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분쟁의 이해 - 이론과 역사
조지프 나이 지음, 양준희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바처럼 이 책은 대학 학부생들로 하여금 국제정치학의 가장 기본이론 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실주의 시각"의 기초를 다지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저자가 '소프트 파워'로 유명한 조셉 나이라고 하여, 이 책이 자유주의나, 제도주의 시각에 무게를 둔 것으로 지레 짐작하면 안된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세력 균형시기, 1, 2차 세계 대전 그리고 냉전의 시작과 종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전쟁(또는 분쟁) 사례를 현실주의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이다(현실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분석의 대상으로서, '분쟁'이라는 문제는 피해갈 수가 없다).   


Joseph Nye Jr.   

출처: 하버드 대학

이와 더불어 저자는 국제정치학의 기본용어들을 충실히 소개하는데 촛점을 맞추고 있다. 예를들면,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 등의 주요 이론은 물론이고, 세력균형, 상호의존, 도덕,권력, 개입(intervention) 등 국제 정치학에서 등장하는 중요 용어들을 엄격하면서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학부생들은 여기에 나온 개념 정의만 제대로 이해하고 시험 답안지에 쓸수 있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만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을 들라면 분석가가 국제문제를 다룰 때, 분석의 수준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강조하면서, 더 나아가 저자가 이를 손수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학생들이 주어진 국제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하는 분석 기술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전쟁의 원인'을 분석의 대상으로 봤을 때,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분석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신현실주의 정치학자인 케네츠 왈츠가 이용하고 있는 3단계 이미지 - 개인 차원, 국가차원, 체제 차원-의 이용이고, 둘째는 가상현실(counterfactuals) 개념의 이용이다.   

예를들면, 제1차 세계의 원인을 저자는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사망, 카이저 등 개인의 성향(개인 이미지) 민족주의의 발호, 국내 계급갈등 등 국내 문제 (국내적 이미지), 독일 힘의 증가에 따른 국제적 세력균형의 파괴(체제적 이미지) 등 3가지 차원에서 분석하고 있다.  

이어서, 저자는 이러한 이미지 중 하나라도 달라졌다면(가상현실), 역사는 과연 어떻게 변했을 것인가(곧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인가)라는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가상현실'을 우리와는 동떨어진 무의미한 것으로 돌려 버려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만약 ...했더라면(또는 하지 않았더라면...)"과 같은 가상현실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사회과학도들에게는 엄밀한 추론에 의한 가상현실은 자연과학자들의 '실험'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런 가상 현실은 어떤 문제(이 책에서는 전쟁)가 발생했을 경우, 어떤 원인이 더 중요했는지 또는 덜 중요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책을 구매하고자 하는 독자들이 몇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이 책은 국제정치학의 모든 것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세계정치론(존 베일리스)'이나, '현대 국제정치학(하영선, 이상우)'같이 '넓고 얇게 읽는' 고시용 서적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즉, 기본서를 찾는 고시생들에게는 적합하지가 않다.   

둘째, 책의 앞부분과 뒷부분(6장부터 끝까지)의 서술 방식이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전반부는 앞서 말한대로 각 전쟁의 원인을 '국제정치 이론'과 '3가지 이미지', 그리고 '가상현실'로 분석하는방식을 취하고 있다면, 후반부는 주로 국제정치 용어 소개에 집중하고 있다(최근의 국제정치 상황은 분석에 오류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분석보다는 소개에 집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전반부를 흥미롭게 읽은 독자는 후반부에 가서는 다소 맥이 빠질지도 모른다.  

셋째, 일부 우리나라 독자들 중에는 이 책이 미국의 시각(또는 미국 패권주의)에서 본 국제정치학 이라고하여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세 가지 면에서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 국제정치학은 전세계를 아울러 개관하는 "세계사" 나 "세계지리"가 아니다. 국제정치학의 본질이 한 나라의 '외교정책'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특히 강대국의 외교 정책이 당대의 국제정치를 규정짓는다는 점을 외면할 수가 없다. 고대 그리스라면,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될 것이고, 제1차 세계대전 때라면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열강이 될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라면, 당연히 미국과 소련이 중심이 될 것이고, 탈냉전 시대라면 미국의 외교정책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      

둘째, 조셉 나이는 이 책을 미국의 대학생들(하버드)을 위해 집필하였다. 게다가 그는 서문에서 "워싱턴에서  외교 정책 담당자로서 근무하며 겪은 경험이 이 책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외교정책 결정을 담당했던 경험이 있는 학자가 미국 대학생들을 위해 쓴 교과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을 다시 한글로 번역하여 우리가 읽는 것일 뿐이다. 미국 국제정치학자가 미국의 외교정책(이론)을 중심으로 서술한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그것을 미국 중심주의라고 비난할 이유가 없다. 바꿔말하자면, 우리나라 학자들이 우리 문제를 중심에 두고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분석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우리학자들의 글이 미국 대학에서는 별로 사용되지 않는 점이겠다).  

셋째, 세계체제론이나, 비판이론 등의 시각에서 볼 때 이책은 다분히 서구(미국) 중심주의적이고 패권주의로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럴 것이 이 책의 저술 의도는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대로 전통적인 '현실주의'시각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자유주의나 구성주의 소개도 일부 나오고 있으나, 비판자들을 잠재울 만큼 강력하게 서술되어 있지는 않다). 만약, 비판이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예 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비판이론을 소개하기 위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이든 평가의 기준은, 그것이 일관된 주제를 담고 있느냐, 독창적인가, 자료는 풍부한가,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서술하였는가, 논리적 오류는 없느냐, 등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때문에, 바둑 책을 사 놓고 왜 장기 두는 법은 없느냐고 화를 내서는 안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사소한 것이기는 하나, 이 책에도 번역이 다소 어색한 부분이 몇군데 눈에 띈다는 점이다. 예를들면, '역사는 그 행로에 종속된다(122쪽)' 라는 표현은 '사건의 불가피성'을 뜻하는 '경로 의존'에서 나온 말인데, 역주로 처리하여 그 의미를 분명히 해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별을 뺄만큼 큰 오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을 대상을 꼬집어 말하라면, 대학 신입생, 국제정치 이론에 관심있는 일반인 등이 될 것이다. 처음 책을접한 후, 서술의 형태가 독자 친화적이고 쉬운 문체여서 금방 읽힐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담고 있는 이론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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