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도시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는 한때 살았던 충청북도 영동에 대해 말해보자면, 그곳은 난계 박연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중학교 다닐 때 난계국악박물관으로 소풍을 자주 갔다. 그리 크진 않지만 학교에서 가깝단 이유로 걸어다녔다. 매해 박연을 기리는 축제를 한다. 난계국악축제. 감이 유명한 곳으로 감아가씨를 선발하기도 했지만 <포도밭 그 사나이>란 드라마를 황간에서 촬영한 후로, 포도 축제로 바뀌었다. 영동은, 현대사적으로 볼 때 가슴 아픈 곳이기도 하다.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 일었던 사건은, 아직도 그 흔적이 있다. 황간면으로 봉사활동을 갈 때 그 다리를 보았다. 총알이 박힌 자국이 남아 있다고 황간면에 살던 친구가 일러준 적이 있다. 이현수 작가님의 <나흘>에서도 노근리 사건을 다루고 있다. 어떤 도시건 그 역사는 길고도 어떤 상흔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용산은 호남선이 출발하는 곳이다. 작년이었나, 재작년이었나 노트북이 고장나 AS를 받겠다고 용산을 간 적이 있다. 용산전자상가가 유명하다고도 하고 AS 센터가 용산전자상가에 있다고도 하여, 구경도 할겸 방문했다. 용산역이 종착역이라 기차를 타고 그곳까지 간 후, 내렸는데 생각보다 큰 역의 모습에 놀랐다. 아니, 왜 의외의 모습이었다고 놀란 건지 모르겠다. 용산이 주는 이미지는 그렇게 부정적이었나 싶기도 하고. 서울역보단 작을 것이라 생각했던 탓일까. 극장도 있고 백화점도 바로 옆에 있는 것을 보고 솔직히 놀랐다.

하지만 번쩍번쩍한 용산역의 모습과 달리 전자상가로 향했을 때의 모습은 그다지 아름답단 느낌은 없었다. 전자상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건물과 건물을 잇는 통로는 참신했다. 햇빛이 강렬해 그늘로 다닐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전자상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자제품을 파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바로 거리 맞은편의 건물은 낡고 허름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는 곳처럼 느껴졌다, 용산이란 곳은. 어떤 건물은 화려하고 번쩍하지만 어떤 건물은 다 쓰러져갈 것만 같이 위태하다. 그런 이질감이 용산에 존재했다. 어찌저찌 AS센터까지 갔을 때도, 건물 근처에 롯데시네마의 건물이 있었다. 롯데시네마 바로 맞은편에는 글자의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에만 몰락의 시간이 존재했다. 그런 이질감은 용산을 으스스하게 만들었다.

내가 아는 용산은 이게 전부다. 의외의 모습을 가지면서 어쩐지 모르게 으스스한 분위기를 가진, 그런 공간. 그렇기에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가 출간되었을 때, 이 책이 용산을 다룬다는 것을 알았을 때 호기심이 생긴 것은 당연했다. 용산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어마어마한 역사를 지녔고 다채롭고, 때론 어딘지 모르게 스산한 구석이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야 용산에 대해 이제 제대로 좀 알게 된 기분이었다. 어떤 곳은 낭만적이지만 어떤 곳은 낭만을 잃어갔다. 그런 정반대적인 성향을 지닌 곳이 용산이라고 생각했다. 한남동과 이태원의 분위기가 다른 것처럼.


용산.
모든 시간이 휘몰아치는 곳.
풍경이 지나가는 곳.
빛이 반짝이다 사라지는 곳.
그리움이 쌓여가는 곳.
낯선 시선이 느껴지는 곳.
역사와 역사가 만나는 곳.
서로 다른 세상이 맞물려 흘러가는 곳.
너와 나의 발걸음이 마주치다 스쳐가는 곳.
네가 사라지는 곳.
내가 사라지는 곳.

용산이란 이름의 시詩는 언제나 그곳에 존재했다. 어느 누군가가 적었기 때문에 시가 되었던 게 아니다. 용산은 처음부터 많은 시간과 그리움과 사람들의 발걸음이 스쳐지나갔다. 일제 감정기 때 일본군인이, 미군 부대가 있었을 때엔 미군이, 이태원의 외국인 골목에서 오고 간 수많은 이국적인 풍경들. 누군가 그 풍경을 오래도록 지켜볼 때 용산은 시로 태어나 시로 남았다.

이태원의 역사가 처음부터 이국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태원의 역사가 아직도 상흔처럼 남아있다. 비구니에게 잔인한 상처를 남겼던 곳이 외국인들이 오고 가는 장소가 되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용산의 여러 장소는 근현대사의 상처가 산재해 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는 곳이니 그 빠른 발걸음 속에서 용산의 깊은 상처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용산이란 도시를 알기에 충분하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일독하길 권한다. 단순히 '도시'라는 테마를 뛰어넘어 오랜 시간의 흔적을 찾아가는 문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가슴에 어떤 감정을 남길 수 있는 책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은 오래도록 용산을 잊지 못할 것이다. 용산에 들를 적에 책의 구절을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파문을 일으키는 물은 시선에 오래 머문다. 용산이란 도시의 낯선 감각은 현재 존재하는 시간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 파문은 고요하고 잔잔하지만 꽤 멀리 퍼졌다. 도시 아래 깊숙이 깔린 과거의 시간은 한번쯤은 뒤돌아보게 한다. 그게 역사의 현장이 될 때, 당신은 그 도시에 붙박힌 듯 존재하게 될 것이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아도, 당신의 마음은 용산에 머무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