민 없이 현실을 무덤덤하게 견디는 이 서늘함과 초월적 태도...가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