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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닮은 도시 - 류블랴나 ㅣ 걸어본다 4
강병융 지음 / 난다 / 2015년 5월
평점 :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런 나라가 있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책의 날개 부분에 류블랴나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가 되어 있다.
유럽 한가운데 우리나라 대구광역시의 인구보다 사람이 적은 나가라 하나 있다(200만 명). 국토도 전라남북도를 합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20,273km). 서울에서 서쪽으로 8,530km쯤 가면 이 나라의 수도를 만나게 되는데 면적은 성남보다 조금 크고(163.8km) 인구는 목포 정도 된다(27만 명). 그중 한국인은 열 명 남짓. 그 도시에 동쪽으로 서울에서 대전(140km)만큼 가면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도착하고 남서쪽으로 서울에서 대구(240km)만큼 가면 이탈리아의 미항 베네치아를 볼 수 있으며 동쪽으로 그만큼 가면 헝가리가 나온다. 북동쪽으로 서울에서 부산(380km)만큼 가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가 나오고 남쪽으로 서울에서 군산(206km)만큼 가면 '꽃보다 누나'로 유명해진 크로아티아의 관광명소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닿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면적 일부만큼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 그 나라를 알게 된 순간 나는 미지의 곳으로 향하는 문을 연 기분이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또 있구나, 그만큼 설레는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류블랴나는 슬로베니아의 수도. 슬로베니아를 소개하면서 시작하는 글이 사람에 대해 적으면서 조금씩 스며든다. 작가의 아내, 그리고 작가, 그리고 작가의 딸. 한국인이 살고 있는 류블랴나. 과연 어떤 곳일까, 하고 생각하게 된 순간 나는 어느새 이 책의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사진마저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세심하게 찍힌 사진은 류블랴나의 일부였던 탓에 그 너머의 풍경이 궁금했다. 얼마나 아름답기에 작가는 이 도시가 자신의 아내를 닮았다고 하는 걸까.
세 가족이 살아가는 풍경은 그들이 살아가는 일상이다. 한국에서 슬로베니아에 처음 왔을 때의 일, 슬로베니아에서 겪은 유학시절, 가족과 떨어져서 살아야했던 순간들, 딸이 처음 학교에 입학하던 날. 그리고 류블랴나를 둘러보는 일상. 담백하게 풀어가는 슬로베니아. 그곳에 사는 사람들. 거리가 8,530km나 떨어져 있다고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가깝게 느껴졌다. 내가 사는 곳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소박하지만 늘 푸른 나무를 볼 수 있는 곳. 조금 세련된 느낌이 강한 슬로베니아지만 왠지 내가 사는 곳과 다르지 않다면 나 역시 그곳에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물론 나만의 착각이겠지만.
누군가가 살아가는 세상은 왜 그렇게 반짝거리는지. 사람인지 도시인지, 아니면 나와 다른 세상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세상 너머에 펼쳐진 곳은 언제나 찬란하다. 류블랴나를 둘러보는 작가의 이야기를 다 읽고나서 느낀 점은 '따스함'이었다. 그가 아내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서 도시마저 따뜻하게 느껴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슬로베니아 사람들을 묘사할 적에 왠지, 아내를 닮았다고 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따스하기 때문에 그 도시마저 따스하다고 느끼게 된 게 아닐까. 닮았으니까. 닮았으니 어쩔 수 없이 같은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피란을 가는 여정이나 조금 자유분방하게 느껴졌던 메텔코바, 슬로베니아의 상징인 용, 그리고 호수, 포스토이나. 낯선 이름에서 보여진 풍경은 봄날의 햇살처럼 푸근했다. 작가의 문장이 그것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따스한 곳에 발을 담그고 직접 숨을 쉬고, 주위를 둘러보고 싶다 생각했다. 작은 나라지만 작기 때문에 느껴지는 거대한 무언가가 있으리라. 슬로베니아 사람들이 친절하게 건네는 인사도 듣고 싶고 나도 그들에게 덕담을 건네고 싶었다. 그런 '상상'을 하는 것으로도 굉장히 기분이 좋아졌다.
더군다나, 아내를 향한 그 마음. 작가가 얼마나 따스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작가와 아내,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마주보고 있다는 느낌이 확실히 있었고 배려하고 서로를 위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작가가 꿈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있다. 그는 그 아내에게도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노벨상 만찬에 초대 받는 거!
-당신이 좋은 글을 쓰는 거!(133p)
남편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꿈이 될 수 있다니. 으, 너무 화목해서 부러울 정도였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대신하여 누군가의 꿈을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꿈 자체를 포기한 게 아니라, 음, 뭐라고 해야 할까. 너무 그 사람이 사랑해서 그 사람의 꿈을 함께 꿀 수 있다는 것! 그래, 이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너무 사랑해서 그 사람의 꿈을 함께 꾸는 것을 꿈꾸는 아내의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아, 이렇게 행복하구나. 그게 책에서 물씬 넘어와 나를 감싸는데 그 감각이 너무 좋았다. 아, 행복하구나. 이렇게 말하니 나도 함께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그들의 일상을 엿본다는 건 조금 죄책감이 들지만(사생활이니까) 엿볼 수 있기에 내가 류블랴나를 알게 되고, 슬로베니아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았다. 베네치아와 가깝고 크로아티아와 가까운 슬로베니아.
어떤 곳일까.
읽으면서 내내 이 생각을 했다.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읽으면서 내내 그들을 꿈꿨다.
어쩌면 그곳은 샹그리아와 같은 낙원일지도 모르겠다. 꿈꾸지만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그런 세상.
그렇기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류블랴나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진만큼 물리적인 거리도 가까웠으면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