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은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 것과 다른 것이 도착하는데, 실은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을 거야. 바로 너처럼._<너의 목소리가 들려>




제이야, 어째서 너의 이름은 제이인 것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왜 너의 이름은 알파벳 이름 한 글자여야 했을까. 아니면, 다른 의미인 제이인 것일까. 왜 네 이름은 제이이고 제이로 끝나는 것인지.


어쩌면 그 말대로 나는 제이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제이가 아닌데 제이가 어느 날 다가와 마치 난 제이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믿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마치 나에게 속삭이는 목소리처럼 다가왔다. 원래부터 충동적으로 읽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느 날, 문득,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하다>에서 제이 이야기가 나온 순간부터, 나는 제이를 알아야겠다고 느낀 것이다. 운명처럼.


나는 제이를 지금보다 더 일찍 만날 수 있었다. 가장 처음에 보았던 마술사의 마술. 그리고 소년. 실제로 죽은 사람과 사라진 마술사와 남겨진 소년. 그 이야기 중에 진짜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그것은 제이를 가장 잘 설명하는 상황일 것이다. 하늘 높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소년을 따라 마술사가 올라갔는데 갑자기 소년의 팔다리가 떨어지고, 마술사가 내려와 양동이에 사체를 담으니 짠 하고 소년이 부활한 것. 그것은 제이가 바라본 환상 같은 것이리라. 아니, 제이가 들었다는 기계의 소리. 그 소리들을 따라서 제이의 영혼이 옮겨가고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은 과연 실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마술 이후 한 왕이 실제로 내시에게 해보라고 했을 때, 내시는 죽고 말았다. 그리고 마술사는 떠났고 소년은 남겨졌다. 제이는 그 소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홀로 덩그러니 낯선 곳에 남겨진 존재. 그것이 제이가 가진 현실이다. 환상이 아닌 진짜 현실. 홀로 남겨진 소년은 마술사에게서 마술을 배웠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 마술을 보여야 했을 것이다. 혼자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소년은 상상해야만 했을 것이다. 제이처럼.


제이의 탄생은, 마치,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마술사의 조수와 같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갑자기 나타난 제이는, 우렁차게 울음을 터트리면서 돼지엄마에게로 흘러갔다. 그리고 동규를 만나 동규의 언어를 해석하는 마술을 선보였다. 하지만 돼지엄마가 남자와 함께 떠나고 동규도 개발로 제이를 떠났을 때, 제이는 다시 또 홀로 남겨졌다. 제이에게는 누군가가 떠났다는 것이 마술과도 같았으리라. 그래서 거울을 마주보게 하고서 '악마'를 잡는다고 떠들었다.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악마라도 잡아서 홀로 남지 않으려고. 그것은 무척 슬프지만, 오히려 그런 슬픔이 제이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마치 제이는 홀로 살아야 하는 존재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홀로 덩그러니 나타난 것처럼, 홀로 재개발대상인 빌라에 혼자 남았을 때, 제이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그러나 동규에 의해 제이는 끌려가고 보육원에서 살게 되었다. 그곳은 마치, 판타지 세계 같았다. 보육원, 개들이 있는 사육장, 그리고 버섯이 자라는 농장. 사악한 자들이 사는 동화 세계 속에서 화재가 일어나면서 제이는 새로운 마술을 보았다. 자신이 기계의 소리를 듣게된 것이다. 영혼이 분리되어 다른 영혼으로 옮겨가는 새로운 경험. 그때부터 제이는 다시 달라졌다. 혼자였기 때문일까. 혼자이기 때문에 다른 존재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일까.


어째서 제이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단순히 버림받았다고 말하기엔, 뭔가 더 깊은 것이 있다. 제이는 마술 같은 존재다. 손과 다리가 잘려서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양동이에 주워담은 순간 다시 부활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제이는, 사라져버렸다. 마술사처럼. 홀로 남은 줄 알았던 마술사의 조수가 제이인 줄 알았는데, 마술사가 제이였던 것이다. 제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떠나갔다. 책에서는 제이에 대해서 동규의 시점으로 쓰다가, 마지막에 제이의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한다. 그것조차 제이가 존재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길고 긴 꿈을 꾼 것처럼, 제이의 존재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마술사가 부리는 마술 장면은 제이의 모든 인생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나.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동규도, 목란도, 승태도 제이를 보았다. 그들은 제이의 실체를 직접 겪었다. 제이의 존재는 허상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라졌다. 그는 어디로 갔는가.


난 이제 제이의 목소리를 찾으려고 한다. 제이가 목소리를 들려주길 바란다.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세상은 다시 마술처럼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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