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것을 상상한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처럼. 어디로 향하는지도,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른 채 나는 그저 바다 한가운데에서 전부를 드러내고 있다. 내 발밑에는 까마득한 어둠을 벌리고 있는 바닷물만이 있고 내 머리 위로는 창창하게 별이 쏟아지는 하늘이 펼쳐져 있다. 세상의 끝에 서서 바라보았다면 아름다웠을 풍경은, 바다 한가운데라는 현실로 돌아와 춥고 시리고 외로움만을 부가시킨다.

 

백수린의 소설은 그 바다를 떠올리게 하였다. 깊고 푸른 바닷물 한가운데에 표류하고 있는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것. 고독하고 슬프고 괴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구원과도 같은 것을 예감하게 한다. 잃어버린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다고 예감한다. 누군가는 떠나가겠지만 다른 누군가가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백수린은 진실된 목소리로 말한다. 엇나간 단어의 의미를 가진 여자에서부터, 동거인이든 동거인의 남자친구이든 갈망을 하는 여자에서부터, 교포를 사랑해야만 했던 여자에서부터, 베를린으로 훌쩍 떠나버린 여자에서부터, 착각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모를 곳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여자에서부터, 이국의 여자를 통해 옛여인을 떠올리는 남자에서부터, 프랑스에서 홀로 유학을 떠난 여자에서부터, 유령이 출몰하는 곳에서 사는 어느 남녀에서부터, 말과 함께 하는 여인이 말을 잃어버린 남편과 함께 하면서부터 무언가 스러지고 무언가 생겨나는 것을 백수린은 나지막이 말해준다.

 

새벽이 오기까지는 참으로 멀다. 출렁이는 몸에는 절망만이 가득하다. 그렇지만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허우적대야 한다. 삶이란, 그런 절망을 끌어안고 허우적대는 것이다. 절망이 바스러질 때까지 허우적대고 바동거리고, 저항을 하다가 어느 끝에 가서야 발견되는 희망을 찾는 것. 감자와 신념과 개를 잘못 알고 있는 그녀가 마지막에 그녀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발견했듯이 말이다.

 

바로 가까이에서 본 절망은 <자전거 도둑>의 그녀다. 안나, 아름답지 않았을 안나가 P를 만나고서 얼마나 아름다워졌는지. 모든 불행의 탓이 자전거 때문이라고 하지만 모든 불행은 P가 등장하고서부터다. 그녀는 안나를 질투하고 P를 질투하고 제이를 질투한다. 절망의 끈적끈적한 감정 안에서 안나의 가계부를 훔쳐보고 안나의 립스틱을 바르고 안나의 자전거를 훔치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안나의 자전거에 체인을 단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는 질투하기를 그만둔다. 절망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자신과 같이 하는 존재만 있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존재를 간단히 찾을 수 있을까. 폴이 그런 존재라고 그녀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어 강사로 폴과 늘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폴은 너무나 간단하게 유리꼬에게 가버렸다. 아니, 간단한 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폴에겐 아버지라는 산이 존재했고 유리꼬와 함께 하기엔 그 존재가 거대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만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폴은 철저하게 미국인으로 살길 바라던 아버지는 폴이 한국인이란 사실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대륙 너머까지 결혼을 하겠다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국인이란 껍질이 얼마나 허무한지 알게 될 것일 거다. 폴은 폴답게 살아야 했으므로. <폴링 인 폴>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하 진 작가의 <자유로운 삶>을 떠올렸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주인공이 아들에게만큼은 중국의 처절한 역사를 보이지 않으리란 각오로, 시민권을 따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 시를 적고 싶었지만 미국에서 정착을 하기 전에는 그럴 수 없었던 주인공. 자유로운 삶이란 대체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들은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폴도 그러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서 자유로운 삶이란 무엇이었는지 고민을 하고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도 폴도, 유리꼬도 방황을 했던 것이라고.

 

그렇다면 절망 속에서 견디는 것은 무엇일까. 삶은 견디는 것이다. 베를린까지 유학을 갔지만 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래도 그를 따라잡고 싶었다. 역사와 같은 학문에 있어서 눈을 반짝이면서 대하는 그를 따라잡고 싶어서, 첼로를 그만두고 음악사를 공부하러 베를린까지 왔다. 그러나 결국 그녀가 마주한 것은 나이가 들어버린 그였다. 너무나 쉽게 지치고, 너무나 쉽게 피로해하는 남자. 그렇지만 그녀는 견뎌내야 함을 안다. 유태인 박물관에서 포로수용소 체험을 하는 동안 끈질기게 버텨냈던 그 어둠처럼. 언젠가 절망은 끝이 나리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던 것일까.

 

정말 끝이 날까.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계속 존재했던 현실이었는지도 모른다. 수족관에 딸과 함께 들어갔지만 아이를 잃어버린 그녀는, 아이를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둘러보지만 정작 아이가 언제 자신과 함께 있었는지 기억하질 못한다. 유명한 스타라는 그녀의 남편. 결국 경찰서까지 가서 실종신고를 하려 하지만 경찰은 그녀에게 터무니없는 진실을 들려준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는 것은 현실일까, 환상일까. 그녀가 환상에 빠지는 순간일까,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일까. 어떤 것이든 그녀는 절망할 것이다. 아이가 허구이든, 아이를 진실로 잃어버린 것이든. 절망은 되돌아오는 화살처럼 그녀의 심장을 관통한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둠으로 가라앉는 나에게 손을 내뻗는 존재가 있다면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리는 킴이 그런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보잘 것 없는 자신과 함께 한 것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한국으로 귀국한 후에야 그것은 자신의 말도 안 되는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는 궁에서 다른 외국인을 찾아냈지만 그것도 허망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천 년을 버틴 은행나무 사이에 앉아 있는 까마귀들은 그의 허망한 꿈을 알아낸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푸른 창공에 펄럭이는 까만 날개는 얼룩처럼 남아, 리의 현실을 괴롭힌다.

 

그래도 결국, 누군가 함께 해줄 것이다. J선배를 찾아 유령이 출몰하는 곳으로 간 그처럼 말이다. 점점 작아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J선배를 떠날 수 없었다. 유령이 출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체화된 절망일 것이다. 모든 것을 불태운다는 것은, 그들의 삶이 재기할 수 없도록 모든 것을 없애버린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그들은 서로를 떠날 수가 없다. 서로 함께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함께 한다는 것은 깊은 어둠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말을 잃어버린 남편이지만 그녀는 남편의 옆에 남는다. 점점 사라져가는 남편의 얼굴은, 그녀가 가진 죄악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이대로 사라지면 좋겠다는 그녀의 바람. 그렇지만 그녀는 남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오래도록 잃어버린 것은 비단 말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애정과도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저 멀리 치워버린 희망일지도 모른다. 삶을 버틴다는 것은 어떤 절망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해주었다. 절망을 외면하기보단 절망을 사랑하라고, 프란시스의 잠의 시처럼 말이다.

 

결국 새벽은 온다. 통이 터오는 아침이 오면 바닷속에 있다 하더라도 덜 외로울 것이다. 그 한 줌의 햇살을 위해 우리는 살아가고 있노라, 그들은 말해주었다. 그렇기에 포기할 수 없는 삶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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