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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 <청춘의 문장들> 10년, 그 시간을 쓰고 말하다 ㅣ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금정연 대담 / 마음산책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어떤 문장들 때문에 그 책 전부가 좋아지는 일이 있다. 어떤 문장은 빨리 잊히지만 어떤 문장은 어떤 잔상으로 남아 기억될 때가 있다. 내게 <청춘의 문장들>이 그랬다.
어느 날, 문득 갑자기 그 잔상이 떠오른 게 아닌, 너무 아파서 아파서 견딜 수 없을 때 그 문장이 생각났다. 그때 내게 떠오른 것은 "자폐의 시간"이라는 단어와 단어의 만남이었다. 자폐의 시간을 홀로 견뎌야 한다는 잔상이 느껴졌지만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펼쳤다. 처음 읽을 때에는 느끼지 못한 것을 새로 읽을 때 느꼈다. 아주 사소한 문장이었던 것도 거듭 읽어보니 사소하지 않게 되었다. 문득문득, 이 책을 내가 지금보다 더 어린 날에 알았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책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다. 내가 책을 지금보다 어린 날부터 읽어왔더라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을까. 그건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 김연수 작가님의 말대로,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도 어린 날의 나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한 지금에서야 겨우 나는 좋은 사람처럼 보이게 되었으니까.
<청춘의 문장들>을 처음 읽고서 쓴 리뷰를 다시 꺼내 읽었다. 그 책을 처음 읽을 무렵은 봄날이라고 생각했는데 리뷰를 적은 날을 보니 한겨울이었다. 1월 26일. 그날, 나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이름 모를 소년을 사랑하리라 다짐했다고 적어두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리뷰를 읽어도 그렇다. 그때 나는 무엇을 느꼈기에 지구 반대편에 사는 소년을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청춘의 문장들>을 읽고서 나는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눈을 뜬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곧 죽을 것처럼 힘껏 사랑을 하자고 마음 먹으면 그 순간 사랑에 빠진다고 믿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것이 청춘이라고 생각한 것이겠지. 쉽게 사랑하고 쉽게 잊히고 쉽게 잊는, 그런 것이야말로 청춘의 특권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지구 반대편의 소년을 사랑하는 건, 잊고 싶었다기보다 기억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내가 모르는 어떤 세상에서, 웃고 있을지 울고 있을지 모르는 소년의 어떤 것을 기원하는 일. 그것이 나는 기억하는 일이라 믿었던 것도 같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청춘의 문장들+>을 읽고서 나는 새삼, 어떤 사소한 것 하나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봄날 흐드러지게 핀 꽃이 아닌, 지는 꽃을 보면 봄을 그리워하는 김연수 작가님처럼, 아주 사소한 행동 하나로 사람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춘의 문장들+>에서는 작가님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청춘의 문장들>을 처음 썼을 때의 기억과 지금 나이에서의 기억에 대한 것도 많이 나온다. 작가님의 삶이라기보단 마치 <청춘의 문장들>이란 책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에게도 청춘이 있다면, 맨 처음 나온 <청춘의 문장들>에게 <청춘의 문장들+>은 새로운 것일까. 그렇다면 <청춘의 문장들>은 청춘을 그리워하는 책인 것일까. 아닐 것이다. 그 책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청춘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은 존재하는 것으로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겐 그랬다. 처음 읽을 때와 다시 읽을 때의 감정은 바뀌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지는 꽃을 바라보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김연수 작가님과 비슷하다. 꽃이 피는 순간도 물론 사랑하지만 꽃이 지는 순간도 사랑한다. 꽃이 지는 것으로 또 한 번 꽃을 본다고 말하신 작가님의 말씀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느낀 감정이 그와 비슷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문장은 빠르게 지나가지만 어떤 문장을 아무리 지나치려고 해도 지나칠 수 없다. <청춘의 문장들+>은 그런 문장이 유독 많았다. 작가님의 시간과 청춘, 삶과 어떤 그리움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그런가, 가끔은 그 문장을 통째로 기억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봄을 그리워하듯, 나는 어떤 문장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둠을 지나야 비로소 빛을 볼 수 있다고 말한 <청춘의 문장들>이 있다면 꽃이 지는 시간을 바라봐야만 봄을 알 수 있다고 말한 <청춘의 문장들+>이 지금 내 안에 담겨 있다.
결국, 청춘이란 봄과 같은 계절일 것이다. 붙잡을 틈도 없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서 그리움만 남게 되는 것.
그래서 <청춘>이란 단어에 봄 춘자가 붙어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