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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 ㅣ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70
카트린 클레망 지음 / 시공사 / 1998년 1월
평점 :
품절
마하트마 간디, 마하트마(Mahatma)는 위대한 영혼이라는 힌디어로 간디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단어다. 인도의 독립을 위해, 더 나아가 종교를 넘어 하나되는 인도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던 그는 진정한 성인이었으며,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비폭력을 지향하며 하나되는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무기보다는 평화로 대립보다는 하나되는 인류를 추구했던 그의 삶을 얇은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알아본다.
간디의 삶
그는 평범한 바이샤(힌두교의 상인계급)에서 태어나 남들과 다를바 없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13살때 부모가 정해준 부인인 카스투르바이 열세살때 결혼하였으며, 이슬람 친구와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고기를 먹어보는 등 호기심으로 가득찬 소년이었다. 그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변호사가 되어 인도로 돌아오는데, 인도의 일등석 객차에서 본인이 인도인이라는 이유로 플랫폼에 내쳐진 사건을 계기로 인권 신장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게 된다. 그 이후 더반(남아프리카 공아국)으로 가 인권운동을 전개하고, 인도로 돌아온 후에는 인도 독립을 비폭력으로 투쟁한다. 그는 조혼 반대, 암소 보호, 힌두스탄어 국어사용 등을 주장하며 인도의 독립을 끊임없이 주장한다. 특히, 소금에 세금을 부과하는 영국정부에 반대하는 소금행진은 그의 비폭력 시민불복종 신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영국정부는 그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박해하지만, 간디와 인도인들의 염원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간디의 주장대로 인도는 독립하지만 그의 시련은 오히려 깊어만진다.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하는 인도에서 가장 큰 두축인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일 인도를 만들자는 간디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지도자 진나는 순수한 이슬람의 나라 '파키스탄'을 주장한다. 결국 그들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종교로 인해 인도는 분리된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종교를 배척하고, 심지어는 살인, 방화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단식을 하며 인도인의 평화를 호소한다. 하지만, 이미 종교간의 배척이 심해진 두 나라의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는 통일된 인도와 사랑과 평화를 호소했지만, 극단 힌두교인인 나투람 고드세에게 권총3발을 맞고 하나된 인도의 통일을 보지 못한채 눈을 감는다. 그의 목표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의 가르침과 진리 추구를 위한 가치관은 후세에 길이길이 기억된다.
인도의 독립을 꿈꾸다 _철저한 비폭력, 시민불복종 운동
그는 영국의 지배하의 인도의 독립을 끊임없이 호소하는데, 여기에는 한치의 폭력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카르마를 믿으며,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힌두교 교리 또한 비폭력 항쟁에 영향을 주었고, 비폭력을 호소하는 간디의 진심이 인도인들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감옥에 가거나 구타를 당하더라도 폭력으로 대응하는 철저한 비폭력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항쟁했다. 폭력으로 첫번째 줄이 쓰러진다면, 두번째 줄이 행진하고, 다시 일어서서 행진했다. 이렇게 인도 민중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는 비폭력으로, 심각한 경우 단식으로 영국정부의 인도 식민지화에 반대했고, 그의 행동은 인도인의 단결을 이끌어 결국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분열 없는 하나된 통일 인도를 꿈꾸다.
“죽음은 나에게 영광스런 해방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인도와 힌두교와 시크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붕괴를 목도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신의 손안에 놓여있다.”
인도는 중심인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교, 자이나교, 불교, 기독교 6개의 다양한 종교들이 주를 이르고 있으며, 수 없이 많은 신들을 숭배하며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중 가장 큰 두 축인 힌두교와 이슬람교들은 상대방의 종교를 존중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종교 유일성을 주장하며 언제나 갈등을 빚어왔다. 특히, 이슬람교 진나는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 독립을 주장하며, 주장하며 국가의 분할을 주도했다. 간디는 이에 반대하여, 국가를 영토로 분할하는 것은 진정한 화합에 문제가 될 것이며 상대방의 종교를 존중하는 관용의 태도를 호소한다. 그는 단식을 통해 온 국민에게 호소하지만, 그의 단식에도 불과하고 이미 커져버린 갈등의 골은 좁힐 수 없었다. 결국 이슬람교 지도자 진나는 순수한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을 세우고, 인도 역사상 최대 이주가 시작된다. 파키스탄으로 많은 이슬람이 이주했지만, 인도에 남은 많은 사람들간의 분쟁은 끊이질 않는다. 그는 인도가 분할된 후에도 콜카타에 남아 갈등과 폭력으로 얼룩진 인도를 치유하기 위해 비폭력, 평화를 주장한다. 단식을 하고, 인도를 두 발로 걸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의 종교에 대한 관용과 사랑을 호소한다. 하지만, 그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극단적 힌두교 신자의 총에 맞아 결국 평생의 염원인 통일된 인도를 보지 못한채 눈을 감는다.
짜이 밀레가_ 진실 추구와 무소유의 삶
진실은 목적이요 비폭력은 수단으로 생각한 인류의 위대한 영혼
그의 무소유의 청렴결백한 삶과 철저한 비폭력은 사랑을 잃어가는 지금 세상에 귀감이 될 것이다.
“히틀러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하라. 그러기 위해서 무기를 버리고 죽으라. 이로써 나는 육신을 잃을지 몰라도 나의 영혼, 즉 나의 명예는 구할 수 있다. “
간디가 죽을때 소유했던 물품 : <시계, 상아로 만든 작은 원숭이, 책 몇권(바가바드기타, 코란, 성서>
짜이 밀레가_2nd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잘못된 교육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책, 인터넷, 대화를 통해 얻은 지식들이 절대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것의 진위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함이 필요하다.
나의 인도 친구 비벡과 대화를 통해 '간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우리나라에는 성자로 알려진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의 통일을 염원한 비폭력주의의 성자였다. 진리를 추구하는 그의 강인한 정신력과 종교를 초월한 모든 사람의 평화적 단합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존경받고있다. 나 또한 간디에 대해 읽은 후 그의 철학과 행동에 상당히 감명받은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와 나의 생각을 공유했다.
하지만, 인도인의 입장에서는 분명 다른 관점이 있었다. 실제로 현재 인도인 50%의 사람들은 간디의 마지막 결정은 잘못된 것이며, 그로 인해 지금 인도의 비극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인도는 모두의 국가임으로, 종교에 상관없이 그 누구도 살 수 있다’ 라는 그의 말은 인도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이 파키스탄으로 이주하는 것을 멈추게 했고, 그로 인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양 종교가 끊이지 않는 비극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2년의 구자라트 riot을 포함해 심지어 지금까지도 힌두교 - 무슬림간의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살인, 약탈, 강간을 자행히며, 끔찍할만한 복수의 사이클은 지금까지도 잔혹하게 이어지고 있다.
만약 간디가 파키스탄의 독립을 인정하고, 국가를 양분했다면 인도내의 양분은 최소한 지금과 비교하여 감소했을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성자와 같은 관용의 믿음으로 통일을 염원했지만,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와 분노로 가득찬 사람들에게 최선의 방법은 강제로나마 삶의 터전을 분리시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즉, 다수의 안전을 위해 이상을 포기해야했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분리를 인정했다면, 이상적인 국가는 아닐지언정 수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상이로 인한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가치관, 의견, 지식들이 과연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그것은 언제나 옳은가? 한번 더 의심하고, 진실을 생각해봐야하진 않을까? 균형잡힌 시각이란, 가치관이란,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