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룻밤 사이에 나는 벌레로 변했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등에 대고 누워있었다. 머리를 약간 쳐들어보니 불룩하게 솟은 갈색의 배가 보였고, 그 배는 다시 활 모양으로 흰 각질의 칸들로 나뉘어 있었다. 이불은 그방이라도 주르륵 미끄러질 듯 둥그런 언덕 같은 배 위에서 가까스로 덮여 있었다. 몸뚱이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은 애처롭게 버둥거리며 그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는 생각했다. 꿈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 아직 가치있는 사람입니다.

“몇 시간 쉬었더니 다시 힘이 나는군요. 지배인님, 제발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지 마세요. 제가 곧 회사로 나가겠습니다. 그러니 아량을 베푸시어 사장님께 그렇게 말씀드리고 저에 대해서도 말씀 좀 잘해주세요!”


가족들은 벌레로 변한 내가 다시 돌아오기를 희망하며, 최대한 나의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가구를 모두 치워버리면, 그애의 병세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모두 포기하고 매정하게 그앨 혼자 내버려두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니? 방은 예전 그대로 놓아두는게 좋겠어. 그러면 그레고르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을 때 그앤 모든 게 전과 달라진 게 없음을 확인하게 될 테고, 그럼 그 동안 일을 그만큼 더 쉽게 잊을 수 있을꺼야.



벌레로 변한 나는 더이상 어머니의 아들도, 동생의 오빠도 아니었다. 나는 이제 필요없는 존재가 되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순 없어요. 두 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깨달았어요. 저는 저런 괴물 앞에서 오빠의 이름을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오직 한 가지, 우리가 저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 동안 저것을 돌보고 참아내기 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잇는 일은 다 해봤어요. 우리를 조금이라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거예요.”



그리고 내가 없어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목적지에 이르자 딸이 제일 먼저 일어나 젊은 몸을 쭉펴며 기지개를 켰을 때, 그들에게는 그 모습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의 보증처럼 여겨졌다,




변신의 의미 _옮긴이의 말 中

출장 영업사원은 황폐화, 기계화, 비인간화의 대표적인 직업으로 여겨진다

그레고르는 더이상 인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일벌레,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레고르의 변신은 이와 같이 자본주의 아래 소심민적 가장의 물화된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변신은 현대인의 실존적 위기를 주제로 하는 일종의 현대적 우화로도 읽혀진다. 예컨대 이 소설은 실직이나 사고 등으로 경제적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삶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 현대인의 상황을 벌레의 형상을 빌려 우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벌레의 형상은 인간의 경제적 능력이라는 알맹이를 빼버리고 남게 된 껍데기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짜이 밀레가

책을 읽은뒤 아래와 같은 의문점에 스스로 답을 찾으며 소화의 시간을 가진다.

  • 그는 어쩌다가 벌레로 변하게 되었을까?

  • 왜 하필 벌레로 변하게 되었는가?

  • 이제 그는, 또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자본주의 시대의 ‘돈’은 인간의 발명품인 동시에 인간을 발명품의 노예로 만드는 현대 사회를 가장 잘 대변하는 화폐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돈을 버는 출장 영업사원이었다. 어느날 그는 자본주의적 사회에서 가장으로써의 임무인  ‘돈 버는일’을 못하게 되는 벌레로 변한다. 물화된 삶의 환경에서 혐오스러운 벌레로 변한 그는 그를 소중하게 여겼던 가족들에게 조차 배척당하고, 삶을 마감한다.



두가지 생각을 해본다.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벌레가 되지 않기 위해 미래를 준비해야하는가? 또는 벌레가 되더라도 나의 삶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위해 노력해야하는가? 개인적인 생각으론 후자의 삶을 추구한다. 비록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 되더라도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고, 자아 그 자체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방법을 노력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사회를 바라보는 것, 문학을 통해 깨달음을 받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관적인 시각이 자신의 삶에 따듯한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실존주의 문학을 많이 접해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의미에서 세계 문학 전집에 언제나 화두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참조 : 실존주의 문학

20세기 중엽 이후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허무와 절망ㆍ불안ㆍ초조 속에서 고립된 인간이 극한상황을 극복하여 진정한 인간상을 확립하고, 잃었던 자아를 발견하고자 하는 문예사조를 말한다. 합리주의적 관념론실증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났으며, 철학적 사고의 근본 입장을 형성하였다. 19세기의 키에르케고르와 니체, 20세기 독일의 하이데이거와 야스퍼스, 프랑스의 마르셀과 사르트르 등이 대표적인 철학자며, 문학작품으로는 사르트르의 <구토>, 카뮈의 <이방인>, <페스트>, 카프카의 <변신> 등이 대표적 작품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