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의류 수거함 - 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0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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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마법의 나라로 간 게 아니라, 밤에 괴도로 변신하는 이야기는 꽤나 구미를 당겼다.
도로시가 터는 것은 의류수거함. 사람들이 의류수거함에 놓고 간 옷은 의외로 상태가 좋았고 꽤나 쏠쏠한 수입 원천이 되었다. 외고 입시에 실패하여 호주로 가는 것이 꿈인 그녀는 열심히 돈을 모으기로 한다. 그녀의 지인에는 중고 옷을 사고 파는 마녀 님이 있는데 그녀는 의류수거함에서 훔친 옷을 마녀에게 판다. 그다지 수긍이 가는 분배는 아니지만 그녀는 의류수거함을 털면서 호주로 가는 꿈을 부푼다.

한창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할 고등학생 소녀가 밤마다 의류수거함을 터는 모습을 상상하기라 쉽지 않다. 입시에 대한 좌절을 도둑질로 풀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걸어가는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쳐보면, 도로시가 '의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는 의류수거함을 털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노숙자, 북한에서 온 카스 삼촌, 마녀가 자주 가는 식당 주인 마마, 그리고, 그녀의 인생에서 어떤 확신을 안겨주었던 195. 거리에서 만난 인연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폐지를 줍고 다니는 할머니에게 선의를 베풀게 한다.

상냥한 마음을 안겨주는 글이란 무엇일까. <충사>나, <나츠메 우인장>을 보면서 늘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만화들은 상냥함을 기억하게 한다고. <오즈의 의류수거함>이 그러했다. 각각의 사연을 펼치면 그다지 행복하지도 않지만, 그런 기억을 토대로 모두 저마다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숙자 씨는 알코올 중독자인데, 술을 그만 마시라는 도로시의 말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봐, 무언가에 중독되지 않고서 어떻게 이 누더기 같은 세상을 버티겠어. 때로는 중독도 살아가는 힘이 된다구."(58p)

교양과 지식을 겸비한 숙자 씨의 삶은, 어딘지 모르게 피곤함이 묻어 있다. 아내와 함께 수의사가 되어 좋아하는 동물과 함께 살아갈 삶을 꿈꾸지만, 구제역으로 인해 살처분을 해야 했던 과거는 바로 현재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최근에 조류독감으로 인해 살처분을 당한 오리와 닮을 떠올렸다. 이 글을 보면서, 내가 살처분을 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심정을 인터뷰한 기사를 떠올렸다. 그것은 사랑하는 것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좋아하던 동물과 이별을 하는 것이었다. 동물에 대한 강한 애정이 있기에 숙자 씨의 아내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이겠지. 이별을 감당할 수 없어 숙자 씨는 거리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삶을 택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는 바야. 아니, 이미 뇌가 없는지도 모르지. 하루하루 생각 없이 보내니까. 그런데 재밌는 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는 거야. 나란 인간은 생각이란 걸 하게 되면 추락하게 되거든."(62p)

도로시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상처를 지니고 있다. 주인공인 도로시조차 그렇다. 입시의 좌절로 인한 자살충동. 그러나 자살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던 그녀. 그러나 같은 상처를 가져도 밝고 희망찬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카스 삼촌이 그러했다. <자유로운 삶>에서 공산주의의 삶을 살짝 엿보았지만 <오즈의 의류 수거함>에서 다시 접한 북한의 실상은 동정을 뛰어넘어 분노마저 일었다. 계급이 아직 존재하는 세상, 맛있는 것도 먹지 못하고 굶어야만 했던 삶. 부잣집 친구 집에서 배 부르게 먹고 와서 그걸 모두 토해내 가족을 먹였다던 카스 삼촌. 그러나 남한도 그다지 행복한 세상은 아니었다. 돈이 없으면 멸시를 받아야 하는 일종의 계급 사회였다. 그렇지만 카스 삼촌은 자신이 먹고 싶은 라면이나 맥주를 맘껏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내 자신을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기계라고 생각하면 됩네다. 기계는 아무것ㄷ 느끼지 못하잖습네까? 분노도, 슬픔도, 고통도."(88p)

한국의 현실을 무서우리만치 꼬집는 글이었다. 어딜 가도 계급은 존재한다. 학교에 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런 무서운 현실에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바동거린다. 모든 것이 경쟁이고 약탈이다. 그런 세상에서 이 글은, 어찌 보면 작은 싹과 같은 글일지도 모르겠다. 상냥함을 틔우는 싹. 작지만 미미하지만 언제고 쑥쑥 자라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 그런 상냥함 같은 글. 그렇기에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서로의 말을 들어주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그리움마저 든다.

도로시가 의류수거함을 털다가 찾은 어느 자살예고자의 모습. 그것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누군가의 목숨을 중히 여기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죽겠다고 하는데, 그것을 모르는 척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때에 따라 달라지겠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도로시는 그를 찾아나섰다. 195를.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마음에 자리잡은 공허함으로 약물중독이 되어버린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도로시가 만나자고 하자 수수께끼를 냈다. 하얀 건물이 있고, 사람이 평생 두 번 드나드는 역. 그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도로시는 195에게 3달만 함께 의류수거함을 털자고 제안한다. 그는 흔쾌히 수락하고,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레 의류수거함 멤버로 합류하게 된다. 잘생기고 공부도 잘한 그가 무엇이 부족하여 자살을 하려고 했는지,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행복은 누군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는 것, 스스로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내 행복을 결정짓지 못한다. 의류수거함을 털면서 도로시는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냈고 스스로 행복함을 만들어냈다. 그 반짝거리는 것은 밤하늘의 별처럼 또렷하여 어떤 어둠에도 물들여지지 않는 확신과도 같았다.

195의 이야기로 빠져들면서 마마의 사연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195가 살기를 바랐고 그 진심이 그에게 전해졌다. 195는, 자존심만 강했지 자존감이 부족했었다고 조심스레 고백을 했다.

"굳이 설명하자면 자존감은 포용이란 토양에서 자라나고 자존심은 경쟁이란 토양에서 자라나지. 자존감이 이타심이란 열매를 맺는 반면, 자존심은 이기심이란 열매를 맺어."

사람에게는 언젠가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것을 버티고 나아가느냐, 아니면 주저앉아 모든 것을 포기하냐는 본인의 몫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가 내밀어준 손이 때로는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195에겐 도로시가, 함께 의류수거함을 털면서 만난 사람들이 그래주지 않았을까. 혹은 도로시도, 마마도, 숙자 씨도, 마녀도, 카스 삼촌도 알게 모르게 지탱을 받지 않았을까.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이 선한 마음으로 폐지 할머니의 집을 고쳐주고 보일러를 놓아준 것도 이해가 되었다. 도움을 받았기에 도움을 주는 것, 그들은 그렇게 정했다. 비록 그들이 고급 주택에 있는 의류 수거함을 턴 건 옳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이 글은 크게 보면, 도로시의 여행과도 같다. 의류수거함을 털면서 만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 그들이 갖고 있는 상처. 그러나 작게 보면 어느 한 목숨이 구원받은 이야기였다. '자살'이라는 무서운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만의 길을 가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생명을 중히 여기고 그 생명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상냥함이란, 어쩌면 아주 작고 미미하지만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요괴에게 상냥한 나츠메가 요괴의 사랑을 받듯, 벌레에게 배려를 한 깅코가 벌레들의 배려를 받듯. 그들이 한 행동은 어찌 보면 사소할 수도 있지만 사소한 것 하나로 인해 많은 것이 변하기도 한다. 기적이란 작은 사소한 행동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게 아닐는지.

도로시가 밤길을 나서면서 만난 사람들, 그간 놓쳤던 풍경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도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내가 놓친 건 없는지,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상냥해질 수 있는지를 돌아보며 이 글을 쓴 작가에게 무한한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청소년 문학이란, "전문 작가가 청소년을 독자대상으로 하여 청소년들의 삶의 문제를 직간접으로 다룬 문학작품"(315p)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이 글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청소년기를 거친 어른들도 읽어야 하는 글이 되지 않을까. 상냥함을 가진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필요하니까. 최근에 울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이 점점 분노를 제어하지 못한단 느낌을 받았다. 누구든 삶에 극단적으로 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조금 상냥해지자, 조금 나를 배려하자. 조금 남을 사랑하자.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문학엔 청소년 대상이든 청소년 대상이든 그런 경계는 필요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오즈의 의류 수거함>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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