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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 김솔 짧은 소설
김솔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평점 :
김솔 작가의 글은 처음 접해보기 때문에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귀여운 책표지를 보고 예상했던 느낌과 책 제목이 주는 거리감은 읽기 전부터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짧은 40편의 소설을 담고 있는 목차를 먼저 읽어 내려갔다. 어느 하나 낯설지 않은 단어들의 나열에 가벼운 마음으로 첫 소설을 읽어내려갔고, 생각과는 다르게 시작되는 글의 분위기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까지 들었다. 사실 호흡이 짧은 단편소설보다는 몰입도가 있는 장편소설을 더 선호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김솔 작가의 글은 가볍지 않아서 일까? 그의 세계관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져서 일까? 몽상적인 문장들에 점점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짧은 글이지만 쉽게 넘어가지 않았던 페이지만큼 긴 호흡으로 읽어 내려갔고, 어느 문장 하나 쉬이 넘어가기 어려웠다. 아니 쉽게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특유의 몽상적인 문장들에서 작가의 세계관이 엿보였고, 그 세계관은 쉬이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문장의 밀도가 높은 만큼 역사, 과학, 윤리, 종교, 철학, 신화 등에 해박한 지식들이 탄탄하게 문장들을 채우고 있었다. 보편적인 일상의 이야기들은 나와 닿아 있기도 했고, 너무나 낯선 곳의 이야기로 다가오기도 했다.
영원히 순환하는 시간 속에서 완벽하게 낯선 사람이나 사건은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녀는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일생에 꼭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 12
인간이 죽는 순간엔 제 육신에 숨겨져 있던 시간의 태엽이 풀리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 15
충분히 차이를 짐작하시겠지만, 유품이란 유산을 제외한 부스러기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산 사람들에게 재산이 될 수 없는 것들이 저희에겐 유품이지요. 저희는 유품을 처리합니다. 죽은 자의 몸과 뼈도 유품에 해당합니다. / 101
"꿈의 내용을 현실에 동원하는 자는 운명의 절반밖에 사용할 수 없다." 이미 모든 책들이 책에 대한 책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모든 인간은 모든 인간의 꿈으로 빚어져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 142
책의 제목에 쓰인 것처럼 살아남은,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경험을 남다른 시선과 높이에서 풀어낸 익숙한 소재들이라 더 흥미로웠다. 그리고, 문장에 힘을 불어넣은 작가의 글은 내 상상력과 익숙한 경험적 단어들에 대한 정의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짧은 글이지만 천천히 곱씹지 않으면, 채 소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흩어져 버리기 일 수였고,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으며 예상했던 상황에서 벗어나기도 해서,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가 제목부터 꾹꾹 눌러 읽어보게 만들었다. 한번 읽어선 무엇이라 이 글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하기 어려운 글도 있었다. 1부와 2부로 나눠진 글들은 어느 하나 예상하기 불가능한 내용들이었다. 제목에 쓰인 단어들은 분명히 내 일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나열이었는데, 그 모든 단어들이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저렇게 낯선 단어로 때론 그 의미를 숨기고 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농담들은 잔잔한 일상에 던져지는 작은 돌멩이 같았다. 무시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시선을 빼앗기는 순간부터는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고, 무슨 의미인지 머릿속을 맴돌게 만든다. 그 파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쏟아낸 작가는 말한다. 이제는 당신의 생각을 들려주라고.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감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