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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 -하 - 경제학고전선 애덤 스미스, 개역판
아담 스미스 지음, 김수행 옮김 / 비봉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나는 국부론 영문 원서를 보지 않았고, 김수행 선생의 수업을 들은 점이 없다는 점을 먼저 밝혀 둔다. 이것을 밝히는 것은, 이 책의 번역이 잘 되었는지 -이전의 동아출판사 본이나 다른 분의 번역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잘 모른다는 것과, 김수행 선생이 어떤 목적에서 이 책을 번역했는지도 역시 모른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번역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겠다. 다만 빈번하게 등장하는 "번역자의 주석"에 대해서만 말하겠다.

(김수행 선생의 번역본이 원전으로 삼은 것 중 하나인 Edwin Cannan의 국부론. 아마존에서 17.79달러-2008.07.18일 현재-에 구할 수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출판사에서 겉 표지에 붙인 광고문구인데, 이렇게 되어있다.
....."불후의 경제학 명저! 사회과학 최고의 고전!!...."
한마디로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 재미있는 것은 김수행 선생의 국부론 번역본은 자본론을 읽기 위한 전초라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원서에는 없는 역자 주석에서 잘 나타난다.
국부론 (상) 제1편 1-11장(총 329쪽) 중에는 역자 주석이 모두 38번 나오는데, 주로 이런 식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론 제3권 제45장을 참조하라...."(190쪽)
뉘앙스를 말하자면, "마르크스는 스미스가 잘못 이해한 모모한 것들을 지적했다" 다. 그런데 이렇게 마르크스 또는 자본론을 언급한 주석이 20번이나 된다.
역주 38개 중에 20번 마르크스가 언급된 것이 뭐 그리 많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언급되지 않는 다른 역주의 경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주석인 경우가 많다.
예를들면,
"(이 책의) 제4편 제5장(장려금)을 참조하라"(252쪽)
과 같은 것이 그렇다.
따라서 20개의 역자 주석이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반박한 내용에 집중하고 있다면 나머지 18개의 주석은 저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그러나 본질 적이지는 않은 - 친절한 고려에 그치고 있다. 마르크스에 관련된 주석은 비교적 충실한 반면, 나머지는 없어도 될 역자 주석이다.
김수행 선생은 마르크스 전공자 답게 이 책을, 자본론을 읽기 전에 먼저 읽어야 할 사전 작업으로 여기고 있는 듯 하다.(자본론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국부론을 먼저 읽어 오지 않은 것에 '분노'하시어 이 책을 번역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사실, "자본론은 국부론과 함께 읽어라"라는 말이 있듯이 국부론은 자본론을 보려는 이에게는 선수 과목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역자의 주석은 자본론과 국부론을 연계해서 읽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번역자가 굳이 "국부론" 번역서에 자본론을 사사건건 끌어들여 역자 주로 처리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는 마치 군데군데 잘못된 책을 읽고 있는데, (저자도 아닌) 역자가 친절하게 Erratum를 함께 제공해 준 느낌이다.(출판사는 이 책을 불후의 경제학 명저이자 사회과학의 최고 고전이라고 선전하지 않는가?) 자본론 입장에서 본 국부론 비판은 굳이 번역서 역자 주가 아니더라도 논문이나 강의를 통해 보다 충실하게 다룰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물론, 역자의 이런 편집 의도는 잘했다 못했다를 따질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김수행 선생을 다소라도 안다면, "김수행 선생의 국부론은 마르크스 시각에서 본 자본론"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각오할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번역자가 원서에 어떤 가치를 불어 넣고, 해석하여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의문은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김수행 선생의 제자가 아니라면 이런 역자 주는 불편하다) 이 책의 경우, 자칫하면 국부론을 위한 역자 주가 아니라 자본론을 읽기 위한 역자 주가 될 수도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달리말하자면, 김수행 선생의 번역본은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스미스의 견해를 쫓아가며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를 빼앗아 버린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이런 이유로 평점에서 별을 하나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