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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원소로 읽는 결정적 세계사 - 세상 가장 작은 단위로 단숨에 읽는 6000년의 시간
쑨야페이 지음, 이신혜 옮김, 김봉중 감수 / 더퀘스트 / 2024년 8월
평점 :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여느 역사책과는 조금 다른 시선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인류의 역사의 결정적인 변화를 맞이한 순간 중심이 된 금, 구리, 규소, 탄소, 타이타늄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원소의 관점에서 역사적 순간과 사물을 새롭게 풀이하고 해석하고 있으며 역사과 과학 교양을 한번에 취할 수 있는 아주 독특하면서도 유용한 책이라 하겠다.
이 책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의 집합인 원소에 새겨진 인류 역사의 결정적인 24가지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여기는 '원소'라는 단어가 주는 화학의 개념에 대한 딱딱하거나 어렵고 지루함은 이 책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원소로 풀어낸 24가지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원소를 어떻게 댜루느냐에 따라 인류의 역사의 흐름이 좌우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중 가장 인상깊은 이야기는 바로 '규소'에 관한 이야기다. 규소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의 인산 바위그림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인류의 예술은 바위그림에서 출발했다는 말이 일리가 있을 만큼 전 세계 각지에 있는 수십만여 점이나 되는 바위그림이 존재하고 있다. 최초의 바위그림이 지금으로부터 4만여년 전인 석기시대에 시작했을 정도로 이 바위그림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데, 인류의 발길이 닿았던 곳이라면 어디에서라도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바위그림이 오랜 역사를 자랑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바위는 규소라는 원소와 밀접하기 때문이다. 규소는 지구 지각 내 원소 존재비가 27퍼센트에 달해 산소 다음으로 흔한 원소다. 규소와 산소의 총중량은 지각 전체의 4분의 3을 차지할 정도이며 생명체를 제외한 바위, 모래사장, 인공건축물, 도로 등 우리 눈이 닿는 육지 지표면의 모든 것은 전부 이산화규소의 파생품인 규산염으로 이루워져 있다.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는 문명세계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규소의 특성 때문인 것이다. 규소로 이루어진 바위는 경도, 강도와 녹는점이 매우 높고 알칼리성 물에 닿지 않는 이상 침식되거나 녹지도 않는다. 이 덕분에 인류는 석기 시대를 거쳐 벽돌로 만리장성을 쌓기도 하고 천 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아름답고 견고한 자기를 남겼으며 생물학과 시계 산업에도 발전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규소와 산소라는 원소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구에 인류가 태어났기에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다는 것, 이 얼마나 흥미로운 사실인가.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이야기는 바로 사카린의 발견으로 시작되는 단맛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단맛을 좋아하는 것은 인류의 본능이다. 자연계에도 단맛을 내는 먹거리는 많지만 과일과 극히 일부 채소로 제한되어 있다. 대체로 잘 익은 과일에 많이 들어 있는 당분은 활동에 꼭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하므로 오래전 음식을 충분하게 먹지 못하던 시절에 생명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조상을 비롯한 많은 영장류 동물의 유전자에는 단맛을 선호하는 인자가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식물이 광합성으로 합성한 포도당은 섬유소와 녹말로 변하는데 섬유소는 인간의 위에게 식품의 부피를 늘리는 물질에 불과하다. 그래서 인간은 부족한 에네지를 채우는 데 있어 녹말을 더 선호한다. 녹말은 물에 쉽게 풀리는 특성 때문에 섬유소처럼 물질의 뼈대를 담당할 수는 없지만 다른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동물과 달리 이동하며 먹이를 찾을 수 없는 식물은 스스로 에너지를 저장하여 보릿고개를 넘는데, 광합성 작용이 왕성하게 일어나는 시기에 식물이 미리 저장해 놓은 비상식량이 바로 녹말인 거시다. 하지만 이 비상식량을 인간이 다 먹어버린다면 식물의 개체수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약 1만 년 전에 원시 농경 문명이 형성될 때부터 인간은 녹말을 많이 함유한 쌀, 밀, 옥수수 등의 식물을 경작하여 인류 최초의 식량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낸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과일이 주는 단맛에 헤어나지 못했는데, 이는 단맛을 느낄 때 즐거움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열량을 충분히 얻게 된 후에도 단맛에 끌린 것을 보면 단맛을 좋아하는 것은 진화로 새겨진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능적으로 단맛을 찾다 보니 싸면서 더욱 더 단 맛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사카린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탄소 생명체 인간의 고탄소 생활사를 요약하면 재앙의 씨앗이라 하겠다. 1952년 12월 5일, 엄청난 규모의 검은 안개가 런던에 내려 앉았다. 나흘 동안 런던을 짓누른 안개는 거대한 몸집의 소마져도 쓰려뜨리는 독성 가스였다. 이 짙은 안개는 최소 6 천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한 달간 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호흡기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검은 안개는 석탄을 태우면서 시작된 산업공해가 만든 탄소 안개, 스모그였다. 지구상의 각종 원소는 유한하며 공기의 용량도 유한한다. 그렇기에 인간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지구를 개발하고 인간 마음대로 폐기물을 공기 중에 배출해서는 안된다. 이제 우리 인간은 더이상은 지체할 수 없다. 모든 인간들이 노력하고 또 노력하여 저탄소 생활을 해야만 한다.
이 책에 담긴 원소로 풀어낸 24가지 이야기를 따라 읽다보면 화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의 역사를 다시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담긴 원소의 노래로 표현된 주기율표에 대한 이야기는 주기율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악보를 완성하는 과정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어 더욱 흥미를 더하고 있있을 뿐만 아니라 주기율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