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이 그날인 그곳을 벗어나 매일매일이 특별한 날을 위해 각자의 결함과 결핍의 소년들이 함께 모험을 떠났다.
7/4일까지 샌프란시스코에 가기 위해 미국을 횡단하는 최단경로 링컨 하이웨이를 타기로 했다. 삶의 여정이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그것이 상황 탓이든 주변의 사람 때문이든 각각의 사연 까닭에 그들의 여행은 수정되었다. 함께 떠났으나 각기다른 목적을 품고 있던 그들은 에밋의 자동차 스튜드베이커에 올랐다. 10일간의 여정이 서로 다른 시점에서 이야기된다. 한 사건에 대한 당사자와 관찰자, 주변인의 입장을 모두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다른 이의 행동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전 이렇듯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들의 여행동지들은 마냥 꿈에 부푼 순수한 소년들이 아니다.
과실치사로 소년원에서 형을 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르게 퇴소한 에밋, 어린 동생을 책임지려는 성실함과 도덕관념도 있으나 그에게는 분노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아킬레우스의 결점을 지니고 있었다. 분노의 댓가는 그를 평범한 삶에서 밀어냈다. 그 아무리 성실치 못하고 악한 녀석이 죽었다고 해도 그로 인해서 한 생명이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는 결국 아버지의 집에 머물지 못하고 동생 빌리와 함께 새로운 삶을 찾아나서게 된다.
빌리는 조숙하고, 영특한 꿈꾸는 소년이다. 형 에밋이 하는 일들을 이해하지만 그의 분노에 대해서는 열을 세어야 한다고 절제 시킬 만큼 성숙하다. 적절한 판단과 추리력으로 금고의 번호를 예측하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엄마의 결핍이 있다. 8년이나 연락없는 엄마의 남겨진 9장의 엽서를 보고 길을 떠날 만큼 헤맑기도 하고 무모하기도 하다.
더치스, 그의 행실에 관해서는 아무리 그의 시점으로 적혀 있어도 공감이 되지 않았다. 이해와 변명을 듣는다고 해도 그의 행위는 늘 주변에 피해를 입혔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이들에게. 그럼에도 스스로 합리화하고 사과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
울리, 집으로 가고 싶었던 소년. 결국 집으로 가서 잠들었다. 빌리와 함께 평면도를 그리며 집을 꿈꾸는 듯 했으나 그의 마지막 편지로 인해 그는 결국 그곳에서 잠들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샐리, 소년들의 여정의 마지막에 참여하게 될 그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을 기꺼이 하는 그녀는 자신의 설탕절임을 에밋과 빌리가 먹는것이 좋았다. 그것이 연정이든 다른 무엇이든. 그녀는 다정하고 따스했다.
세상은 때로 차갑고, 그다지 관대하지 않다. 에밋의 과실치사는 그의 폭행이 발단이 되어 지미 스나이더가 뒷걸음질을 치며 굵은 케이블에 걸려 천막 말뚝을 바치고 있던 콘크리트 블럭에 머리를 부딪힌 사건이었다. 그는 그 사건에 대해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고작 18세 소년이 소년원에서 댓가를 치르고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은 피해자 가족의 폭행 위협과 실제 폭행을 견디는 일 뿐이었다. 심지어 에밋의 폭행의 원인은 지미 스나이더가 에밋의 아버지를 욕보인데 있었다. 물론 그의 폭행과 그의 과실로 인해 어린 생명이 죽은 것을 두둔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댓가를 치르고 나왔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그에게 도움을 주는 어른들의 조언은 모두 이곳을 떠나라는 현실적인 조언 뿐이었다. 세찬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에밋과 그런 그를 이해하는 동생 빌리, 엉뚱하게도 그들 형제를 찾아온 더치스와 울리의 여정은 모험담이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