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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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사이에 나는 벌레로 변했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등에 대고 누워있었다. 머리를 약간 쳐들어보니 불룩하게 솟은 갈색의 배가 보였고, 그 배는 다시 활 모양으로 흰 각질의 칸들로 나뉘어 있었다. 이불은 그방이라도 주르륵 미끄러질 듯 둥그런 언덕 같은 배 위에서 가까스로 덮여 있었다. 몸뚱이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은 애처롭게 버둥거리며 그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는 생각했다. 꿈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 아직 가치있는 사람입니다.

“몇 시간 쉬었더니 다시 힘이 나는군요. 지배인님, 제발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지 마세요. 제가 곧 회사로 나가겠습니다. 그러니 아량을 베푸시어 사장님께 그렇게 말씀드리고 저에 대해서도 말씀 좀 잘해주세요!”


가족들은 벌레로 변한 내가 다시 돌아오기를 희망하며, 최대한 나의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가구를 모두 치워버리면, 그애의 병세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모두 포기하고 매정하게 그앨 혼자 내버려두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니? 방은 예전 그대로 놓아두는게 좋겠어. 그러면 그레고르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을 때 그앤 모든 게 전과 달라진 게 없음을 확인하게 될 테고, 그럼 그 동안 일을 그만큼 더 쉽게 잊을 수 있을꺼야.



벌레로 변한 나는 더이상 어머니의 아들도, 동생의 오빠도 아니었다. 나는 이제 필요없는 존재가 되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순 없어요. 두 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깨달았어요. 저는 저런 괴물 앞에서 오빠의 이름을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오직 한 가지, 우리가 저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 동안 저것을 돌보고 참아내기 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잇는 일은 다 해봤어요. 우리를 조금이라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거예요.”



그리고 내가 없어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목적지에 이르자 딸이 제일 먼저 일어나 젊은 몸을 쭉펴며 기지개를 켰을 때, 그들에게는 그 모습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의 보증처럼 여겨졌다,




변신의 의미 _옮긴이의 말 中

출장 영업사원은 황폐화, 기계화, 비인간화의 대표적인 직업으로 여겨진다

그레고르는 더이상 인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일벌레,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레고르의 변신은 이와 같이 자본주의 아래 소심민적 가장의 물화된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변신은 현대인의 실존적 위기를 주제로 하는 일종의 현대적 우화로도 읽혀진다. 예컨대 이 소설은 실직이나 사고 등으로 경제적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삶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 현대인의 상황을 벌레의 형상을 빌려 우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벌레의 형상은 인간의 경제적 능력이라는 알맹이를 빼버리고 남게 된 껍데기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짜이 밀레가

책을 읽은뒤 아래와 같은 의문점에 스스로 답을 찾으며 소화의 시간을 가진다.

  • 그는 어쩌다가 벌레로 변하게 되었을까?

  • 왜 하필 벌레로 변하게 되었는가?

  • 이제 그는, 또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자본주의 시대의 ‘돈’은 인간의 발명품인 동시에 인간을 발명품의 노예로 만드는 현대 사회를 가장 잘 대변하는 화폐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돈을 버는 출장 영업사원이었다. 어느날 그는 자본주의적 사회에서 가장으로써의 임무인  ‘돈 버는일’을 못하게 되는 벌레로 변한다. 물화된 삶의 환경에서 혐오스러운 벌레로 변한 그는 그를 소중하게 여겼던 가족들에게 조차 배척당하고, 삶을 마감한다.



두가지 생각을 해본다.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벌레가 되지 않기 위해 미래를 준비해야하는가? 또는 벌레가 되더라도 나의 삶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위해 노력해야하는가? 개인적인 생각으론 후자의 삶을 추구한다. 비록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 되더라도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고, 자아 그 자체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방법을 노력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사회를 바라보는 것, 문학을 통해 깨달음을 받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관적인 시각이 자신의 삶에 따듯한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실존주의 문학을 많이 접해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의미에서 세계 문학 전집에 언제나 화두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참조 : 실존주의 문학

20세기 중엽 이후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허무와 절망ㆍ불안ㆍ초조 속에서 고립된 인간이 극한상황을 극복하여 진정한 인간상을 확립하고, 잃었던 자아를 발견하고자 하는 문예사조를 말한다. 합리주의적 관념론실증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났으며, 철학적 사고의 근본 입장을 형성하였다. 19세기의 키에르케고르와 니체, 20세기 독일의 하이데이거와 야스퍼스, 프랑스의 마르셀과 사르트르 등이 대표적인 철학자며, 문학작품으로는 사르트르의 <구토>, 카뮈의 <이방인>, <페스트>, 카프카의 <변신> 등이 대표적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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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하버드대 종신교수 석지영의 예술.인생.법
석지영 지음, 송연수 옮김 / 북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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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노력하는 아름다움

한국인 최초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40대의 젊은 교수 석지영의 삶은 아름답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미국 유학행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도전하고, 포기해야하는 부분은 과감히 포기하고,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다채로우며 아름다운 삶은 이 책에 담겨있다. 유학행의 어린시절부터 법대 종신교수의 삶 전체를 조망하는 그녀의 글은 ‘나는’ 으로 시작되는 짧은 문장에서 건조함이 느껴지지만, 열정적인 삶의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무미건조한 일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 또한 시간과 열정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을 조금 더 진지하게 찾아보려 한다.


시간과 열정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나는 어렸을 때 발레를 포기하면서 그걸 느꼈다.


단순하게 살고자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기를 열망한다. 성취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려고 한다. 잠을 충분히 자고자 한다. 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업어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지는 그런 활동에 참여하기를 열망한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를 열망한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기를 열망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

나는 석지영이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서점에서 자주 눈에 띄여 우연찮게 책을 접했다. 사실 나는 학자들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랜시간 공부에 전념한채 젊은 시절을 보내고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한채 보내는 시간과 평생동안 학문이라는 것과 함께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진정 자신의 위치에서 행복해하고 있었고, 지적인 즐거움과 진정한 교육에 의미를 추구하며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싫어하는 대상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법대 강의실 현장은 매일 아침 내가 행복하게 눈을 뜰 수 있게 해준다.




자유, 노력

우리에게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탐색하며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비록 선택의 대상에 대해 능숙하지 못할지라도, 노력을 통해 자신이 잘하는, 더 나아가 좋아하는 일로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에 달려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비롯한 많은 직장인, 대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일을, 공부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유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한체.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맞춰가며 선택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내면의 소리에 관심을 기울이며, 좋아하는 것을 찾고 또 노력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지금 이 리뷰도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리고 내가 익숙하지 못한 것에 대한 노력이다. 언젠가는 지금 이 노력이 나의 삶의 자양분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젊은이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발견하고 추구할 기회를 누리기를 바란다. 여러 가지 발상과 활동, 열정, 그리고 자신들을 온전히 인간적으로 만드는 생각들을 추구하기 바란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춘 이미 정해진 길이 아니라, 자신들의 열정을 따라야 한다. 모두가 똑같은 일을 하면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이용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성장해야 한다. 멋진 삶으로 향하는 너무 많은 길들에서 자유의 가능성을 열어보지 않는다면 교육이나 가르침, 양육이 대체 무엇이겠는가.


무엇이든지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건, 글쓰기건, 힘들더라도 노력해서 그런 것을 익힐 기회를 찾으라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이 또한 연습이 필요하다. 쉬워질 때까지, 아니 즐길 수 있을 때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여 하고 또 하기를 반복해야 한다.








찾고 싶은 일을 찾을 것. 일을 놀이처럼 즐길 것.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위험을 감수할 것. 적절한 시점에 하던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면서 스스로에게 상을 줄 것. 깊은 우정을 맺고 그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힘쓸 것. 크고 작건 무언가를 만들고 창조하는데 온 힘을 다할 것. 젊은이에게 조언자가 되어 주고 스스로의 조언자도 구할 것.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으로써 배울 것. 즐길 것.


아마도, 우리의 유년 시절에서 가장 충실하게 산 날은 우리가 쓸데없이 소일했다고 믿는 그런 날일 것이다.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보낸 그런 날. _ㅇㅇㅇㅇㅇ


하루가 시작되면, 책상에 앉아 여러가지 글과 생각들을 훓으며 세심하게 일을 하게 될 시간들이 너무나 기다려졌다. 정말 너무도 재미가 있었던 것이다. 내게 글쓰기는 결코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일이 되지는 못할 테지만, 가장 즐거운 활동 중의 하나라 말할 수 있다.



어떤 길을 가든지, 갈등과 실패는 세상의 끝이 아니다.


이 책은 나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가 한국인들과 공명하기를 바라는 것이 이 책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 기회를 만들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자녀들이 무엇을 하게 강제할 수는 없다.


재미만 있다면 아무리 힘든 일도 할 만하다. 재미 없이는 난 살 수 없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물어보라. 너무나 재미있어 내 능력껏 시도해 보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가능하면 그것을 할 수 있도록 추진하라.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하라.


이제 나는 나의 스승들 및 조언자들과 진정한 의미에서 동료가 되었다. 수많은 스승들이 나를 꿰뚫어보았고, 나를 성장시켰고, 내가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해던 일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자신감 없는 학생이 자라서 당신들의 동료가 되도록 도아주었다. 나는 친절과 온기에 감싸여 있었다. 내가 성인으로 잘 성장하도록, 그리고 나의 지성이 발전하고 내 목소리를 낼 수있도록 스승들이 보여준 관심이 있었다. 미래를 위임받은 느낌이 있었다. 이런 감정은 바로 내가 선생으로서 나의 학생들에게 느끼게 해 주고 싶은 심오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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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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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통 받았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뫼르소의 어머니의 죽음으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 그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그의 어머니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 시신을 보지도 않고 눈물도 흘리지 않았으며, 고인의 죽음에 큰 관심을 두지 않으며, 피곤하다고 쉬고싶어 한다. 심지어는 어머니의 죽음 다음날 자신의 여자를 만나 아무렇지도 않게 희극 영화를 보고, 사랑을 나눈다. 그의 행동과 언행은 솔직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이해기란 어렵다.


도대체 피고는 어머니를 매장한 것으로 해서 기소가 된 것입니까, 살인을 해서 기소가 된 것입니까?


그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권총으로 다툼이 있었던 아랍인을 죽이게 되는데, 그것에 대한 뉘우침과 사과는 커녕 햇빛으로 인한 우연의 일치였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과 달리 지나치게 솔직한 그의 태도는 오히려 뻔뻔스럽기까지하다.  그의 재판은 살인 결과보다는 그의 어머니 장례식에서 슬픔을 표현하지 않은 그의 태도에 초점이 맞춰진다. 자신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은 그 사건에서 완벽히 배제된체 모든 것이 흘러간다. 마치 소수를 심판하는 다수의 공개처형인것처럼 그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나는 내 인물을 통해서, 우리들의 분수에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를 그려보려고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거짓말 속에 살아간다. 없는 일을 지어내는 경우도 있고, 있는 사실을 과장하기도 한다. 이런 행동은 지극히 사회적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적 관습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져있기에 거짓말 없이 생활하기란 거의 불가능 한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뫼르소는 일반적인 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절대적으로 솔직하다. 어머니의 죽음도, 살인사건도 오로지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 사회, 종교 등 모든 관습과 가치관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자신의 감정만을 이야기한다. 이런 그의 행동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소수의 이방인으로 비춰진다. ‘다수 속에 속한 소수’라는 의미의 이방인 단어처럼 그는 사회로부터 배척당한다. 비록 살인이라는 사건이 있었지만, 그들이 사형을 시킨 사람은 살인자가 아니라 그들과 다른 이방인이 아니었을까.



짜이 밀레가

다수 속에 속한 소수는 힘이 없는 이방인이다. 그들은 사회에서 배척당하며, 이방인중 대부분은 자신의 생각과는 다름에도 다수에 속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이방인 뫼르소는 어쩌면 누구보다도 용기있는, 자신의 생각에 진정성이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에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그의 감정에는 측은함을 느끼지만, 그것을 거짓없이 말하는 그의 행동과 용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어쩌면 나도 뫼르소처럼 이방인이 되더라도 진실없는 대답을 하고 싶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거짓을 말하고 있는 현실의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압박에도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용기있는 인간. 이방인을 위한 이방인이 될 필요는 없지만, 다수의 행동과 생각으로 인해 내 자신을 맞춰가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 생각, 행동에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방인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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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별 여행자
무사 앗사리드 지음, 신선영 옮김 / 문학의숲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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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소년, 진정한 삶의 가치

사막의 투아레그족 소년은 프랑스 여기자가 떨어뜨린 어린 왕자 책을 읽고, 저자를 만나겠다는 목표로 프랑스로 떠난다. 사막에서 온 소년이 현대문명을 접하는 이야기는 마치 소설과 같은 재미,웃음이 있으며, 그의 이야기는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한다.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투아레그 부족 소년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나의 삶에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라고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지고, 책을 모두 읽었을때는 자신만의 답을 찾으며 미소짓는다.



짜이 밀레가

나는 어린왕자 저자를 찾아 사막에서 온 소년이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의 급변하는 기술발전과 끊임없는 경쟁주의는 여유보다는 치열한 삶을 만들고 있고, 나는 그 한가운데 서있다. 자본주의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좀 더 노력하고 경쟁 하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필사적으로, 또는 도피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삶의 소중한 가치를 인지하며 살아야 한다.

지식보다는 지혜와 경험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며, 자신의 행복을 위한 가치관을 가져야만 한다.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끊임없이 찾으며 하루 하루에,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지향해야한다. 독서의 가치는 일상 생활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진정 소중한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심도있게 생각해보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내게 진정 그러했다. 수 많은 밑줄과 책을 잠시 덮고 생각한 시간은 나의 삶을 좀 더 충만하게 만들지 않을까 기대한다.  



정말 밑줄친 구절이 너무 많아서, 그것에 대한 categorizing 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말 이렇게 좋은책을 왜 이제서야 발견했을까! 저자 무사 앗사리드의 삶의 지혜에 감탄함과 동시에 이 책을 발견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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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THIS BOOK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내가 느낀 것,  그중 가장 단순하면서도 또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정신에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나는 거울과 같다. 내가 책에서 이야기한 것을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모습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본다.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이제껏 배운 삶에는 많은 놀라움과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다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 눈을 아름답게 씻어 둘 필요가 있다. 삶이 우리에게 선물한 아름다움을 향해 열려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영혼이 빛나게 하라. 영혼은 그러한 아름다움과 맞닿는 순간 벌써 위대해지고 있다.



성장

“다른 곳에서 더 성숙해지거라. 하지만 우리를 잊지는 마라. 넌 우리의 축복이다. 우리는 언제나 널 생각할 거야. 이제, 떠나거라”


여행은 자기 자신에게로 떠나는 것이며, 또한 그 여행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행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삶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 순간에는 소유할 것도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여행이란 많은 타인들을 통과하면서 자신에게서 자신으로 떠나는거야”



지혜

지혜는 다른데 있지 않다. 자기 자신을 알고, 타인의 요구를 이해할 때 지혜가 생긴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또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또 타인의 요구를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사랑과 연관되어 있다.


나는 조금 좋지 않은 사건이 벌어질 때면 웃음 짓는 법을 배웠다. 내일 굶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내가 가진 가장 큰 풍요로움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한 노인이 숨을 거두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침묵은 언어 못지 않게 소중한 보물이다.


인생에서 실패했다고 여기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실 그는 실패한게 아니다. 실패했다고 느끼는 것 또한 하나의 배움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활이요. 그 활을 통해 당신의 아이들이 살아있는 화살처럼 날아간다. 활 쏘는 그분이 무한의 활터 위로 과녁을 겨누고 그 살이 빠르고 멀리 날아가도록 힘을 당해 당신을 당긴다.


삶에서 단 한가지 중요한 것이라면 우리가 성장하는 것이다. 익은 열매는 나이가 없다. 다양한 경험을 경험했을 뿐



현대사회

물질주의는 인간을 고귀한 영혼을 지닌 존재가 아닌 육체를 가진 하나의 물질로 취급한다. 각자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영혼의 가치를 잊고 많은 사람들이 인기 있는 배우나 스타를 닮길 원한다.


현대는 돈을 얼마나 가졌는가가 성공적인 삶의 척도가 되고 있다. 돈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인간의 삶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말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두리번거리지만 돈은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수단에 지나지 않는 돈으로 인해 인간의 삶은 조금 덜 행복해졌고 인간의 정신은 조금 덜 깊어졌다. 수단을 목적으로 잘못 인식한 결과다.


나는 오랫동안 궁금해했다. 어떻게 사람들은 예기치 않은 일에 아무런 여지도 남겨 두지 않고 일을 미리 빈틈없이 짜려고들 하는지. 삶을 앞서 계획하면서, 어떻게 삶을 창조하려 하는 것일까? 나는 내 수첩 속에 우연을 위한 빈자리를 남겨 둔다. 예기치 않은 것을 위해 숨 쉴 자리를, 우리가 눈을 떴을 때 우리를 도와 줄 아는 삶의 무한한 다양성에 나 자신을 내맡기고 싶다.


사막에는 다이어리(일정표, 일과표)가 없다. 오직 아침과 점심, 저녁만이 있을 뿐이다. 내일을 계획 하지도, 걱정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사는 것은 미래가 아닌 오직 현재다. 현대인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을 살지 못한단느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시간을 호주머니 안에 넣고 다니면서 재고로 남아 있는 시간을 파악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우거나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시간은 금’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를 살고 있는게 아닐뿐더러 더구나 미래는 현재에서 탄생한다.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살아야 내일도 있다. 그런데 조급하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향해 뛰어다닐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서양에서는 미래에 대한 근심이 현재를 망치고 있다. 열여덞 살 때부터 젊은이들이 노후를 걱정하니 말이다!  사실 삶이란 한 걸음씩 천천히 대면하지 않으면 실로 두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것에서 우리의 힘을 끌어내면서, 오직 현재에 전념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와 가치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우리는 늘 함께 생활하고 함께 삶을 나눈다.


사막에서는 선택의 가능성이란 선물과도 같다. 우리는 필요성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청난 선택의 기회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만족하지 못한다. 왜 자기가 가진 것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늘 자신을 비교하는 것일까?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쪽이 아니라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도시 사람들은 걷지 않고 뛴다는 것을 알고 나는 매우 놀랐다. 사람들은 성공을 좇아 달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성공을 말하는 것일까?

그 성공이 삶의 기쁨을 해치는 것이라면 어떤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겠는가? 인간은 소유할수록 더 많은 욕망을 품고 나날이 불만이 깊어진 나머지 불행해진다.


프랑스인들은 일 년 중 두달의 바캉스 기간이 있다. 세계 어디나 주말이 있고,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고 쉰다. 그러나 우리 투아레그인들의 나날에는 주말도 바캉스도 없다. 매일 우리는 필요한 만큼의 일을 한다. 그러나 그 매일이 우리에게는 주말이고 바캉스다. 일과 놀이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순간을 즐길 줄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것들을 개개인이 깨닫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참다운 삶으로 돌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 모두가 바로 그러한 참삶의 주인이고, 우리가 온 곳 또한 그곳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농부도 ‘체조 클럽’ 에는 결코 가지 않을 것이다. 날바다 기본적인 에너지를 소비하니 말이다. 몸이 수단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프랑스에서 알게 되었다.



존재

연령과 성별을 떠나 개개인 모두가 우리에게는 특별한 존재이며, 그들 각자가 역할을 지니고 있다. 그들 중 쓸모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삶에는 언제나 좋은 날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들을 겪는다. 그때마다 누군가 옆에 있고, 또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고 조언을 구할 수 있다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기라도 이겨 낼 수 있다.


나는 ‘나’ 라는 존재의 현현이지만, 모두 안의 ‘나’를 표현하기도 한다. 사막의 생활에서 대부분의 낮 시간은 서로를 위해 쓰인다. 그러나 밤이 되면 우리는 자기 자신과 다시 만난다. 사막에서 밤의 시간은 매우 소중하다. 낮의 노동과 소란스러움을 지나 고요한 풍격 속에 앉아 자기 자신과 평화로이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의 개별성을 잃지 않으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서두르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관조할 시간도 없이 소멸을 향해 내달리기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내심은 시간과 짝이 되어 여유있는 행동을 하게 해 줌으로써 자신에게 충실하도록 도와준다.


흑인들은 환해지려고 애쓰고, 백인들은 그을리려고 애쓰지. 넌 둘 다구나. 세상사람 모두가 찾으려는 걸 넌 갖고 있잖니. 너대로의 모습으로 살아라.


가장 위대한 힘 중 하나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과 조화를 이루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박하게,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자신을 넘어서는 것.


가장 위대한 힘은 마침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인간 존재는 자신을 왜곡하면서 존엄성을 잃고 자신의 인간성을 변질시킨다. 그런데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 중 하나는 인간에게 부끄러움, 존경심, 도덕이라는 가치에 대한 감각이 있다는 것이다.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이다. 이만큼 본질적인 질문은 없다. 내가 어디서 왔는가는 내가 누구인가를 이해하는 기본이 된다.



사랑

사랑은 근본적으로 타인을 향한 배려로부터 시작된다. 거꾸로 말하자면 스스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잊지 않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사랑은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거름과 같다. 더불어 몸과 마음의 건강은 자신은 물론 타인의 삶도 소중하게 여기는 행복한 삶의 초석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자신이 가진 빵 한 쪽 모두를 타인에게 베풀 줄 아는 마음은 매우 아름다운 것이며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교훈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 어머니에게 배운 모든 것들은 언제나 내 안에 살아 있다. 유년기, 카메라 앞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은 단 한장도 없지만, 내게는 그 시절의 이미지들이 너무도 선명히 가슴속에 각인되어 남아 있다.


“우연, 그것은 익명으로 남고자 하는 신들의 의미이다”


웃음은 존재의 건강함을 나타내는 좋은 표현 방식이다. 투아레그족에 있어 나눔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지며,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웃음 역시 그렇다. 웃음을 통해 우리는 서로가 느끼는 좋은 감정들을 함께 나눌 수 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우리는 서로에게 ‘인샬라’ (신이 허락한다면 내일 또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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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웃음

그런데 나는 언제 처음 웃었을까?

나를 처음으로 웃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웃음’ 은 많은 단어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단어중 하나다. 과연 웃음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소설로 풀어냈을지 궁금증과 좋아하는 저자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상상력이 이번에 어떻게 독보일지 기대하며 책을 읽었다. <과연 누가, 왜 최고의 코미디언을 살해했을까? ‘절대로 읽지 마시오’ 라고 적혀진 파란 목각에는 어떤 글이 있을까?> 라는 <호기심과 웃음, 유머는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라는 질문으로 첫장을 넘겼다. 그리고 정말 너무도 재미있는 소설을 만났다.



누가, 왜, 어떻게 최고의 코미디언을 살해했을까?

이 시대 최고의 코미디언은 다리우스는 공연 대기실에서 이라는 쪽지를 받고, 큰 소리로 웃다가 죽는다. 대중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만, 모험심이 강한 여기자 르퀘레스는 그의 죽음을 취재하던 중 죽음 뒤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게 된다. 르퀘레스와 연인 사이였던 중년의 남자 이지도르와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그의 죽음 뒤에 감춰진 거대한 실체를 알게 된다. 웃음 대결을 통해 상대방을 죽이는 프로브, 유머를 숭배하는 유머기사단, 유머소담 등의 정체를 알게되고, 그들의 모험은 시종일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스케일과 짜임새 있는 구성은 감탄을 불러일으키며, 호기심에 호기심을 유발하는 사건 전개는 책을 읽는내내 집중하게 만든다. 과연 누가, 왜 최고의 코미디언을 살해했을까?



소설과 유머

소설. 사람들은 그것을 읽으며 자연스레 질문을 던지고 깊이 생각하게 된다.


소설의 중간마다 나오는 블랙코미디는 쓴 웃음을 짓게 만드는 유머다. 유머 기사단이 숭배하는 경건한 유머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만 같았다. 희극을 통해 비극을 세상에 알리는 것만 같았다. 경건한 유머의 존재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한 여자가 결혼식을 올린 지 3주 만에 혼인 성사를 집전한 신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부님, 저희가 끔찍한 부부싸움을 벌였어요.’

‘진정하세요. 자매님.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부부 싸움을 처음 해봐서 그러나 본데, 세상에 싸우지 않는 부부가 어디 있겠어요? 보나 마나 자매님이 생각하는 것만큼 심각한 일은 아닐 거예요.’

‘네 알겠어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게요. 그러면 신부님, 한가지만 더 조언해주세요.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하죠?’



짜이 밀레가

나는 웃음을 좋아한다. 휴대폰 배경화면도 ‘기뻐서 웃는게 아니라, 웃어서 기쁜 것이다’ 라는 문구다. 이 소설은 나의 웃음을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웃음은 좋다. 다만, 다른 사람에 대한 조소와 경박한 웃음은 오히려 그것이 가진 가치를 왜곡시킬 수 있다.


‘웃음’에 대해 여러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고 나니 일상 생활의 웃음과 유머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니 나의 웃음이 더욱 가치있게 느껴진다.

상대방과 자신을  기분좋게 만드는 사회적 의미의 유머가 아닌, 비난하거나 공격적인 유머는 순간의 웃음을 자아낼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상처를 주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이 소설을 계기로 유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유머기사단 처럼 유머를 숭배하지는 않겠지만, 긍정적인 유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것 같다.



노란 테니스공

책 후기에 나오는 <노란 테니스공> 이야기. 정말 그의 소설을 너무도 잘 표현했다. 정말 너무도 궁금해서 계속해서 읽고 싶어지는 소설. 그것이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이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호기심과 상상의 나래에서 헤어날 수가 없는 소설. 나도 나만의 노란테니스공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지금 이 순간도 훗날을 위한 준비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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