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앨리스
나가노 마유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아리스는 '앨리스'를 일본식으로 부르는 이름이라고 한다. '앨리스'라고 하는 것과 '아리스'라 하는 것은 어감이 달라서 그런지 들을 때 기분이 묘했다. 이 책은, 그런 아리스의 이야기다.


어느 밤, 아리스는 알 세공품은 예쁘게 만들었다. 막 완성했을 때 친우인 미쓰바치가 학교에 가야 한다고 아리스를 불렀다. 형의 심부름이라고 하지만, 미쓰바치는 밤의 학교에 더 관심이 많다. 두 소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밤의 학교로 스며든다.


낮과 밤의 경계라는 설정이 이 소설을 몽환적이고 신비롭게 만들었다. 특히 '밤'이라는 시간의 한정이 있기 때문인지 어둠에 녹아든 풍경 묘사가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나조차 낯선 세계로 떠나는 것 같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저 '밤에 학교로 찾아갔을 뿐'일 텐데 작가가 묘사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밤에는 다른 것이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두 소년이 찾아간 밤은 역시 달랐다. 모든 것이 살아 있을 것 같고 은은하게 반짝인다. 그리고 과학실에서 들려온 낯선 목소리. 밤에 학교에서 수업을 할 리가 없기 때문에 두 소년은 몰래 듣지만 이내 들키고 만다. 미쓰바치는 도망을 쳤지만 아리스는 선생에게 붙잡혀, 꼼짝없이 그 틈에 끼어들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기묘하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아난 듯한 위화감.

그들의 그림자가 새처럼 일렁였다.


그리고 그들이 듣는 수업이 아리스가 들었던 수업과 다르다. 달과 별을 만든다고 하지 않나, 만든 것을 천만에 꿰멘다고 하지 않나. 아리스는 얼떨결에 수업에 따라가고 급기야 하늘을 날아가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정말 엉뚱한 곳에 와 있다고 실감한다.


그것은 어쩌면 꿈 같은 모험일지도 모른다. 아리스가 겪었던 그 모든 일은,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겪은 모험이 결국 꿈으로 되었듯 아리스가 겪었던 일도 아침이 되면 모두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게 정말 꿈이었을까. 꿈이라는 착각이 아닐까. 그렇지만 밤과 낮은 영역이 다르기에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꿈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은 아리스가 겪는 밤의 모험이지만, 아리스와 미쓰바치가 더 이상 소년이 아니게 된 이야기이도 하다. 특히 미쓰바치에게는 어떤 성장의 요소가 있다. 형이 있는 미쓰바치는 형이 하라는 대로 하고 형이 먼저 하지 않으면 하지 않았는데 형의 종용에 못 이겨 밤의 학교를 찾아가서는 어떤 변화를 겪는다. 이 책에서는 여름이 끝난다는 표현이 유난히 많았는데 그것은 소년들의 유년을 끝내는 표현이기도 했다. 결국 한 시절이 지나가면 변하기 마련이듯, 두 소년들도 밤의 학교에 찾아가서 변하고 말았다.


그들의 성장은 어쩐지 씁쓸하다. 여름이 끝나는 것이 아쉽듯, 그들이 더 이상 소년이 아니게 되었을 때, 그것은 씁쓸하면서도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미쓰바치가 밤을 새고서 집에 돌아가 형에게 심부름한 것을 건넸을 때 형이 떠올린 표정이 바로 그 증거다. 이제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이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을 추억하게 만든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동화 느낌이 든 책이었다. 나가노 마유미란 작가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는데, 기대 이상으로 책이 좋았다. 동화를 좋아하고 포근하고 따스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이야길 좋아한다면 이 작가의 책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