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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영토 - 2010 공쿠르 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1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평점 :
프랑스의 대표적 현대 작가 미셸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 예술 시장, 그리고 인간의 고독을 날카롭게 파헤친 작품이다. 주인공 예술가 제드 마르탱의 작품 세계와 우엘벡 자신을 소설 속 인물로 등장시켜 잔혹하게 끝장내는 파격적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명제는 바로 "지도가 영토보다 더 흥미롭다"는 것. 날것의 찌질하고 불완전한 현실(영토)보다는, 자본주의가 예쁘게 포장하고 보정한 브랜드와 기호(지도)에 사족을 못 쓰는 현대인의 허세를 정곡으로 찌른다. 주인공인 화가 제드 마르탱의 '노동 연작' 역시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예술도, 노동도, 인간관계도 결국 '얼마에 팔리냐'로 귀결되는 서늘한 현실을 보여준다. 심지어 우엘벡은 소설 속 자폐적이고 찌질한 작가 본인을 직접 등장시킨 뒤, 상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셀프 도륙'을 감행한다. 자학적 피학성애에 가까운 이 연출은 서구 문명의 종말을 온몸으로 웅변한다. 결국 인간이 만든 화려한 인스타그램용 '지도'는 다 사라지고, 잡초만 무성한 '영토'만 남을 것이라는 결말은 서늘한 블랙 코미디 그 자체다.
내가 우엘벡의 작품을 약 15년 전에 <소립자>를 시작으로 <플랫폼>,<어느 섬의 가능성>,<세로토닌>까지 읽고는 다시는 우엘뷁의 책은 읽지 않겠다 결심했는데, 이유는 이 책들이 현대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음에도 동시에 백인 이성애자 남성의 사랑관계에 대한 절망을 묘사하면서 어김없이 수반하는 거침없는 여성 혐오, 여성 신체에 대한 집착적인 물화, 타문화에 대한 PC함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편견과 도발적 발언 등이 참을 수 없게 역겨웠기 때문이다. 그 중 <세로토닌>을 보고 있자면 '늙음에 대한 병적 집착'으로 몸은 시드는데 욕망만 살아남은 자가 겪는 절망적인 형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꼴보기 싫은 자기연민)을 보여준다. 우엘벡에게 노화는 단순히 나이가 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에서 육체적 상품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비극이자 소외랄까. 항우울제 부작용으로 성기능을 잃어가면서도 머릿속엔 젊음에 대한 욕망이 그대로 남아있어, 지독한 수치심과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꼴값까지. 여기서 젊은 여성은 단순히 성적 대상을 넘어 잃어버린 생명력을 구원해 줄 마지막 환상이지만, 스스로 자격 미달임을 알기에 결국 찌질한 피해의식과 절망으로 귀결된다. 결국 그의 노화 집착은 불쾌감을 넘어 씁쓸함을 느끼게 만드는데, 이는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 누려온 권력과 육체의 유통기한이 완전히 끝났음을 작가 스스로가 체감하며 지르는 처절한 비명인 셈... 하...뷁스럽냐 아니냐..ㅋ
그럼에도 애증의 우엘뷁... 왜그랬는지 나도 몰라 어쩌다 보니 손에 들고 있던 <지도와 영토>. 그의 기존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순한 맛'이다. 기존 소설들에서 나타난 자극적인 성적 묘사나 노골적인 여성 신체 대상화가 확실히 줄었으며, 사회적 스캔들을 야기하는 정치·인종적 도발 대신 '예술과 자본', '노동과 고독'이라는 보다 보편적이고 건조한 주제에 집중한다. 나아가 타자를 향한 날 선 공격성을 자신을 파괴하고 희화화하는 자학적 유머로 선회함으로써 독성을 대폭 완화했다. 결과적으로 작가의 혐오적 도발에 방해받지 않고 현대 문명의 가공된 기호성과 자본주의적 고독을 파헤치는 그의 서늘하고 정교한 미학적 통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늙음을 애써 관조하는 듯한 그가 어쩐지 짠해 보이기도 하지만... 여튼 <지도와 영토>는 냉소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시선으로 현대 자본주의와 예술 시장, 인간의 고독을 딥하게 말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 제드가 식물이 인공적인 미니어처와 문명의 흔적을 덮어버리는 영상 작업을 하며 여생을 보내는 장면은, 결국 인간이 만든 모든 '지도(기호)'가 사라지고 '영토(자연/시간)'만이 남게 될 것이라는 서늘한 무상함을 남긴다. 우리가 매일 쫓는 가치나 이미지, SNS 속 삶이 혹시 실재하는 영토를 잊게 만드는 '화려한 지도'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한 작품이다.
“제드는 이제 자신이 진정으로 속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이 세상을 떠나리라는 것을, 그나마 풍성하지도 않았던 인간관계가 하나하나 말라가다가 마침내 완전히 고갈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의 삶은 현재 안주하고 있는, 완벽하게 마감처리된 이 아우디 A6 올로드 안과 같으리라. 고요하고 기쁨이 없는 상태, 요컨대 무감각한 중립 상태 말이다.” P.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