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웰즈의 죄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5
토머스 H. 쿡, 한정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너무 유명해서 인용하기도 민망한 니체의 말,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나를 들여다본다는 말.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 구절이 떠올랐다. 줄리언 웰즈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너무 오래도록 심연을 들여다봤기 때문이라고. 그가 지은 '죄'라는 게 그가 평생을 좇아온 어떤 죄의 모습이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미스터리 장르란 타이틀을 달고 있기엔 아까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간 읽은 미스터리엔 인간 본연의 심리를 다룬 작품도 있고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처럼 사회 본연의 모습을 다룬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미스터리가 향하는 곳은 인간의 심리다. 정확히 꼬집어 말하면, 인간의 심리 중에서도 범죄자와 피해자의 마음. 모든 범죄에는 범죄자와 피해자만 존재한다. 제3의 인물이 존재할 수가 없다. 사건 안에서 어떤 사람도 피해자를 이해할 수 없고 어떤 사람도 범죄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탐정 소설에 탐정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그들은 피해자와 범죄자, 모두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수수께끼에 목말라하는 자들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심리면으로 볼 땐 <줄리언 웰즈의 죄>는 기가 막히도록 치밀한 심리를 다뤘다. 줄리언 웰즈의 죽음을 듣고 왜 그가 죽어야만 했는지 탐구해가는 필립과 로레타를 보면서, 그들이 목도한 것은 어느 누군가의 잔인한 마음이었으므로. 종국적으로 그들은 줄리언 웰즈라는 한 사내의 심연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미스터리란 장르를 보고 <줄리언 웰즈의 죄>를 논할 때, 이 글은 미스터리라기보단 '팩션'이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나치, 학살, 엘리자베스 바토리, 질 드 레, 여러 인물을 놓고 볼 때 이 글은 미스터리라고 볼 수는 없다. 치밀하게 짜여있기는 하지만 미스터리에서 말하는 긴장감은 아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추적해가는 상황도 아니거니와, 줄리언 웰즈가 지었다던 죄나 필립과 로레타가 내내 들었던 마리솔의 이야기나, 누군가가 누군가를 해쳤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글에서는 피해자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가해자란 어떤 악의를 가지고 상대방을 해쳤을 때 생기는 것인데, 이 글에서 악의를 가진 사람은 없었으므로. 마리솔도 줄리언 웰즈도 기가 막힌 상황에서 사투르누스의 기습을 받은 것이다.

책의 뒷표지에 '인생은 사투르누스의 기습이다'라고 적힌 구절이 있는데 왜 이런 구절을 적었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 주로 다룬 것은, 사기와 기만에 능한 사람들의 죄를 고발하는 식의 이야기였다. 선량한 사람의 탈을 쓰고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악인의 이야기. 줄리언 웰즈가 말한 죄란 바로 그 속임수에 대한 것이었고 그 속임수가 타인의 목숨을 앗아갔을 때 장난으로 돌멩이를 던지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어찌 보면 굉장히 단순한 주제지만 그 안에 내포된 진실은 때론 걷잡을 수 없이 두렵기도 하다. 그리고 동시에 슬픔이 몰려온다. 고작 그런 까닭으로 누군가가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는 것도, 고작 그런 속임수 하나로 줄리언 웰즈가 그리 되었다는 것도. 인생이 어느 쪽으로 갈지 예측할 수 없을 때, 어쩌면 때론 그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이 본인이 상상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향할 때 이는 사투르누스의 기습이 될지도 모르겠다. 태어나자마자 아비의 입속에 삼켜졌던 신들처럼 말이다. 그들은 결국 그들 스스로 아비를 치고 말았지만.

마지막에 줄리언 웰즈의 진실을 목도했을 때 지나치게 허무했다. 허무하여 슬펐다. 왜, 그는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는가. 이런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기와 기만에 대해 초점을 맞출 때부터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있었단 말인가. 차라리 필립에게라도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비극적으로 되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줄리언 웰즈를 동정한다. 그를 가엾게 여겨 슬픔을 느낀다. 그가 적은 책들은 인간의 잔혹사를 담았다. 그가 고발하는 인물들을 보며 나는 김언수 작가님의 <설계자들>을 떠올렸다. 너구리 영감이었나, 누군가 인간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했을 때 그때도 슬픔을 느꼈다. 줄리언이 적어갔던 인물들은 모두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태어났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지독한 영향을 주었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만들어내듯, 줄리언 웰즈의 영혼을 꺼져버리게 했다. 그렇기에 지독한 슬픔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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