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도를 사랑한다 - 경주 걸어본다 2
강석경 지음, 김성호 그림 / 난다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014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바다 깊숙이 수많은 영혼이 가라앉았고 세계 곳곳에서 내전의 소식이 들렸다. 비참하고 슬픈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내 나라에 대해, 내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해야만 했다. 내가 진정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나는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흘러가야 할 것인가. 도대체 어디로 회귀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때 만난 책이 강석경 작가님의 <이 고도를 사랑한다>였다. 경주를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한 한 소설가는 이 책에서 이렇게 밝힌다.

 

 

자연인 듯 이지러져 천오백 년 전 고분이 도심에 솟아 있는 풍경은 근원적이었다. 김씨 왕들의 거대 능을 산책하며 내 속에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았고, 비로소 한국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다._6p

 

어느 도시에서 자신의 근원을 밝힐 수 있다면, <이 고도를 사랑한다>의 저자인 강석경 선생님은 실로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아직 인생이 짧아 근원이라는 것을 추구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지만 경주를 역사에서부터, 자연에서부터, 어떤 영혼에서부터 밝히는 글을 읽고 나니 내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알 것 같았다. 나의 부모님을 넘어, 내 핏줄이 있게 해준 조상들을 넘어, 멀고 멀고, 길고 긴 어떤 시작점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그것은 내가 평생을 함께 한 자연이었음을.

 

어릴 때부터 내 옆에는 푸른 녹음과 활짝 핀 꽃과 잠자리와 매미와, 호박 덩굴이 함께 했다. 내가 사는 곳은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 외지였고 산골이었고, 겨울이 되면 등교시간이 아닌데도 새벽 일찍 학교에 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늘 조용한 자연을 마주했는데 그때 당시엔 그것이 나와 함께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어릴 때에는 늘 함께 있던 나무와 꽃과 새들이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학교를 다녀오면 아이들과 어떤 도구도 없이 그저 산을 누볐다. 길이 있으면 길을 따라 길이 없으면 나무와 나무 사이를 지나쳐, 모든 것을 눈에 담으려고 했다.

 

경주는 그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한때 경북 영덕에서 산 적이 있다. 그때 학교에서 소풍으로 경주를 찾은 적이 있다. 불국사, 석굴암, 그리고 천마총이 있는 거대한 고분. 산처럼 우뚝 솟은 능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세상이 펼쳐졌다고 여겼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며 책을 읽었다. 역사와 현재가 어우러져 살아 있으니 신화의 나라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싶었다. 박혁거세의 신화부터 시작하여 김유신과 삼국통일을 했던 문무왕까지. 오랜 신화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곳이 바로 경주였다. 그 경주를 잊고 있었다는 게, 어릴 때 좀 더 유심히 살피지 못한 게 후회로 남았다.

 

도시에는 숱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도시 곳곳에 공기처럼 흩어져 숨을 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층 아파트가 지어질 것이라는 경주의 도시에서, 아주 오래된 것들이 사라지면 경주는 어찌 될 것인가. 경주 곳곳에 뿌리를 내린 자연의 모습이 사라지면 우리들의 회귀는 어찌 될 것인가. 신라인의 정기가 어려 있고, 자유로운 유목민의 영혼이 숨쉬는 경주에서 나도 몸을 누이고 싶다.

 

경주는 과거가 녹아들어 현재를 탄생시킨 곳. 아직도 그곳에는 신라인들의 향수가 젖어 있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능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곳에서라면 잃어버린 상상력을 찾을 수도 있겠다. 인간이 가진 위대한 유산은, 어쩌면 자연에게서 물려받았던 게 아닐까. 숨을 쉬면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경주에 가면 고대인들의 상상을 들이마시리라. 경주에서 나 역시 근원으로 회귀를 시작하리라.

 

모든 것을 채우기보단 비우는 삶처럼, 나 또한 자유를 알아가리라. 그것이 경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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