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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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작가의 <1차원이 되고 싶어>는 2000년대 초반, 여름의 열기와 습도가 지옥 모드로 폭발하던 D시(아마도 대구)를 배경으로 청소년기의 흑역사, 열병 같은 사랑, 그리고 십대들의 잔혹한 매운맛 인간관계를 제대로 구현해 낸 작품이다. 소설의 제목이자 핵심 모티프인 '1차원'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3차원의 세상에서 탈출해 너와 나를 직선으로 싹 연결하는 단 하나의 관계에 대한 절박한 갈망을 뜻한다. 어차피 남의 속마음 읽기는 만렙이 될 수 없고 타인과의 관계는 오해와 헛발질의 연속인데, 주인공은 온갖 신호 오류가 난무하는 다차원적인 세상의 소음 속에서 제발 너와 나 사이에 와이파이 단단히 터지는 직선 하나만 그어달라는 심정으로 1차원적인 단순함과 명료함을 갈구한다.


이러한 주인공의 절박함은 2000년대 초반이라는 Y2K 특유의 밀레니엄 감성과 조합되어 한층 더 진해진다. 싸이월드 도토리와 일촌평으로 마음을 표현하던 그 시절, 심지어 배경은 보수적이고 답답한 분위기까지 감도는 도시다. 이 정교한 공간성 위에서 소설은 단순한 추억 팔이를 넘어, 벼랑 끝에 몰린 인물들의 고립감을 꽉 찬 밀도로 증폭시킨다.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꼭 숨겨야 하는 비밀들, 입시 위주의 잔혹한 환경 속에서 작가는 겉으로는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속으로는 뼈가 시려오는 특유의 서늘한 입담으로 십대들의 위태로운 일탈을 펼쳐 보인다. 인물들이 던지는 가벼운 대사 뒤에는 말로 다 못 한 쓸쓸함이 칼날처럼 날을 세우고 있다.


나는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른바 '성장 소설'을 좀처럼 읽지 않는다. 교훈적인 깨달음이나 미숙함의 풋풋한 극복, 혹은 낭만적으로 포장된 청춘의 성장기를 마주하며 나의 청소년기를 떠올리는 일이 거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중·고등학생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심지어 책장을 다 넘긴 후에도 이것을 감히 '성장 소설'이라는 무던한 단어로 분류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여타 성장 소설들이 '비 온 뒤에 땅이 굳고, 아이들은 성숙한 어른이 됩니다'라는 아름다운 교훈을 준다면, 이 책의 인물들은 성숙해지기는커녕 압도적인 폭력성 속에서 일단 오늘 하루만 살아남자는 모드로 몸부림을 친다. 성장이 아니라 인격의 유약한 부분들이 덜컹거리며 깎여나가는 마모의 기록에 가깝다. 비밀이 짓밟히고 관계가 비틀어지는 모습은 희망찬 성장기보다는 오히려 스릴러나 장르물 같은 서늘함을 자아낸다. 게다가 과거의 스토킹 및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서사와 현재 시점이 번갈아 나오면서, 그 시절의 상처가 어른이 된다고 깔끔하게 자동 치유되는 게 아니라는 씁쓸한 현실까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영수증처럼 처박혀 있는 부채감이 현재의 삶을 짤짤 털어대는 것이다.


그렇게 참아왔던 감정의 폭주가 사이다 뚜껑 터지듯 한 번에 터져 나오는 클라이맥스가 바로 소설 후반부의 장례식장 옥상 씬인 듯한데... 삶과 죽음의 냄새가 짙게 베인 장례식장, 그것도 공중에 위태롭게 떠 있어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조차 없는 '옥상'이라는 공간은 두 사람이 처한 막장 같은 처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경계선에 간당간당하게 서서 나눈 이 이별이 가슴을 후벼파는 진짜 이유는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라, 서로를 지키기 위해 혹은 더 이상 상처 주지 않으려고 억지로 손을 놓아야 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아직 어른들 밑에서 치킨이나 사 먹으며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세상의 추위와 폭력을 맨몸으로 맞서며 울컥 쏟아낸 눈물은, 나이와 퀴어라는 키워드를 완전히 뛰어넘어 누군가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처절하게 잃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이 저릴 수밖에 없는 원초적인 슬픔을 자극한다.


가볍게 슥 읽히는 유쾌한 문체 뒤에 묵직한 감정의 펀치를 숨겨둔 무서운 작품이다. 미숙했던 시절, 너와 나 사이에 1차원의 직선을 곧게 그어보려고 애썼지만 끝내 일그러진 도형처럼 상처만 남았던 그 시절의 방황. 비록 그것이 예쁜 포장지로 싸인 성장이라는 결말을 맺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지독하게 뜨거웠던 실패의 역사 자체가 역설적으로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튼튼하고 아픈 뼈대가 되어주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코믹함 섞인 서늘함과 애틋함으로 묵직하게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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