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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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네온사인과 커다란 간판들은 아름다운 건물의 외벽까지도 점령해버렸다.


이따금 일명 시내라고 불리는 번잡한 거리를 나가면, 커다란 입간판들에 가려 그동네의 운치도 골목의 분위기도 다가려진채 흉악한 자기과시의 결과물들을 보는 듯 했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파리에서 유학 생활 중에 잠시 들어 올 때면 유독 그 커다란 간판들이 도시의 전경을 해치는 듯 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밤거리는 은은한 불빛이 아닌 휘황찬란한 불빛들과 화려한 번쩍임의 강요들에 오히려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게 했다. 귀국 후 9년이 흐른 지금, 아직도 번쩍이는 불빛은 불편하지만 이 커다란 간판들을 보며 이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것이 마치 한구그이 정서인양 받아들인 탓이다.

그러나 임우진 건축가님의 보이지 않는 도시에 나오는 설명에 설득당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견했다. 그동안 나의 찌뿌린 눈은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뚜벅이로 그 거리를 누비었던 내가 결단코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 었다. 여행가면 굳이 커다란 간판없이도 찾아가게 하는 여러 상점들과 달리 왜 굳이 저렇게 커다란 이름표들을 달고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거닐었던 외국의 거리는 차가 지날 수 없던 좁은 거리로 걸어서 찬찬히 살펴 볼 여유로운 길이었다. 나의 편협한 시선들을 깨어주고, 역사책에서도 알 수 없던 건축사의 눈으로 바라본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외국에서 동양인으로 살아가면서 은연중 당하는 차별에 나도 모르게 자격지심을 갖고 있던 부분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도시법의 접근 차이에 관한 부분은 나의 오만한 생각을 깨부쉈다. 단순한 건물이야기가 아닌,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구석구석 배어있었다. 서양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신뢰할 수 없음을 기본 전제로 해서 도시 시스템이 정교하게 발달했다고 한다. 반면 한국의 도시 시스템은 인간의 양심에 대한 신뢰가 깔려있다. 그러나 요즘은 신뢰할 수 없는 양심들이 많아 곳곳에 CCTV가 넘쳐나게 되었다. 주정차 단속, 인도로 차가 진입하는 일등은 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이차선 도로임에도 가게 앞에 차를 주차해놓은 사람들로 운전하다 중앙선을 넘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일은 운전자에게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는 듯 했다.

그러다 한국의 도로와 파리의 도로를 비교해 놓은 사진을 보고 깜짝놀랬다. 시스템의 차이라는 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기본적인 길에 대한 개념과 광장의 개념이 다른 탓도 있지만, 파리의 길에는 주정차를 감시할 카메라가 필요하지 않았다. 좁은 도로에 인도 끝에는 커다란 쇠 말뚝들이 박혀 있어서 애초에 시도조차 할 수 없게 해두었다. 곧게 뻗은 도로에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속도를 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애초에 그런 충동이 들만한 시야가 트이고 쭉 뻗은 도로의 경우 모든 차선을 지워버렸다. 중앙선도 일반 차선도. 나는 그 거리를 지날 때마다 프랑스인들의 게으름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심리적 불안을 조성해서 과속을 막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고 했다.

지나온 역사와 기본적인 가치와 세계관이 다른 동양과 서양의 도시의 공간의 비교를 통해 그동안 의문을 갖고 있던 것들이 풀리기도 했다.


한국에서 30년, 파리에서 20년을 생활한 저자의 10가지 질문을 통해서 나도 삶에서 익숙해진 방, 길, 장례식, 공간, 거리 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여행이 주는 선물이 낯설게 하는 것에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매일 걷던 거리의 간판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게 여행의 기쁨처럼 다가온 신선한 책이었다.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사실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면서 길가에 있는 건물이 어떤 곳인지 인지하는 것은 겨우 몇 초 정도이고, 그것도 비슷비슷한 조건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자신의 가게를 알지 못하는 이방인 뜨내기가 자기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상점에 들어오게 하려면, 무엇을 파는 곳인지 그리고 그것이 왜 필요한지 몇 초만에 설득해야 하는 그야말로 극한 상황인 셈이다.
- P181

오늘 밤에도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지만, 저 수많은 업소를 10년 후에도 기억할 시민은 없다. 10년 전 이곳을 채웠던 간판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도시는 오늘만 살도록 설정되었다. 이렇게 시민은 도시의 기억을 잃어버리게 됐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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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하이웨이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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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샌프란시스코 링컨 공원에 있는 리번 오브 아너 미술관이야.

매년 7월 4일에 전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불꽃놀이가 여기서 펼쳐진단다.

p44. 8년 전 엄마의 엽서

매일 매일이 그날인 그곳을 벗어나 매일매일이 특별한 날을 위해 각자의 결함과 결핍의 소년들이 함께 모험을 떠났다.

7/4일까지 샌프란시스코에 가기 위해 미국을 횡단하는 최단경로 링컨 하이웨이를 타기로 했다. 삶의 여정이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그것이 상황 탓이든 주변의 사람 때문이든 각각의 사연 까닭에 그들의 여행은 수정되었다. 함께 떠났으나 각기다른 목적을 품고 있던 그들은 에밋의 자동차 스튜드베이커에 올랐다. 10일간의 여정이 서로 다른 시점에서 이야기된다. 한 사건에 대한 당사자와 관찰자, 주변인의 입장을 모두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다른 이의 행동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전 이렇듯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들의 여행동지들은 마냥 꿈에 부푼 순수한 소년들이 아니다.

과실치사로 소년원에서 형을 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르게 퇴소한 에밋, 어린 동생을 책임지려는 성실함과 도덕관념도 있으나 그에게는 분노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아킬레우스의 결점을 지니고 있었다. 분노의 댓가는 그를 평범한 삶에서 밀어냈다. 그 아무리 성실치 못하고 악한 녀석이 죽었다고 해도 그로 인해서 한 생명이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는 결국 아버지의 집에 머물지 못하고 동생 빌리와 함께 새로운 삶을 찾아나서게 된다.

빌리는 조숙하고, 영특한 꿈꾸는 소년이다. 형 에밋이 하는 일들을 이해하지만 그의 분노에 대해서는 열을 세어야 한다고 절제 시킬 만큼 성숙하다. 적절한 판단과 추리력으로 금고의 번호를 예측하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엄마의 결핍이 있다. 8년이나 연락없는 엄마의 남겨진 9장의 엽서를 보고 길을 떠날 만큼 헤맑기도 하고 무모하기도 하다.

더치스, 그의 행실에 관해서는 아무리 그의 시점으로 적혀 있어도 공감이 되지 않았다. 이해와 변명을 듣는다고 해도 그의 행위는 늘 주변에 피해를 입혔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이들에게. 그럼에도 스스로 합리화하고 사과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

울리, 집으로 가고 싶었던 소년. 결국 집으로 가서 잠들었다. 빌리와 함께 평면도를 그리며 집을 꿈꾸는 듯 했으나 그의 마지막 편지로 인해 그는 결국 그곳에서 잠들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샐리, 소년들의 여정의 마지막에 참여하게 될 그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을 기꺼이 하는 그녀는 자신의 설탕절임을 에밋과 빌리가 먹는것이 좋았다. 그것이 연정이든 다른 무엇이든. 그녀는 다정하고 따스했다.

세상은 때로 차갑고, 그다지 관대하지 않다. 에밋의 과실치사는 그의 폭행이 발단이 되어 지미 스나이더가 뒷걸음질을 치며 굵은 케이블에 걸려 천막 말뚝을 바치고 있던 콘크리트 블럭에 머리를 부딪힌 사건이었다. 그는 그 사건에 대해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고작 18세 소년이 소년원에서 댓가를 치르고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은 피해자 가족의 폭행 위협과 실제 폭행을 견디는 일 뿐이었다. 심지어 에밋의 폭행의 원인은 지미 스나이더가 에밋의 아버지를 욕보인데 있었다. 물론 그의 폭행과 그의 과실로 인해 어린 생명이 죽은 것을 두둔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댓가를 치르고 나왔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그에게 도움을 주는 어른들의 조언은 모두 이곳을 떠나라는 현실적인 조언 뿐이었다. 세찬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에밋과 그런 그를 이해하는 동생 빌리, 엉뚱하게도 그들 형제를 찾아온 더치스와 울리의 여정은 모험담이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 마디로 그게 인생이지. 안 그래? 가보고 싶은 곳은 이곳인데 가야만 하는 곳은 저곳인 상황말이야.

p223

관대하지 않은 세상에서 만난 다정한 샐리의 존재는 그래서 반가웠다.

왜냐면 친절은 필요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니까

퍽퍽한 삶의 달콤한 설탕절임의 존재가 그랬고, 더치스가 떠난 후 에밋과 빌리를 위해 차를 타고 달려와주는 발걸음이 좋았다.

그리고 그것은 불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걸 만든다. 친절이란 다른 사람에게 이롭지만 의무적이지는 않은 불필요한 행위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p156. 샐리

811p 그 이후의 이야기, 진짜 모험의 시작이 궁금했다. 자신들의 몫을 가지고 7월 4일까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과정을 겪을 것인가. 빌리는 자신이 모험을 하고 있다는 것에 확신했으나 그 중간을 알지 못해 아무것도 기록할 수 없었다. 아마도 이 이야기가 끝나는 그곳, 1500마일을 잘못된 방향으로 왔기 때문에 이제 곧 3000마일을 더 여행해야 하는 시발점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다시 적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1500마일을 잘못된 방향으로 왔기 때문에 이제 곧 3000마일을 더 여행해야 하는 시발점에 서게 될 에밋은, 자기 안에 있는 히믕ㄴ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이며, 자기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고, 자기는 이제 막 그것을 스스로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을 믿었다.

p803


<우아한 연인>과 <모스크바의 신사>의 작가 에이모 토울스의 세 번째 장편 소설이다. 이 소설은 전작과는 많이 다르다. 작가가 자신의 출판물을 자기복제하는 일을 기피하는 것으로 유명해서 창작에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들을 다시 설정한다고 한다. 이 소설은 링컨 하이웨이를 여행하며 생긴 이야기를 담은 책은 아니다. 되려 뉴욕시까지 가는 길, 그리고 뉴욕에서의 일들 여행의 계획에서 벗어난 과정이 담겼다. 8명의 서술자가 나와 다중시점을 이용한다. 소년이 길 위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을 담았으나 울리와 더치스는 끝내 불운한 결핍의 소년들로 남았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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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위로 - 글 쓰는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곽아람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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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말하는 끼 없이 오롯이 공부로 예술을 꾸역꾸역 해내고 있는 내게 위로가 되어 주는 책을 발견했다. 성장이라는 단어에는 열광하면서도 유독 공부라는 단어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이제 막 24개월이 된 아들을 향해 시부모님이 대견하다 등을 토닥이며 "우리 아가 공부하니?"라는 말에는 기겁을 했다. 마치 그 말 한마디에 아들이 즐겁게 보면 그림

'

'? 공부의 쓸모 이외에도 굳이 교양을 배워서 어디다 써먹냐 묻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한대로 결정하고 살아간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100% 자신의 의견이라는 것이 있을까. 결국은 내 안에 쌓인 여러 지식들을 바탕으로 판단의 지표를 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양이란 조금 넉넉하게 내 안에 채워 놓아도 좋지 않을까.

아!! 서문에서 부터 반해 버렸다. 초반부터 열심히 플러그를 붙이고는 내게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어린 날의 범생이에게. 구석구석에 담긴 그림들과 넘치는 지식들에 다시 대학시절로 들어가서 곽아람 기자의 수업을 훔쳐 보는 기분이 들었다. 직접 들어보고 싶은 욕구가 드는 수업들. 만나고 싶은 은사님들. 그녀의 기억의 층위를 들여다 보는 일은 즐거웠다. 어느 구절에서는 포스트 잍에 꾹꾹 눌러 적으며 눈물을 참았다. 그 구절의 위로가 나의 오늘을 다독였다. 그녀가 고른 그림이 그녀가 언급한 고전 속의 글귀가 내 마음을 휘저었다. 단단하게 잘 살아간다고 믿던 나의 하루가 사실은 위로가 필요했음을 느꼈다. 고단했구나. 한자락의 위로가 필요한 건 바로 나였어. 아둥바둥 바득바득, 열심과 열정이라는 이름 아래 노력하는 모습을 전혀 인정 받지 못하고, 지지 받지 못할 때 오는 지반 없는 모래성 같은 마음들이 '내 안의 깊은 계단'과 층위라는 말에 멈추었다. 내 마음의 층위는 어디 쯤일까?


때때로 나의 방황은 어긋남, 궤도 이탈의 시그널이 아니라 잘 항해 중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잊고있던 것들을 상기 시켰다. 문학에 애정 깊은 사람들이 같은 취향으로 동류임을 발견하듯, 나는 그녀가 선택한 문장들에 밑줄을 그었다. 물론 내가 읽은 책들보다 교양서의 경우 모르는 것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가끔 내가 읽은 문학과 문장이 언급될 때면 동류라도 만난듯 기뻐했다. 책을 탐독하며(아직도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더 많지만...) 필사하는 모습에 왜 그렇게까지 필사적이냐고 물었다. 네 전공과 관계없는 서적들을 들추는 일이 육아와 너의 작업하는 시간을 쪼개서 해야 할 "남들이 말하는 끼 없이 오롯이 공부로 예술을 꾸역꾸역 해내고 있는 내게 위로가 되어 주는 책을 발견했다. 성장이라는 단어에는 열광하면서도 유독 공부라는 단어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이제 막 24개월이 된 아들을 향해 시부모님이 대견하다 등을 토닥이며 "우리 아가 공부하니?"라는 말에는 기겁을 했다. 마치 그 말 한마디에 아들이 즐겁게 보면 그림책을 짚어 던지기라도 할 것 처럼.

내게 공부의 이미지는 부정적이었다. 억압, 강요, 부담, 거부감, 범생이.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 실컷 놀다가 유급 받는 것 쯤은 흉도 아니라는데, 매번 지각 없이 수업을 들어갔다. 꼬박꼬박 들은 그 교양 수업이 나는 재미있었다. (예고 출신이라 실기 수업이 많았고, 늘 교양에 목마름을 느꼈다) 그리고 첫 장학금을 시작으로 마지막 학기를 빼고는 줄 곧 장학생이었다. 범생이라는 사실이 예술학부에 속한 나에게는 조금은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티내지 않고 다녔으나 범생=끼 없음의 대변 같아 조금은 불편해 감추었다. 지금의 내 모습은 공부+연습으로 이루어 졌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들이 내 자산이요. 자양분이었음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아는 만큼 힘이 되었다고 감히 고백한다. 공부의 쓸모 이외에도 굳이 교양을 배워서 어디다 써먹냐 묻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한대로 결정하고 살아간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100% 자신의 의견이라는 것이 있을까. 결국은 내 안에 쌓인 여러 지식들을 바탕으로 판단의 지표를 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양이란 조금 넉넉하게 내 안에 채워 놓아도 좋지 않을까.


아!! 서문에서 부터 반해 버렸다. 초반부터 열심히 플러그를 붙이고는 내게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어린 날의 범생이에게. 구석구석에 담긴 그림들과 넘치는 지식들에 다시 대학시절로 들어가서 곽아람 기자의 수업을 훔쳐 보는 기분이 들었다. 직접 들어보고 싶은 욕구가 드는 수업들. 만나고 싶은 은사님들. 그녀의 기억의 층위를 들여다 보는 일은 즐거웠다. 어느 구절에서는 포스트 잍에 꾹꾹 눌러 적으며 눈물을 참았다. 그 구절의 위로가 나의 오늘을 다독였다. 그녀가 고른 그림이 그녀가 언급한 고전 속의 글귀가 내 마음을 휘저었다. 단단하게 잘 살아간다고 믿던 나의 하루가 사실은 위로가 필요했음을 느꼈다. 고단했구나. 한자락의 위로가 필요한 건 바로 나였어. 아둥바둥 바득바득, 열심과 열정이라는 이름 아래 노력하는 모습을 전혀 인정 받지 못하고, 지지 받지 못할 때 오는 지반 없는 모래성 같은 마음들이 '내 안의 깊은 계단'과 층위라는 말에 멈추었다. 내 마음의 층위는 어디 쯤일까?


때때로 나의 방황은 어긋남, 궤도 이탈의 시그널이 아니라 잘 항해 중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잊고있던 것들을 상기 시켰다. 문학에 애정 깊은 사람들이 같은 취향으로 동류임을 발견하듯, 나는 그녀가 선택한 문장들에 밑줄을 그었다. 물론 내가 읽은 책들보다 교양서의 경우 모르는 것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가끔 내가 읽은 문학과 문장이 언급될 때면 동류라도 만난듯 기뻐했다. 책을 탐독하며(아직도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더 많지만...) 필사하는 모습에 왜 그렇게까지 필사적이냐고 물었다. 네 전공과 관계없는 서적들을 들추는 일이 육아와 너의 작업하는 시간을 쪼개서 해야 할 만큼 중요해?


위의 질문에 위의 인용문으로 답을 하고싶다.

"인간은 자주 착각하고, 착각을 진실로 믿어 가끔씩 위대한 힘을 발휘하고, 착각에서 깨어나 슬퍼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착각한다. 착각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흔들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인간의 취약성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인문학의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229.<공부의 위로>


정확하게 공감한다. 나의 취약성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당장 내 손안에 뭔가가 쥐어지는 것 같지 않아도 그래도 나는 이 시간이 좋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건네는 말들로 나는 잠시 '쓸모'의 강박에서 벗어나 독자의 기쁨, 공부하는 사람의 기쁨을 온전히 누렸다. 프란츠 아이블의 <책 읽는 소녀>를 다시 찾아보며, 나도 괜시리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책을 읽으며 새 찬 가슴이 뛰고 있다.


정확하게 공감한다. 나의 취약성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당장 내 손안에 뭔가가 쥐어지는 것 같지 않아도 그래도 나는 이 시간이 좋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건네는 말들로 나는 잠시 '쓸모'의 강박에서 벗어나 독자의 기쁨, 공부하는 사람의 기쁨을 온전히 누렸다. 프란츠 아이블의 <책 읽는 소녀>를 다시 찾아보며, 나도 괜시리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책을 읽으며 새 찬 가슴이 뛰고 있다.


p229.<공부의 위로>


질문에 위의 인용문으로 답을 하고싶다. 정확하게 공감한다. 나의 취약성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당장 내 손안에 뭔가 쥐어지는 것 같지 않아도 그래도 나는 이 시간이 좋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건네는 말들로 나는 잠시 '쓸모'의 강박에서 벗어나 독자의 기쁨, 공부하는 사람의 기쁨을 온전히 누렸다. 프란츠 아이블의 <책 읽는 소녀>를 다시 찾아보며, 나도 괜시리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책을 읽으며 새 찬 가슴이 뛰고 있다.



공부가 남긴 흔적에 대한 이야기. 공부한 내용이 기억에 남지 않으면 헛되다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대학 시절의 공부는 잊히는 과정에서 정신에 깊은 자국을 남기고 거기에서 졸업 후 이어질 고단한 밥벌이의 나날에 자그마한 위로가 될 싹이 움튼다.

그것이 공부의 진정한 쓸모라고 생각한다.

<서문> 에서. 공부의 위로

자신의 세계를 공고히하되 다른 세계가 진입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교양이란 겹의 언어이자 층위가 많은 말, 날것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일, 세 치 혀 아래에 타인에 대한 배려를 넣어두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서문>. 공부의 위로

기억과 마음에도 층위가 있다는 것을, 나는 종종 ‘내 안의 깊은 계단‘을 걸어 내려간다. 층위마다 켜켜이 쌓인 묵은 이야기들을 헤집어 꺼내 헹군다. 깨어진 토기 조각을 이어 붙이듯, 복원한다.

p37. <공부의 위로>

사람을 사귈 때면 항상 마음속 지층을 가늠해 본다. 이 사람은 어느 층위까지 내게 보여줄 것이며, 나는 내 안의 어떤 층위까지 그를 허용하고 인도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층위마다 차곡차곡 고인 슬픔과 눈물과 어두움과 절망과 상처와 고통, 기쁨과 웃음과 약간의 빛의 흔적....... 나는 손을 내밀며 상대에게 묻는다. 더 깊은 곳까지 함께 내려가 주겠냐고, 그 어떤 끔찍한 것을 보게 되더라도 도망치지 않을 수 있겠냐고.

p38. <공부의 위로>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괴테,<파우스트>에서 사회인이 된 이후에도, 어려움이 닥치고 미로에서 헤매고 있는 것만 같은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이 문장에 기대어

‘노력하고 있으니 방황하는 거겠지.‘

생각하곤 했다.

p223.<공부의 위로>

인간은 자주 착각하고, 착각을 진실로 믿어 가끔씩 위대한 힘을 발휘하고, 착각에서 깨어나 슬퍼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착각한다. 착각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흔들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인간의 취약성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인문학의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229.<공부의 위로>

책을 장악한다는 것은

날뛰는 야수의 목덜미를 낚아채어

도망가지 못하도록 틀어쥐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p325. <공부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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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감사의 재발견 - 뇌과학이 들려주는 놀라운 감사의 쓸모
제러미 애덤 스미스 외 지음, 손현선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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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5퍼센트가 감사를 표현하면 ‘호구’가 된다고 생각했다. 상호의존성을 인정하는 것이 곧 스스로 연약함을 드러내는 처사라고 본 것이다.

P191. <감사의 재발견>


‘감사’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과할 만큼 충분하게 들어왔다.

감사제목 적어보기, 릴레이 감사 일기등으로 sns에서 한동안 붐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면 감사보다는 불평이 넘쳐났다. 여전히 오늘 하루는 감사보다 불만족스러운 것들에 마음 빼앗기는 경우가 많았다. 감사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마음 근육을 사용해야하는 의지적인 활동임을 깨달았다. 물론 유전자적으로 혹은 성별, 성향에 따라 다른 사람보다 감사가 쉬운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나오는 감사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은 아니다. 훈련이 필요하다.

먼저 감사를 표현하는 순간 내가 기 싸움에 진다고 생각했다. 은연중 가족 관계에서 혹은 동료사이에서 잦은 감사는 나를 낮추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35%나 된다고 하니 안심이 된다. 그러나 나는 안주하고 싶지 않아서 기꺼이 호구가 되는 용기를 내었다. 가장 가까운 내 가족들에게 먼저 수시로 감사를 표현하기로 결단한 것이다. 감사의 효과는 오랜 시간 신경성 위장염에서 나를 해방 시켰다. 그 사실을 이 책을 읽을 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한 조사에서는 감사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두통,소화기 계통 질환, 기관지염, 수면 장애 들의 문제가 적었다. (중략)

연령과 국적을 불문하고 감사하는 성향의 사람은 덜 감사하는 사람보다 건강상 불만 요소가 적었다. 이처럼 몸과 마음의 건강은 밀접하게 얽혀있고 감사가 신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날로 쌓여 간다.

p60. <감사의 재발견>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감사는 건강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자의반 타의반 시작되었던 감사일기가 준 효과였다. 물론 이 책에서는 감사의 역효과에 대해서도 다룬다. 무조건 적인 감사와 긍정은 되려 부정의 감정을 부인하게 된다. 하지만 감사는 부정적인 사건이나 감정을 거부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닌 그 상황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 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한다. 고난 가운데서 하는 감사의 힘은 회복탄성력을 높여준다.

실질적으로 연구 결과에서도 위기 가운데서 하는 감사는 심리적으로 살아날 확률이 높아지고, 평소에도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감사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많다. 단순한 경험이 아닌 통계와 실험 연구 결과로 바라보는 감사의 발견은 실로 놀라웠다. 마치 이정도면 마법의 단어쯤 된다고나 할까.

모든 분야에 있어서 적용이 가능했다. 인간 관계, 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일 등. 매일매일 반복되고 무미건조함 속에서 살고 있다면 일단 감사의 조건들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일상이 익숙함이 되고, 고마움이 당연시 될 때 우리의 삶은 지루해 진다. 설레임을 되찾는 방법으로 이 책은 감사를 소개한다.

그리고 마지막 독자에게 질문한다.

'감사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일까?'

4명의 저자가 함께 한 연구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라 여러 연구결과를 읽는 일은 흥미로웠다.

뻔하디 뻔한 감사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삶의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여지들을 발견할 수 있다.


<밑줄 긋기>

- 감사로 가진 것의 가치를 표현할 때 우리가 얻는 유익이 배가된다. 그만큼 덜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감사함으로써 인생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좋은 것에 익숙해지지 않고 그것을 축하할 수 있다. p16

-연구진은 한 집단에게 화나는 경험의 긍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지금 어떤 감사를 느끼는지 성찰하는 글쓰기를 했다. 그 결과, 부정적 기억에 마침표를 찍고 불쾌감을 해소한 비율이 다른 집단 보다 높았다.(중략) 그드릉ㄴ 시련을 직면하며 더 큰 회복탄력성을 획득했다. p20

-이 데이터는 감사가 사회적 유대 및 스트레스 완화와 관련있는 뇌 신경망에 의종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감사 정서가 건강에 어떤 유익으 ㄹ끼치는 지 부분적으로 설명해준다. 감사하면서 타인이 제공한 도움을 인정하면 몸 상태가 느긋해지고 스트레스 수치도 낮아진다. p44

-우리는 좋은 것에 쉽게 익숙해진다. 그래서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좋은 것을 인정하기 위한 수고를 기울여야 한다. 감사할 때 우리는 긍정적 경험을 음미하고 덜 당연하게 여긴다. 감사 일기는 이를 독려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다. p56

-감사의 렘즈를 끼고 인생 경험을 들여다보라는 것이 부정성을 부인하라는 얄팍한 행복론은 아니다. 참 감사는 당신이 마주한 장애물을 오히려 기회호 삼을 저력이 자기 내면에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상실을 잠재적 유익으로 재구성하고 부정성을 감사로 재해석 한다는 뜻이다. 감사는 상황과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다.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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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괴물 백과 - 신화와 전설 속 110가지 괴물 이야기
류싱 지음, 이지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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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의 이야기가 아닌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를 넘어서 미지의 세계 신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비극적인 운명은 예로부터 연극의 단골소재였다..!

모든 비극의 시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하듯 그들의 출생과 타락에는 호기심과 그럴 듯한 사연이 덫칠되어 두렵고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완성된다.

디오니소스의 행사를 연극의 기원, 제사에서 부터 발생했다고 보기도 한다..! 일상과 다큐의 미묘한 경계가 유행하는 시대에

동떨어진 괴물이라니..??

근데 정말 상관없이 동떨어져 있을까..?

우리가 잊고있던 크고 작은 이야기 속의 소재에 이름만 바뀐 채 등장하기도 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진화해서 악녀에서 혹은 악인에서 측은지심이 느껴지게 하는 부분이 그려지게도한다.



시대 상마다 나타나는 전설 속 이야기의 괴물을 통해 그들의 삶의 방식과 사상 가치관등을 살펴 볼 수 있었다. 동양과 서양 저 멀리에서도 같은 시대에 비슷한 괴물의 등장은 존재의 유무가 아닌 그 시대 속에 만연하게 퍼졌던 이념들을 살펴볼 수 있고, 그들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교통이 편리해서 바로 고증이 가능 한 것이 아닌,서로의 인식 속에 괴물이 살고 있는 미지의 나라들로 존재하기도 한다.

옛 이야기 속의 괴물들의 형상은 현재 조각상 혹은 그릇에 새겨진 것,벽화 등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절대 군주를 대변하는 한 국가의 상징이 되기도하고, 때로는 수호신으로 때로는 저주와 벌을 주는 존재로 나타난다. 서로 견제하는 적수들을 통해 힘의 균형을 맞추고자 한 옛사람들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그들의 모습은 현존하는 동물들이 혼합된채로 나타나있다. 성경 속 사단을 상징하는 뱀과 여러 동물들과 머리와 꼬리 날개등의 부조화로서 위협적인 존재로 나타나기도 한다. SF 소설이나 영화 속의 캐릭터로도 등장하지만 요즘은 의인화되어 인물들의 내면의 모습으로 상징화 되어 표현되기도 한다.

사실 요즘의 뉴스면을 보고 있으면 외형은 사람의 인두겁을 쓰고도 내면의 부조화로 가득찬 괴물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고대 근동의 신화 보다는 형상과 유래를 넘어서 그들만의 이야기가 형성된 그리스 로마 신화나 성경 속의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게 다가왔다. 자료가 풍부하고 이야기거리도 많고 그들을 주제로 한 작품도 많은 그리스 괴물들과 성경속 괴물은 어릴때부터 기독교인으로 많이 접하다보니 더욱 익숙하게 다가왔다.

괴물의 정체성은 그들 안에서 변형되고, 점점 확대되어 요즘은 한 회사의 상징성으로 대표되어 가치를 드러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스타벅스의 로고 사이렌이 아닐까, 우리가 아는 인어의 모습은 변형된 것이고 원래는 사람의 얼굴에 덕수리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벅은 오딧세이에 나오는 매력적이고 세련되고 뱃사람들을 홀릴 만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사이렌 처럼 커피로 사람들을 유혹하겠다는 포부를 담아 긍정적인 모습으로 또 아름다운 인어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메이킹을 한 경우이다.

하지만 전설 속 사이렌은 실제로 포악하며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설도 있고, 결국은 죽음으로 몰고가는 괴물이다. 그러나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이미지를 생각하며 마시는 사람은 없을테니 그들만의 새로운 사이렌의 창조라고 할 수 있겠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시대에 나만의 이야기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찾는 이들이 한번쯤 참고 해볼 만한 책이 아닐까.

특히 글을 쓰거나 창작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악인의 형상이 필요하거나 두려움의 존재를 창조하고 싶을때,영웅을 그려내고 싶을때에 참고 할 만하다고 감히 말한다. 단순히 카더라를 넘어서 역사,신화와 함께 자료들이 첨부되어있고 신화나 전설 속의 의미에 대한 현대적 풀이에 대해서도 나와있으니 좀더 쉽게 접근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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