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정지향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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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울고 말았을까. 당신의 소설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을 때였어. 한없이 슬픈 기분이 들어 페이지를 넘기다 말고 그대로 울고 말았지. 소리 없는 울음이었어. 가끔 그렇게 울음이 나올 때면 나는 어쩔 수 없는 기분이 되어버려 내가 어딘가로 표류하고 있다고 느꼈지.

아주 어릴 때에는 내가 아주 먼 별에서 왔다고 생각했어. 짧은 생으로의 여행을 하다가 지루해질 즈음엔 다시 내가 왔던 별로 간다고. 그 별의 이름은, 사람들마다 부르는 게 다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그 별의 이름을 감춰뒀었지. 당신의 소설은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어. 어린 시절에 했던 생각조차도. 소설을 통해 어딘가로 가고 있다고 나는 다시금 느꼈어.

당신의 소설에서 만난 요조와 민영, 그리고 '나'는, 표류하고 있었지. 나는 표류하다가 그들을 만난 기분이었어. 그들은 각기 저마다의 소파를 갖고 있었는데,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갖고 있을 소파를 나 혼자만 갖지 못한 건 아닌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어. 눈물이 난 건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디로 갈지 모르는 시간 속에서, 모두 한번쯤은 자신의 소파를 내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 생각은 사람은 한없이 외롭게 하거든. 별이 떨어지는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외롭게 느껴지는 것처럼.

그리움은 그날의 시간에만 있기 때문에 그리워할 수 있는 거야. 언젠가 홍대 거리를 걷다가 교복을 입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소년을 보았어. 소년은 밝은 얼굴로 리듬을 맞추듯 고개를 까닥이며 노래를 불렀지. 그가 부른 노래는 처음 듣는 곡이었지만 들리는 목소리가 거리 곳곳으로 퍼지는 걸 보았어. 한번쯤은 누군가 걸음을 멈춰 그 노래를 들었을 거라 생각해. 누군가는 어느 날 그날 보았던 풍경을 기억하겠지. 그날에만 존재하는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날의 그리움이 생겨난 것이라면 당신의 소설은, 당신이 가진 그리움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된 게 아닌가 생각했어. 당신의 소설은 당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간직해온 그리움이 담긴 이야기라고 말이야. 요조와 민영이었을 누군가를, 당신이 소설에서 말한 당신이란 존재를.

어떤 기억은 생각만 해도 곧장 풍경과 함께 떠오르기도 하지. 어떤 기억은 아주 오래도록 고민해야 떠오르기도 해. 당신이 남긴 소설은, '나'가 부끄럼 없이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게 될 때에도 요조를 떠올린단 말처럼, 소파만 봐도 떠올릴 것 같아. 나는 거리를 지나가면서 지나치는 가구점에 진열된 소파에서 민영과 요조와 '나'가 나눈 대화를 떠올릴 거야. 앞으로 자신들이 살아갈 공간에서, 하나씩 소파를 살 것이란 말들.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을 어두운 밤거리에서도 그들이 서로의 발걸음을 새기며 걸어갔던 것처럼 나도 그러리란 것을. 붉게 그어져 가는 지평선 너머에서 사라져가고 있을 여명의 빛깔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했던 시간들을 아로새길 거야.

당신은 '그날의 사랑은 그날에만 있다'고 했지. 나는 그 말이 당신이 쓴 소설 그대로라는 걸 알았어. 그날 할 수 있는 사랑처럼 그날 살 수 있는 삶이 있다고 말이야. 어정쩡하게 흘러가던 시간들은 사실 그대로의 시간이었어. 민영이 입양아로서 여기저기 여행을 하고 여행을 하다가 '나'를 만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을 거야. 어떤 시간과 어떤 시간은 만날 운명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아.

요조가 살아온 시간들은 그가 새긴 발자국이야. 민영이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민영의 발자국이지. 그들 모두 자신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나는? 나를 돌아보게 한 글이었어. 내 스무 살은 어땠는지, 아주 오래 생각했던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민영을 떠올릴 거야. 민영이 뿌리를 내렸다가 거두고 사라졌던 여행의 흔적과도 같은 삶을 그리워하면서 앞을 바라볼 거야. 나는 당신의 소설에서 보인 성장통이 아직도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날의 시간에 머무는 그리움이 점점 커지듯, 나의 시간도 점점 커져서 언젠가 민영과 요조처럼 어떤 그리움을 남기겠지. 당신이 남긴 소설처럼 말이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은 무한정으로 펼쳐져 있어 때론 부딪치기도 하고 때론 돌아가기도 하지만 결국 그날에 머물러 있다는 걸, 나는 이제 알게 된 것 같아. 그러니까 이제 괜찮아.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리움이 머무는 곳에서 한 발씩 멀어지면 새로운 그리움을 쌓아갈 테야. 그러니까 그날까지 당신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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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가죽소파 표류기>의 화자의 방식을 모방하여 적은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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