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소년 문학동네 청소년 29
오문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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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비겁함을 이기지 못해 트럭 앞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 그런 것일까. 비겁하다는 이유만으로는 도저히 답이 되지 않을 것 같은 투신이다. 주인공이 트럭에 뛰어든 건. 그렇지만 그 어떤 이유가 되었건 그는 살았고 살아났기에 싸우기를 택했다. <싸우는 소년>은 제목 그대로 싸우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이 말하는 어른, 주인공이 말하는 십대. 강자와 약자. 비겁한 자와 강한 자. 싸워야 것과 도망치는 것의 무게. 어찌 보면 주인공이 트럭에 치인 것은 주인공 나름대로의 도피일 수도 있고 주인공 나름대로의 싸움일 수도 있다. 서찬휘라 불리는 한 소년을 위해 했던 행동. 제 자신을 향한 증오와 혐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기지 않을 선택. 그렇기에 눈을 떠 보았던 "싸워"라는 단어가 그를 일으켜세웠는지도 모른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싸워. 지극히 단순한 생의 진리.


서찬휘는 따돌림을 당했다.

주인공은 그것을 방관했다.

안승범은 서찬휘를 괴롭힌 가해자였다.

서찬휘는 자신을 괴롭힌 사람에게 저주를 하면서 옥상에서 투신했다.


죽음.

어느 한 사람의 목숨.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아서 함부로 다루기가 쉽지 않다. 소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 더 문제다. 따돌림이나 괴롭힘, 누구도 알 수 없는 소리 없는 비난. 내가 먹힐지도 모른다는 약육강식의 세계. 먹히지 않으려면 먹는 쪽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주는 교실의 풍경. 그곳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쉬이 편해질 수 없다. 그 진리를 주인공은 아주 오래전에 깨달았지만 그는 도망치는 것을 택했다. 서찬휘의 죽음은 그를 뒤바꾸기에 충분하다. 그가 변한 것은 '친구'라는 무게가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도망치다 도망치다가 끝끝내 도망칠 곳을 찾지 못해 싸움을 택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만난 산이 누나. 산이 누나는 권투를 한다. 누군가 때려주기 위해 권투를 시작했다고 하지만 지금 그녀는 주인공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주인공이 왜 권투를 시작했는지 알게 될 때 그녀는 주인공에게 권투를 시작했던 계기를 둘려준다. 그녀 역시 따돌림의 피해자. 그리고 비겁하게 도망친 사람. 주인공은 싸우기로 결심했지만 그 누구도 그의 싸움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양아영도, 강준혁도. 양아영은 따돌림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주인공에게는 비겁한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을 알게 될 때의 그 착잡함과 죄책감. 결코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을 속단할 수 없는 것이다. 직접 겪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그 사람의 비겁함을 탓할 수 없다.


우리는 어째서 이런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싸우는 소년>을 읽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은 여전히 자신의 말이 옳다고 하고 적당히 얼버무리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굴종한다. 이미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져 무엇을 바로잡아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이미 너무 많이 어긋났다. 도대체 어떻게 그것을 고쳐야 하는 것일까. 수 간호사가 자신의 괴롭힘을 무마하기 위해 후임을 괴롭히는 것 또한 어쩌질 못해 하는 행동처럼 비춰지기도 했다.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싸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처절하게 싸우고 있을 사람들. 그렇기에 주인공은 끝까지 싸우려고 한 게 아닐까.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싸워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피할 수 없는 싸움이란 게 있다. 도망치는 게 최선이 아닌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주인공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오문세 작가는 끝까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주인공이 진정 싸워야 하는 대상은 안승범이 아니라 주인공 자신이었다고 넌지시 말해준다. 결국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어제의 나와 싸워 이겨야 한다. 어른으로 가는 길은, 분명 그럴 것이다. 누군가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아니라, 내 자신이 어제보다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


싸워.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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