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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틸라 왕의 말을 훔친 아이
이반 레필라 지음, 정창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우물에 두 형제가 빠졌다. 어떻게, 왜 우연인지, 아니면 실수인지 알 수가 없다. 이야기의 시작은 우물에서 빠진 두 형제의 상황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우물에서 생존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에게 가진 식량은 빵 한 조각과 무화과 열매 몇 개와 치즈 한 조각과 몇 개의 과일들. 그 식량으로는 두 사람이 버틸 수 없다. 동생이 배고프다고 할 때마다 형은 그 식량이 "엄마 거야"라고 말한다. 어쩌면 여기에서, 이 글의 진실이 숨겨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형제는 벌레와 뿌리를 먹으면서 연명한다. 형은 근육을 키우기 위해 매일같이 운동을 하고 동생은 식량을 찾는다. 그러나 점점 쇠약해지고 급기야 동생은 혼절한다. 혼절한 후 동생은, 독백을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아틸라 왕의 말을 훔쳤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말발굽으로 신발을 만들어서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사람들을 짓밟았다고 한다.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자신들이 무기력하게 우물에 갇혀 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해 내뱉는 말일까. 꿈인 것일까. 아틸라 왕의 말. 권력 앞에서 무기력하게 당한 아이들.
급기야 이 글에서는, 진실을 향한 암시를 던져준다. 신발을 숨기려고 두 아들과 함께 신발을 우물에 숨겨둔 것.
나는 이 대목에서 두 형제가 버림을 받았음을 알아차렸다. 아니, 두 형제가 누군가에 의해 숨겨졌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몰래 우물에 다가와 형제가 자는 것을 보았을 것도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지 않았다는 것. 그것은 뼈저리게 잔혹한 진실이다. 그들은 버림받았다. 누구에게? 제 어머니에게. 그래서 형은 복수하고자 한다. 동생에게 끝없이 분노를 가르치고 의지를 가르친다. 동생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일러준다.
하늘에 날아다니던 새가 땅에 처박혔을 때, 동생이 그것을 먹으려고 하자 형이 먹지 말라고 애원한 일. 동생이 그런 형에게 내뱉은 욕설들. 도저히 어린 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독백. 그런 말들이 마치 초현실처럼 느껴지게 했다. 그리고 어렵게 만들었다. 이야기 자체는 버림 받은 두 형제가 어떻게 우물을 탈출했는지를 보여주는데 그 속에 담겨진 다른 부분이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작품에서 로마의 건국신화를 떠올리기도 했다. 로물루스와 레무스. 레아의 아들들이 아비에게 쫓겨 도망을 갔지만 결국 로마를 건국했다는 이야기. 동생은 어미를 죽이고 형에게 달려가 형을 구했지만 이미 죽어버린 형을 보고 어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그런 부분이 로마의 건국신화를 떠올리게 했고 결국 형의 죽음이 동생에게 어떤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령, 아틸라 왕의 말을 훔치 것처럼.
그렇다면 아틸라 왕의 말을 훔쳤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권력의 쟁취다. 우물에 갇혀 굶주리기만 했던 두 아이가 꿈꾸는 세상이다. 아틸라 왕의 말을 훔쳐서 말발굽으로 신발을 만들어 짓밟는 세상을 의미한다. 그런 식으로 그들의 분노를 드러낸다. 이것이 <아틸라 왕의 말을 훔친 아이>의 진실이 아닐까. 단순히 자신들을 버린 엄마가 아닌 엄마보다 더 위에 있는 권력을 짓밟고 싶었던 게 아닐까. 형이 동생에게 일러준 것과, 동생이 한 독백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말들이 아니었을까.
우물은 좁다. 그들의 세상은 우물처럼 작았다. 우물 밖은 얼마나 크고 거대한가. 그 세상에 짓눌리듯, 그들은 우물에서 굶주렸다. 그렇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벌레와 나무 뿌리로 목숨을 연명하여, 하늘을 날 수 있는 날을 꿈꾸었다. 형이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도 바로 그런 순간을 위해서다.
아틸라 왕의 말을 훔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