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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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우주 알이 제 몸으로 들어와서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어느 한 세상에 머물러 있는 채 있는 것은 가엾으니까. 결국 우주 알이 있었기에 남자는 제 패텬을 지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패턴 그 자체로 남은 거 같았다. 벗어나려고 바동댔지만 제 엄마에게도 벗어나지 못하고 제 아빠에게도 벗어나지 못한 채 삶을 이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만 무능했던 아빠, 잘난 얼굴로 딴 살림을 차리던 아빠, 아빠의 얼굴을 닮은 여자, 엄마에게 미움받았다고 생각하는 여자. 엄마와 아빠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했지만 끝내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여자. 결국 그녀는 그녀가 생각하는 패턴으로 남았단 기분이 들었다.


아주머니는, 스스로 패턴을 만들었단 기분이 들었다.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남자를 쫓아다니면서 남자의 삶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패턴이 된 것 같았다. 남자에게 사람을 죽인 죗값을 상기시키고 남자가 일을 시작하면 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패턴. 그것 역시 또한 괴로운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제 동급생을 죽였다.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이유였다. 어느 날 그는 칼을 들고와 동급생을 찔렀다. 그는 감옥에 갔다.


여자는 남자를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다. 두 사람은 모두가 하교한 운동장에 남아서 그가 쓴 소설 이야기를 한다. 남자는 여자의 말을 오래오래 기억한다.


아주머니는 아들이 착하고 상냥하다고 믿는다. 아들이 죽음을 오래도록 기억하려고 한다. 남자가 편히 사는 것을 두고보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남자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라고 한다.


무엇이 삶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아들을 잃은 아주머니를 유심히 보았다. 남자에게 여자는 무엇이었고 여자에게 남자는 무엇이었으며 남자에게 아주머니는 무엇이었고 아주머니에게 남자는 무엇이었는가. 여자와 아주머니를 이어주는 것은 남자였다. 우주 알을 품은 남자. 어떤 패턴을 갖고 있었기에 우주 알이 그의 몸속에 들어갔는가.


남자는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 살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전과 기록이 그의 삶을 방해한다. 아주머니가 그가 무언가 하려고 하면 전화를 해서 그가 편히 지낼 수 없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아들처럼 대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그들은 마치 지금 처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학교폭력이라는 굴레 아래, 남자는 칼을 들어 동급생을 살해했다. 어쩌면 그것이 패턴을 벗어나기 위한 최초의 행동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곧 새로운 패턴에 잡히고 말았다. '살인자'라는 패턴. 그것이 그의 삶을 혹독하게 했다. 남자는 그래도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패턴을 벗어나기 위한 몸짓은 사실 그렇게 격렬하지 않은지도 몰랐다. 그저 묵묵히, 제 시간을 살아가는 것. 여자는 남자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다. 여자는 남자의 패턴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남자의 패턴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결국 여자는 남자의 패턴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남자는 여자를 떠났다. 아주머니는 남자의 패턴을 지우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였다. 제 아들을 죽인 남자가 행복해지는 것을 보지 못해서 새로운 패턴을 남자에게 덧씌우기 위해 발악하는 것처럼 보였다. 괴로움, 분노, 증오, 모든 감정이 패턴이 되었다.

결국 남자는 어떻게 되었는가.

무척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남자의 그 덤덤하면서도 패턴을 벗어나기 위해 묵묵히 걸어왔던 행보가 무의미한 것으로 된 것 같았다. 삶이란 자기가 만든 패턴을 벗어나기 위한 발악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타인이 만든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인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나아가는 인생에서 행복이란 패턴은 극히 드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로 그것을 찾으려고 나아가지만 그것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한정되는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를 만남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빛나게 했다. 여자야말로 남자가 찾던 패턴이었다고 생각했다. 그 한 조각의 패턴이 남자의 인생을 달라지게 했으리라.

어째서 사람은 자신이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주머니는 그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들을 죽인 남자를 용서하고 떠나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그러질 않았다. 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아니라 변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삶을 가련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증오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변하지 않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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