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그림자는 두려움이 응축된 것이다.

아니, 불안이다.

아니, 짙은 어둠.

아니, 어쩌면 절대 헤어나오지 못할 절망.


삶과 연결된 무엇.

나로 이루어진 것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존재하는 것.


그림자는 그럴 것이다.

그런 그림자가 붕 떠서 사라진다고 한다. 그림자를 따라가게 되면 사라질 거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 두려움이 생기고 불안이 생기다가, 어느 순간 나를 놓아버리면 사라지는 것일까.


죽음이란 그런 것일까.

<백의 그림자>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라 꼬집어 말할 수 없다. 그림자가 뜨는 세상, 환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진실은 마냥 소설 같다. 소설 같기에 아름다운 작품이다. 현실과 환상을 사이에 두는 것이 삶이라면 그 삶이야말로 모두가 꿈꾸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전자상가로 이루어진 다섯 동의 건물. 철거가 시작되고, 떠나야 하는 사람이 생기고, 가난하지만 그래도 그곳을 지켜오며 살아온 상인들.


이 책을 읽고 난 후 느낀 감상은, 소설이란,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너무 적나라하게 현실을 드러내지 않고 너무 허무하게 삶을 그려내지도 않고 그저 덤덤히, 덤덤히, 쌓아가는 것이라고. 텅 빈 인형처럼 삶이 텅 비고 공허하다면, 그것이 진짜 삶의 실체라면 너무나 슬프지 않나 생각했다. 이미 현실은 지독하리만치 우울하고 슬프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현실도 있고 내일 더 나아지리란 보장도 없다. 그저 묵묵히 오늘을 살아내는 현재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 우울한 세상에서 소설마저 우울하다면, 무엇에 위로받아야 하나. 차라리 <백의 그림자> 같은 이야기가 낫다. 문학은 늘 삶의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고 하지만, 그 삶의 진실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조금은 숨기는 것처럼, 하지만 누군가 알아차릴 수 있게 써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백의 그림자>가 좋았다. 딱 적당히 소설 같고 딱 적당히 현실 같았기에.


희망도 절망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닮았기에.

그림자가 붕 떠올라 사라질지 모른단 두려움을 안겨준다고 해도, 그럼에도 사랑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딱 그 정도의 빛이 적당하다.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잿빛의 세상과 같은 빛깔.

그곳에서라면, 어둠도, 너무 환한 빛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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