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미래가 있다 - 10대를 위한 해양과학 이야기
이고은 외 지음 / 창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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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과학에 대한 관심으로 읽게 된 책이다. 바다는 단순한 자연환경을 넘어 생명의 기원과 인류의 미래가 연결된 거대한 세계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바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 중요성과 가치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이러한 인식의 틈을 메우기 위해 기획된 해양과학 대중서로 바다를 향한 과학적 호기심과 통찰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도 깊이 있게 전한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해양과학자들과 청소년 과학 저술가 이고은이 함께한 이 책은 해양 생태계부터 기후 변화, 수산 자원, 해저 생명자원의 활용 가능성까지 폭넓은 주제를 대담 형식으로 풀어내며 우리가 왜 바다를 더 깊이 이해해야 하는지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바다를 둘러싼 다양한 과학 분야를 융합적으로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바다를 지키는 것이 곧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일임을 일깨워준다.


책은 해양과학을 생소하게 느껴온 독자들을 위해 질문에서 출발한 탐구의 여정을 풀어내며 시작한다. 과학 교사이자 저자인 이고은님은 자신조차 해양과학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는 고백에서 출발하여 왜 우리는 바다를 공부하지 않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바다는 생명, 기후, 식탁, 산업 등 우리의 삶과 깊이 연결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어딘가 먼 이야기처럼 여겨져왔다. 이 책은 바로 그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한국을 대표하는 해양과학자 네 명과의 진솔한 인터뷰를 통해 바다의 현재와 미래를 하나씩 들려준다. 심해 생물과 진화의 비밀, 물고기의 생태와 어장 변화, 해양 천연물의 신약 개발 가능성, 그리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과학의 역할까지 각기 다른 전문 분야를 다룬 네 명의 과학자는 바다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열어 줄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단순한 과학 정보 그 이상으로 바다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흥미로우면서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3장〈바다의 처방전〉이다. 그중에서도 해양 생물이 만들어내는 천연물에서 의약적 가능성을 찾아내는 이야기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 장에서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에서 연구 중인 해양바이오 과학자 이연주 박사가 바다를 향한 과학적 탐색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저자는 “자연은 최고의 의사다”라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하며 인간이 수천 년 전부터 자연에서 약을 찾아왔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육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약물 후보는 이미 대부분 발굴되었고 지금은 그보다 훨씬 미지의 세계인 바다로 시선을 옮겨야 할 때라고 말한다. 바다는 여전히 탐사되지 않은 자원으로 가득하며 그 안의 생물들은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육지 생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특이한 화학 물질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 점이 신약 개발에 있어 해양 생물이 주목받는 이유인 것이다.

실제로 복어의 독인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은 신경의 신호 전달을 차단해 강력한 진통 효과를 낼 수 있는 물질로 현재 암성 통증 환자를 위한 진통제로 개발 중이다. 또 바다 달팽이인 청자고둥에서 얻은 코노톡신(conotoxin)은 기존 진통제보다 훨씬 강력하고 부작용이 적은 약물로 탄생했다고 하니 너무나 놀아울 따름이다. 이 사례는 단순히 해양 생물이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인류의 건강에 기여할 수 있는 보물 창고임을 보여준다.뿐만 아니라 이러한 천연물을 찾아내는 여정 역시 감동적이다. 열악한 연구 환경 속에서도 고향 바다에서 청자고둥에 주목한 올리베라 박사의 이야기는 과학이 창의적 사고와 집요한 탐구정신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연주 박사는 바다를 지키는 일은 단지 환경 보호를 넘어서, 우리의 건강과 미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이처럼 과학적 정보와 인간적인 통찰을 함께 담아내며 바다가 단순한 자연 자원이 아닌 미래 의학의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책은 바다를 단순한 자연환경이 아닌 지구와 인류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책은 해양이라는 다차원적인 공간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과학적 사례와 함께 명확하게 보여준다. 특히 책 후반부로 갈수록 해양과학이 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지를 절실히 느끼게 한다. 심해 탐사를 통한 생명의 기원 추적, 해양 생물을 활용한 의약품과 신소재 개발, 해양열파와 같은 극단적 기후 현상의 분석은 바다가 곧 인류 생존의 해법이자 미래를 여는 창임을 일깨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바다를 잃는 것은 곧 미래를 잃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바다는 생명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기후 조절자이자 자원의 보고로서 인류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바다의 가치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보전하며 지속 가능하게 활용할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거이다. 또한 해양과학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융합과학 분야로서 과학적 통찰과 통합적 사고를 요구하는 시대에 가장 주목해야 할 학문이다. 이 책은 그 중요성을 단순히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전문가와의 생생한 대담을 통해 청소년 독자들이 바다와 과학, 그리고 미래를 더욱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결국 이 책은 과학과 환경, 미래를 연결하는 진정한 교양이자 해양과학에 대한 입문서로, 지금 우리가 어떤 시선을 바다에 두어야 하는 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바다를 지키는 일이 곧 우리 삶과 다음 세대를 지키는 일임을 다시금 깨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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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 - 더 이상 불안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키렌 슈나크 지음, 김진주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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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불안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지위나 나이, 환경에 상관없이 불안은 우리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과도한 경쟁 속에서 나만 밀려나는 듯한 느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 관계 속에서의 고립감까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나 불안이라는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이 감정은 결코 개인의 의지나 정신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불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를 명확하게 풀어내며, 불안이라는 감정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책은 정신 건강이 더 이상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정신과 진료에 대한 인식변화와 함께 개인의 취약함을 인정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불안을 수용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심리적 기술들을 제시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20년 이상의 임상 경험과 심리학 연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례와 실질적인 기법을 통해 그 해답을 전한다.

책은 본격적인 불안에 대한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한 기본 생활 수칙부터 제시하고 있다. 수면, 식단, 운동, 여가, 그리고 인간관계의 다섯 가지 요소는 불안을 이겨내는 데 있어 가장 실질적이고도 중요한 기반이 된다. 저자는 완벽함보다는 꾸준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누구나 일상에서 시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침들을 소개하고 있다. 단순하지만 꾸준한 자기 돌봄이야말로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고 회복력을 키우는 첫걸음임을 상기시켜 주는 부분이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불확실성과 심리적 압박을 안겨주며 불안을 더 이상 특별한 사람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들었다. 관계의 변화, 진로와 직업, 건강과 노화, 그리고 팬데믹과 같은 세계적 위기까지 삶의 전환점마다 불안은 다양한 얼굴로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이 책은 이러한 현대인의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불안을 극복해야 할 약점이 아니라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감정으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임상심리사로서 수많은 환자들과 함께한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불안을 다루는 10단계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인지행동치료(CBT), 수용전념치료(ACT), 노출 훈련, 마음챙김 등 과학적으로 검증된 기법을 토대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독자가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불안에 대응하고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각 장에는 단계별 과제와 실질적인 전략이 담겨 있어 독자가 바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이 책은 불안을 다스리는 과정에서 때때로 뒷걸음치는 순간이 있더라도 그것이 결코 실패가 아니며 자연스러운 회복의 일부임을 강조한다. 회복은 늘 직선적인 경로로만 이어지지 않기에 잠시 멈추거나 흔들리는 순간에도 자신을 탓하지 않고 다시금 나아가기를 독려한다. 저자가 실제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변화의 이야기들은 독자에게 위로와 함께 실질적인 희망과 용기를 전하고 있다.


책은 본격적인 실천 전략에 들어가기에 앞서 불안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불안에 대한 이해 없이 해결 방법부터 적용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 있으며 저자는 이를 명확히 짚고 넘어간다. 불안의 작동 원리와 그 지속 요인을 인식하는 것이 이후의 전략을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저자는 불안을 정서적, 심리적, 신체적인 요소가 결합된 복합 반응으로 정의한다. 이는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며 뇌의 구조적 반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상과 편도체 같은 뇌 부위가 위협 신호를 감지하면 몸은 자동적으로 경계 상태에 들어가게 되며, 이로 인해 다양한 신체 증상과 심리 반응이 발생한다. 이러한 반응은 원래 생존을 위한 적응 메커니즘이지만 실질적인 위험이 없는데도 반복된다면 불안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또한, 책은 불안이 생각, 감정, 행동, 신체 반응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속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불안은 강화되고, 일상생활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단순히 불안을 없애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불안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분석하고 그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안을 유발하는 트리거(Trigger) 개념 역시 중요한 항목 중 하나다. 이는 불안을 자극하는 내적 또는 외적 요인을 말하며 개인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신체 감각, 특정 장소, 타인의 말이나 행동, 과거의 기억 등이 있다. 책에서는 이러한 트리거를 인식하고 정리하는 것이 불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반 작업임을 설명한다. 이와 같은 설명을 통해, 독자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생리학적 반응과 인지적 해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현상임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이해는 이후 제시될 심리 기법과 실천 전략을 적용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론적 전제가 된다.

이 책은 불안을 단지 감정의 문제로만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불안을 내면에서 생성되고 강화되는 하나의 구조이자 패턴으로 분석하며 그것을 실질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제시한다. 책 후반부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불안을 제거하거나 억제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불안을 지속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불안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목표보다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불안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유연성을 기르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다양한 심리 기법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예컨대, 불안을 억누르기보다 수용하고 거리 두기, 무분별한 걱정에서 벗어나 주의를 회복하는 법, 지나친 추론을 멈추고 사고를 재구성하는 전략, 회피 대신 점진적으로 행동을 확장해 나가는 실천 과제 등이 그 예다. 이러한 기법들은 단지 이론에 머물지 않고 독자가 곧바로 일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실용성이 매우 높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불안을 해체하는 작업이 단번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저자가 일관되게 상기시킨다는 것이다. 때때로 불안은 다시 고개를 들고 우리는 마치 후퇴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회복의 일부이며 불안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대응하는 연습이 반복될수록 마음의 회복력은 강화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불안을 다루는 구체적인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실전형 안내서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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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철학 - 고대 철학가 12인에게 배우는 인생 기술
권석천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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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막막한 순간 꺼내보는, 최선의 삶을 위한 최소한의 철학'이라는 소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사람에 대한 예의>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권석천 작가의 신작으로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철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드러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철학이라는 오랜 사유의 도구에 주목한다. 삶의 막막함 앞에서 저자가 반복하여 찾은 것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과 철학자들의 이야기였고, 그는 이를 통해 인간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진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 세네카, 키케로 등 12인의 철학자의 사유를 중심으로 고대 철학이 지닌 실질적 가치에 집중하고 있다. '질문', '존중', '기세'와 같은 태도의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철학이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일상의 판단과 선택에 작용하는 사고의 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책의 표지를 꺼내 펼치면 나타나는 철학작의 사고방식을 시각화한 '철학가 마을 지도'는 독자가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며 철학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그렇게 이 책은 철학을 일상의 기준으로 삼고자하는 독자에게 삶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임을 깨닫게 된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와닿았던 부분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통해 풀어낸 ‘신념을 지닌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나는 그 신념이 세상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기준을 정립하고 타인의 의견까지도 경청할 수 있는 자세라는 데 깊이 공감되었다. 사실 나 역시 어떤 사안에 대해 나름의 생각은 있지만 누군가 앞에 나서서 말할 용기가 부족해 조용히 넘어간 적이 많다. ‘내가 굳이...’라는 자기 방어와 혹시 모를 오해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한 발 물러서게 만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조심조심 살아가는 사이에 어느 순간부터 굳걷하다고 생각했던 나만의 기준도, 중심도 흐려졌던 것 같다.

저자는 지금 우리 사회는 자기 신념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드물다고 말한다. 남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더 편하고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편안함은 결국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중요한 순간 침묵하는 것이 꼭 중립이나 현명함이 아님을 다시 깨달았다. 안티고네는 시대의 흐름과 권력과도 충돌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지켜냈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후회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과 확신에 따른 선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신념을 지닌 삶이란, 세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멈추지 않는 태도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아본다. 나와 다른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근거를 다듬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며 더 나은 판단을 향해 나아가는 삶 말이다. 그렇게 신념의 뿌리를 깊이 내릴 때 우리는 진짜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나는 “내가 진심으로 옳다고 믿는 가치는 무엇인가?”,“지금 나는,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의 질문을 해본다. 그리고 그 답들을 조금씩 찾아가며 살아가고 싶다.

책은 고대 철학자들의 생각을 오늘의 삶에 연결시켜 우리가 마주한 현실적 문제들을 스스로 돌아보게 만든다. 저자는 그들의 말과 생각을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서 우리가 스스로의 기준을 어떻게 세울 수 있는가에 집중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철학을 거창한 학문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단단히 다지는 힘, 타인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태도, 사회를 바라보는 균형 있는 시선까지 책은 생각의 깊이를 넓히되 현실과 단절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신념을 지키는 삶이란 세상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기만의 기준을 갖되, 타인의 입장에도 귀 기울이고, 자신의 시선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태도. 그 과정이 있어야만 우리는 남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 시작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오늘 하루 내가 어떤 기준으로 행동하는 지를 돌아보는 데서 출발함을 깨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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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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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작가의 신작이라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출판의 현장에서 보이지 않게 존재해온 편집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1990년대 초 교열자로 일을 시작해 평생을 문학 편집자로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책을 만들며 겪는 관계와 사건,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천천히 구축되어 가는 삶의 모습을 담아낸다.


주인공은 내성적이고 순응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원고와 책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과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차분하게 쌓아간다. 작품은 단순히 직업적인 기록을 넘어 노동이라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일의 의미와 결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책을 만든다는 일이 지닌 사회적이고 인간적 함의를 탐색하며 일과 사람, 그리고 관계를 둘러싼 균형을 담담한 문체로 드러낸다. 편집이라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세계를 조명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형성하는지를 차분하게 보려주고 있다. 책 덕후인 내가 이 이야기들에 완전히 빠져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는 주인공 석주가 스무살이 되고 하게 된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도시 종합대 사학과에 입학한 그녀는 역사를 죽음과 닮은 학문으로 여기지만 답사와 박물관 수업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될 수 있음을 인식한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이 일상에 즉각적인 활기를 불어넣지는 못한다. 석주에게 있어 변화의 계기는 문학을 통해 찾아온다. 문학 창작 동아리와 청강으로 참여한 소설 창작 수업에서 그녀는 글을 쓰고 비평받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곳에서 석주는 문학을 단순히 좋은 감상을 주고받는 일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고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배움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혹평과 자기 검열 속에서 위축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문학을 향한 애정이 취미를 넘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졸업식 날, 석주는 부모가 당연하게 여긴 교사의 길을 거부하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 그러나 열정만으로 미래가 열리지는 않았다. 한동안 방황을 겪은 끝에 그녀는 스물넷의 나이에 출판사 교한서가에 교열자로 입사한다.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문학에 대한 관심과 출판 현장의 노동이 어떻게 교차하며 한 개인의 삶을 형성해 가는지를 아주 차분하게 보여준다.


석주는 신출내기 교열자로서 원고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고자 했다. 깐깐하고 철저한 오기서 과장 밑에서 교정과 교열을 배우며 기본기를 다졌고 인문교양부 편집자로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편집’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인다. 그곳은 정해진 규칙이나 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며 예측할 수 없으면서도 반드시 맞닥뜨려야 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석주는 그 불확실함 속에서 책을 만드는 일에 점차 몰입하며 자신의 열정을 발견한다. 그녀에게 열정은 단순한 감정의 폭발은 아니었고 오히려 자신을 차분히 길들이며 꾸준히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기에 남는 것은 그것을 지탱하는 의지가 되었고 석주는 그 의지를 통해 책을 만드는 일을 단순한 직무가 아닌 삶의 중요한 자리에 놓으며 열정보다 더 근본적인 지속의 힘을 배워나갔다. 이렇게 하나씩 쌓아가는 석주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깊이 있게 빠져들었는데 그 이유는 나 역시 비슷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불안과 서투름으로 가득했지만 시간이 쌓이며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던 경험이 석주의 여정과 겹쳐졌고 그렇기에 석주의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다. 게다가 석주의 그 과정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로 책을 편집하는 여정이었기에 석주가 겪는 성장과 깨달음은 더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석주는 편집자 소모임에서 잡지 편집자 조원호를 만나며 일과 사랑이라는 두 축이 동시에 그녀의 삶 속에 들어오게 된다. 계획할 수 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고 예상할 수 있지만 언제나 예상을 빗겨가는 편집의 세계처럼 두 사람의 관계 역시 우연과 불완전함 속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불확실성은 결핍이 아니라 매력으로 다가왔고 석주는 원호와의 관계에서 여행 같은 뜨거움보다는 매일의 산책 같은 지속성을 발견하며 원호에게 점차적으로 빠져들게 된다.


석주에게 일과 사랑은 서로 닮아 있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고 압도하기보다 스며들며 예측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 깊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원호와의 관계는 매일의 산책처럼 이어졌고 편집자로서의 일 역시 담당 작가와 함께하며 점점 더 무게를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좋아한다는 마음이 언제나 기쁨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네 삶 또한 그렇듯 석주의 일과 관계 모두에 그림자를 드리워지게 된다. 석주는 그제서야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상처의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석주가 책을, 그리고 편집이라는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를 깨닫게 되면서 정말 잔잔하게 흘러가듯 보이는 그녀의 이야기는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과 삶을 응원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버린다.


이 책은 편집이라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배경으로 하여 한 여성이 어떻게 자신만의 삶의 무게와 의미를 찾아가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는 겉으로는 잔잔히 흘러가지만 후반부에 이르면 깊은 울림을 전한다. 작품 속 석주가 끝내 붙잡은 것은 화려한 성취나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남과 비교할 수 없는 대신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자리이자 매일 꾸준히 이어가는 일의 과정이었다. 동시에 생활처럼 곁에 머무는 사랑, 그리고 흔들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까지,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오직 그녀의 것'으로 자리한다.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노동이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과 삶의 가치가 구현되는 것임을 깨닫게 만든다. 그리고 그 노동이 내가 좋아하는 책과 문학이 존재하기 위한 일이었기에 더욱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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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호 2 - 수상한 손님 초고리 창비아동문고 348
채은하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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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2호가 초등학교 시절 너무 재밌게 읽어던 책 <루호>의 2권이라 읽게 된 책이다. <루호>는 사람으로 변신한 호랑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 설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한국형 판타지 동화다. 이 책은 1권의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로 변신 호랑이 루호가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고민하는 한편 타인과 시선과 맞부딪히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권에서 '나는 호랑이답게 살아갈거야'라고 외치며 인간 세계 속에서 자기 삶을 선택한 루호는 이번 책에서는 '호랑이는 결국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일까?'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초고리'라는 아이가 등장한다. 초고리는 호랑이에게 죽음을 당한 뒤 창귀가 된 아이로 동화속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설정이라 인상적이다. 루호는 초고리의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며 호랑이와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 과정은 바로 설화 <김현감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대목으로 서로 다른 존재간의 관계의 가능성을 되물으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먼저 책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앞서 펼쳐진 이야기들을 소개함으로써 이야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산속 추격 장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루호의 복잡한 마음이 숨어 있다. 친구 지아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끊임없이 신경 쓰는 루호의 생각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지아는 루호의 정체가 호랑이라는 걸 알면서도 친구가 되어줬지만 문득문득 놀라는 모습이나 슬퍼 보이는 표정들이 루호는 신경쓰였다. 친해졌기에 오히려 더 어려워진 관계와 마음을 건네는 일이 조심스러워진 상황에서 루호는 갈팡질팡한다. 지아의 눈에 자신이 여전히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일까, 아니면 무섭고 두려운 모습으로 변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루호를 흔든다.


"지아는 분명 널 좋아해. 그냥 잘 지내면 된다고." 친구 달수의 말에 루호는 일부러 힘을 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등 뒤에 커다란 물음표가 달린 듯 불안하던 마음도 잠시 누그러진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면 괜찮을 거야라는 스스로의 다짐과 낯선 감정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루호의 모습은 이 이야기가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 관계 속에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야영장으로 돌아온 루호와 친구들은 잠시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만 숲속에서 들려온 낯선 울음소리는 새로운 긴장을 예고한다. 이야기 속 전설 같은 존재인 창귀가 등장하며 아이들 사이엔 무서운 이야기와 함께 불안한 기류가 흐른다. 지아가 무심코 꺼낸 “호랑이는 너무 강해서 창귀까지 부리는 건 너무하다”는 말은 루호에게 큰 상처가 되고 둘 사이엔 미묘한 거리가 생긴 듯 하다. 지아의 진심을 오해한 루호는 ‘호랑이와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진 채 숲을 헤매다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알아본 한 할아버지를 만난다. 할아버지는 루호에게 “네 자리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며 루호가 지닌 감정의 섬세함이 호랑이의 강함과는 다른 의미의 힘임을 일깨워 준다. 과연 이 할아버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할아버지의 정체와 그의 조언이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증을 자아내며 점점 더 깊이 루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책은 루호와 지아가 서로의 마음속 질문과 불안을 마주하며 진정한 우정을 다시 쌓아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호랑이라는 자신의 본모습이 지아에게 위협으로 보일까 두려워하는 루호, 그리고 그런 루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지아. 이들의 갈등은 ‘다름’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통해 성장으로 나아간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앞서 말한 초고리가 있다. 한때 호랑이와 가족을 이루었지만 사람들의 오해와 두려움 속에 버려져 창귀가 되어 나타난 초고리는 루호와 지아의 관계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그의 상처와 외로움은 두 주인공에게도 오해와 거리감, 외로움을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우고, ‘서로 다르다는 것’이 이해와 화해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초고리의 사연은 산신 금강과의 갈등, 그리고 친구들 사이의 흔들림 속에서 자신의 선택을 지키는 용기와 진심으로 연결되고 싶은 마음의 소중함을 다시 묻게 만든다.


그리고 루호는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용기임을 깨닫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기에 이 책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 책은 독자에게 상처와 오해 속에서도 자신을 긍정하고 진심을 나누면 진짜 우정을 이룰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루호와 초고리, 지아와 친구들은 모두 ‘나다움’과 타인의 시선 사이에서 흔들리며 산신 금강의 방해와 갈등 속에서 자기 긍정과 성장의 의미를 배운다. 동시에 오해를 마주하고 진심을 나누며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진짜 관계를 만든다는 믿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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