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의 시조인 코메니우스부터 20세기 인지론의 거두 피아제에 이르기까지 영.유아를 연구한 학자.교육자들은 모두 경험과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유아들은 오감을 활용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 경험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어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서에서 이런 내용들을 읽는 것은 너무나 쉽다. 그러나 막상 만 5세 미만의 아이들을 기르다 보면 쉽지 않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아무리 경험을 많이 시켜주고 신나게 놀아 줘도 아이가 알아들었는지 아닌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답답한 엄마들은 뾰족한 수가 없을까 이리저리 궁리하게 되고 각종 사교육에 의존하게 된다. 각종 문제지에 100점이라는 표시가 있으면 안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험에 비춰 볼 때 학습지나 사교육은 초등학교 취학 전 아이들에게는 버겁다.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을 가르칠 수는 없다. 단지 그 사람 스스로 어떤 것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는 갈릴레오의 말처럼 배우는 사람은 아이 자신이다. 어른들이 할 일은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판을 마련해 주고 질문에 답해 주고 무언가 궁금하도록 해주는 것일 게다.
난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물건을 사고 값을 치를 때 "100원짜리 7개니까 700원이지요?"하며 가게 주인에게 건넸고, 집에 있다가 외출할 때에는 "지금 10시네. 우리 30분 있다가 10시 반에 나가자"했고 그 시간이 되었을 땐,"자 우리 나가자. 10시 반이 되었네"했다. 수백 번도 더 했을 이런 상호 작용들이 언제 결실을 볼지 모르는 일이었지만 지치지 않고 계속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이가 어느 날 문방구에 가겠다고 해 돈을 건네며 "여기 500원짜리 하나, 100원짜리 다섯 개"하며 손바닥 위에 놓아주자, 아이는 "할머니 천원이야. 이젠 그렇게 안 해도 돼. 나 다 알아"했다. 또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지금 2시 25분이다"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연스럽게 거부감 없이 돈을 계산할 줄 알게 되고 시간을 정확히 볼 수 있게 되었는가? 서두르거나 다그치는 대신 아이를 믿고, 관찰하고, 경청하며, 인정해 주었더니 어느 날 아이 스스로 피어난 것이다. 우리 어른들 만큼 아이들도 세상이 궁금하고, 알고 싶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많이 가르치려다 아이의 자신감을 잃게 하지 말자.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