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술 취한 파리와 맛이 간 돌고래 - ‘약 빤’ 동물 세상으로의 여행
오네 R. 파간 지음, 박초월 옮김 / Mid(엠아이디) / 2023년 8월
평점 :
불금에 만취해 가로등과 한 판 뜨는 주정뱅이를 한심하게 바라본 적 있나? 안타깝게도 우리 조상님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오네 R. 파간의 <술 취한 파리와 맛이 간 돌고래>는 ‘취하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라는 건방진 착각을 단숨에 박살 내는 본격 ‘동물계 유흥 탐사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라인업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썩은 과일 즙을 빨아먹고 인사불성이 되어 엉뚱한 암컷에게 치근덕거리는 ‘알코올 중독’ 초파리부터, 복어 한 마리를 가둬두고 꼬리로 툭툭 건드려 나오는 독소를 마약처럼 쪼아 먹으며 멍하게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뽕 맞은’ 돌고래 무리, 환각 버섯을 씹어 먹고 눈밭을 날뛰는 순록까지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가 펼쳐진다. 저자는 이 난장판을 진화생물학과 신경과학이라는 돋보기를 들이대며 짐짓 진지하게 분석한다. 알고 보니 이 녀석들이 목숨 걸고 ‘한 잔’ 하는 이유는 단순히 유흥 때문이 아니라, 식물의 독성을 역이용해 기생충을 박멸하거나 고칼로리 음식을 찾기 위한 치열한 생존 투쟁, 즉 ‘자가 치료’의 눈물겨운 역사였다. 게다가 미천한 초파리와 고고한 돌고래, 그리고 인간의 뇌 속 도파민 보상 회로가 놀라울 정도로 똑같이 작동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불금에 맥주 캔을 따는 행위가 수억 년 전 공통 조상으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유전적 본능임을 증명한다. 저자 특유의 약 빤 듯한 드립과 위트 넘치는 서술 덕분에 전문 과학 지식이 시트콤처럼 머리에 쏙쏙 박히며, 인간이 지닌 중독이라는 어두운 본질을 자연의 유쾌하고도 필연적인 섭리로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인간의 음주가무와 해장 문화는 대자연의 거대한 ‘알코올 클럽’에 비하면 그저 귀여운 막내의 재롱 잔치에 불과하다는 점을 뼈저리게 일깨워주는 최고의 ‘취중 과학 에세이’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