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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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말해주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반복해서, 생각해서 하다보면 결국 하나의 태도, 삶에 임하는 태도가 되는 것이다. 땅을 밟는 것이, 길을 걸으며 들꽃을 꺾는 것이 좋은 사람은 많이 걸을 것이다. 많이 걷다 보면 걷는 것은 그가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태도요, 방법론이 된다. 자동차는 조금 덜 타고 조금 더 걺는 삶, 두 다리를 써서 생각하는 삶._142p



지극히 사적인 글이었다. 한국을 떠나 뉴욕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뉴욕이 '사적인 도시'가 되었다고 말하는 저자의 삶이 책을 통해 드러난 것만 같았다. 아니, 이 책이 저자의 삶이었다. 2005년부터 2010년도까지의 글만 발췌되어 출간되었지만 그 몇 년의 생활에서 전체적인 삶을 가늠해본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뉴욕은 자기만의 '사적인' 도시라고 했다. 책을 읽고서 그 말에 공감했다. 사적인 도시에서 보여주는 사적인 삶은, 작가 본인이 아니고선 결코 이해할 수도 없으리라. 나는 저자에게 스치는 풍경 중 하나이거나 어쩌면 아주 먼 곳에 있는 보이지도 않을 흐릿한 별일지도 모르니. 그러니 내가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삶을 모두 안다곤 할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볼 수는 있었다. 이해하는 게 아니라, 보는 책. 내용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를 알았다. 그렇기에 내 감상 또한, 사적일 수밖에 없다. 사적인 글과 사적인 감상. 어딘지 모르게 잘 어울리는 조합인 것도 같다.


<나의 사적인 도시>.제목이 매력적이다. '뉴욕'이란 도시를 다룬 책이라는 것보다, 그저 제목 하나에 끌렸다. 그래서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사적'이라는 것에도 많이 고민을 했다. 사적이라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꺼내 보이는 게 아닌 혼자 소유하는 것으로도 족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사적인 도시>에서 작가에게 뉴욕이 그랬다. 뉴욕의 갤러리, 사진전, 많은 그림과 사진, 조형물을 보고 생각을 하고 감상을 글로 남긴 것. 그것이 작가 혼자 전유한 '사적'인 게 아닐는지. 그렇기에 이해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아 보였다. 책으로 나온 순간, 그것은 저자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여전히 그것은 저자만이 가진 '사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지극히 사적인 세상. 슥 들이밀어 지켜볼 순 있겠으나 오직 그뿐인 공간. 그렇기에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왠지 저자는 슥 들이밀어도 개의치 않고는 자기만의 사적인 것을 계속 품어갈 것만 같았다.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예술가의 이름을 나는 모두 알지 못한다. 미술이나 사진, 혹은 영화와 같은 쪽은 무지하기 짝이 없다. 솔직히 책에 대해서도 그다지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숱한 작가의 이름이 나왔다가 사라졌는데도, 그 어떤 이름에서도 나는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이 책은 거의 99%, 내가 모르는 세계로 꽉 차 있다. 모르기 때문에 이 책이 지극히 '사적'이라고 감상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자기 자신과 비슷하게 한 생각을 보며 반가워할 수도 있다. 내가 느낀 사적은 진정 저자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분위기'였다. 내가 저자처럼 많은 예술가를 알고 작품을 보고 감상을 해도 이렇게까지 애정을 품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애정과 관심, 그리고 충분히 누릴 줄 아는 여유. 완숙한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푸른 창공에서 사뿐하게 내려앉은 고고한 학처럼 고요하면서도 끝없이 움직이는 동적인 세상. 그것은 박상미란 사람이 보는 세상이기에 지극히 사적일 수밖에 없다.


모르는 세계. 낯선 세계로 들어서는 것은 언제나 두려움이 동반된다. 에드워드 호퍼란 이름을 보고 그의 작품을 찾아 보았다. 솔직히 그림을 볼 줄 몰라서 눈으로 대충 담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런 것처럼, 어느 순간 마음에 잔상으로 남는 순간이 있다. 이 책을 다 읽고서 많은 예술가들 중에서 유난히 에드워드 호퍼가 기억에 남은 것은 그가 그린 그림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저자가 말한 것 때문이다. 어떤 책은 때론 문장 때문에 읽기도 한다.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그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문장들이 훗날 어떤 식으로 발현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사적인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고요하게 잠기기보단 끝없이 흘러가는 물결처럼, 조금씩 느리게 나를 채워가리라 생각한다. 이해하는 것이 아닌 받아들임. 책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책이다. 조용히 숨을 죽인 채, 그의 세상을 지켜보라. 보는 것이 때론 상대를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말해주듯.


반짝이는 햇빛 아래 숨겨 있는 그림자처럼, 나는 이 책을 그림자처럼 읽었다. 드러내는 게 아닌 숨기면서 이 책을 조심스럽게 탐닉했다. 날숨에 집중하는 때가 있다고 말하는 작가처럼, 숨김에 집중하며 읽었다. 그것이 내가 사적인 세계를 존중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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