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쫓아오는 밤 (양장) - 제3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수상작 소설Y
최정원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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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쳐야 한다,
그놈보다 더 빨리."

창비 소설 대본집 6번째,
[폭풍이 쫓아오는 밤]
지은이 최정원

한 소녀의 뜀박질로 시작되는 이야기, 그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왜 그는 ‘뛰고’ 있고, 심지어 동생을 등에 엎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는 뛰고 또 뛰었고, 무언가가 그런 그를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사람인지도 동물인지도 헷갈리는, 하지만 그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은 것은 분명했습니다. 도대체 소녀를 따라오게하는 존재는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났는지, 소녀는 어떤 이유로 그 존재를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신이서, 17살 고등학생입니다. 소녀가 무언가에게 쫓기던 날은, 이서는 동생과 아빠와 함께 나들이를 가던 날이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을 갖고 이동하던 가족들은 그 날 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루밤을 지낼 펜션에 들어가던 길에 저 멀리 어디선가 개가 짖는 듯한 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이서의 가족이 들른 곳은 수련원이었는데, 그 날 그곳에 또 다른 일행도 있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나온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었죠. 그 일행 속에서 남수하는 고등학생 중 하나였습니다.

​---

이야기는 이렇게 이서와 수하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진행됩니다. 제가 이번 게시글에서 소녀의 ‘뜀박질’로 첫 문장을 시작하였는데요, 해당 시점에서의 이서는 그를 쫓아오는 무언가를 피하기 위해 뛰었지만, 뛰는 행위를 하게된 특별한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이서의 계기는 휘몰아치는 이야기 속에서 한 순간의 쉼표를 주는 포인트가 되니 꼭 직접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무언가’와 수하가 겪은 일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말에 마음을 담으면, 그 말대로 이루어지니까. 언제나 노력했다. 날카롭고 뾰족해진 마음은 입밖으로 내지 않고, 단단하고 튼튼한 말을 갑옷처럼 둘렀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
- 이서의 이야기 중

결론은 어찌보면 뻔합니다. 그 무언가에게 해침을 당하지 않고 살아난, 살아나게된, 그리고 살아가는 이서. 어린 나이지만 많은 상처를 꿰메가며 지내는 이서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서와 같은 일들을 겪었다면 과연 이겨내고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까요? 순식간에 책장을 넘기며 빠른 호흡으로 책을 읽어 나갔지만, 그러면서도 제 자신에게 꽤 많은 질문을 남겼던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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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양장) 소설Y
단요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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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기억을 깨워줄게
2057년 서울, 잠든 과거를 찾아 떠나는 여정
창비 소설Y 대본집 5번째

“다이브”

#영어덜트 #판타지 #기억 #성장 #치유
#회복 #다이브 #창비 #소설Y



창비 소설Y 블라인드 서평단으로 받은
다섯번째 대본집, “다이브”

이 이야기를 쓴 작가님은 공개되지 않은채
한 장의 편지와 함께 책을 받았습니다.
편지안에는 이름 모를 분의 몇마디 문장이 적혀있었습니다.



세계에 대한 솔직해지는 건 언제나 어렵고 아픈 일인 까닭에 사람들은 곧잘 만들어진 이야기에 발을 들입니다.
그리고 현실의 삶에 희망이 있다고 믿어보려 합니다.

​어떤 땅은 갈라지고 어떤 땅은 물에 잠기는 시대에“다이브”가 그런 피난처이길 조심스레 바라 봅니다.

고민끝에 써내려갔을 작가의 편지가 어떤 이야기를 담겨있을지 짐작을 할 수 있게 해줬고 이 “다이브”를 피난처로 내어준 마음에 한결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고난과 여정의 이야기가 담겨있을테지만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을 직감했습니다.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25년 뒤인, 2057년에서 시작됩니다. 온통 잠겨버린 한국, 서울에서요. 종로나 관악구는 북악산이나 남산으로 불려졌고, 사람들은 높은 지대에서 마을의 형태를 꾸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끌고가는 ‘선율’은 남산보다는 낮은 노고산에 살고 있었고 서울을 제외한 지역이 잠긴 만큼 이전처럼 살아갈 수는 없는 환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른바 물꾼으로 불리는 몇몇 사람들이 물 속에 잠겨 있는 생필품을 찾아다니며 생활을 이어갔죠. 그러다 남산 물꾼인 우찬과 시비가 일었고 더 멋진 물품을 찾아오는지 내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물 속을 파헤치던 선율은 어느 빌딩에서 큐브에 갇힌 사람 형태의 것들을 찾게 되고, 여러개의 큐브 중 하나를 끌고 올라왔습니다. 그 안에는 사람의 형태를 한 것이 있었지만 촉감은 사람 같지 않았고, 이런 팜플렛이 함께 있었습니다.

“아이콘트롤스의 최첨담 스냅스 스캐닝 기술은 고인의 기억과 의식을 그대로 구현합니다. 평생 플랜 구독을 통해 당신의 아이를 다시 한 번 품에 안으세요. 부모님에게 못 다한 말을 남기세요.”

살아 생전의 기억을 넣어 둔 로봇. 하지만 잠들어있는 로봇이었기에 깨우는 것이 맞을지 그 로봇도 깨워지길 원하지 않는다면 어떡해야할지 하는 고민을 했지만 결국 답은 내리지 못한 채 로봇을 깨우게 됩니다.

​•

깨어난 로봇은 ‘수호’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고, 생각보다 태연한 태도였고 팜플렛을 읽고나서야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을 했습니다. 하지만 수호의 기억은 18살 이었던 2038년이 마지막이었죠. 지금은 2057년, 수호가 계속 살아왔다면 서른 후반의 나이였을테지만 수호는 여전히 18살이었죠. 수호의 마지막 기억인 2038년과 지금의 2057년 서울의 모습은 많이 달랐고, 모두 잠겨버린 서울의 이야기를 들은 수호는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분명 2038년의 기억이 마지막이고, 서울이 잠긴지는 15년 전인데, 수호에게는 4년이라는 공란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 때 수호는 결심하죠. 일단 로봇으로 더 살아갈지에 대한 결정은 이 4년 동안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아보자고. 이는 선율도 함께하게 되며 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수호가 의도치 않게 깨어났음에도 4년의 공백을 찾으려는 이유는, 선율과 함께 노고산에 살며 판교로 왕래하며 수리를 담당하며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어주는 삼촌 ‘결’에 있습니다. 뚜렷한 말은 없지만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한 둘 사이지만 각자의 이야기들이 펼쳐지며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져있는지 하나 둘 씩 밝혀집니다.

​•

선율은 내기에서 우승을 하려고 꺼내왔던 로봇인 수호를, 보다 진심으로 생각하게 되고 서로 도우며 수호의 이야기를 되찾아주려하는 과정들이 담겨있습니다. 그 둘은 수 없이 많은 다이빙을 거치며 진실을 알아가게 되고, 선율은 ‘결’ 삼촌과 수호의 이야기도 듣게 됩니다. 이 시점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처를 받은 수호가 마음 편히 털어 놓을 사람이 생겼다는 것도, 그리고 그로 인해 수호와 결 사이에 쌓인 이야기의 매듭도 더 엉키지 않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요. 단편적으로 보면 수호와 결, 두 사람만의 이야기지만 그 안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바꿀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한 사람의 기억을 깨움으로 인해 많은 사람의 생각도 바뀌게 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 당사자인 수호가 더 힘들어하지 않아도 될 것같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습니다. 과연 이들이 어떤 이야기로 서로를 치유하게 되었을지 궁금하시다면 책장을 넘겨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빌런 없는 소설, 마음을 어루어주는 소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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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스노볼 1~2 (양장) - 전2권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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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작품을 읽고, 다른 작품과의 비교를 하는 일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 스노볼을 주변에 추천할 때, 트루먼쇼와 설국열차가 섞인 얘기라고 말하고 싶다. 비교가 아닌 비유로. 계급층에 대해 꼬집는 동시에 타인의 일상을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하는 큰 틀을 갖고 있고, 트루먼쇼나 설국열차를 재밌게 읽었던 사람이라면 더욱 빠르게 책장을 넘길 것이다.

책 소개에도 있듯이 반전에 반전에 또 반전을 담은 소설이다. 얼만큼의 반전이 있는지는 직접 읽어보시길 권한다. 무엇보다 이번 스노볼 서평단을 하면서 1권과 2권을 함께 읽었는데, 1권은 작년 10월 쯤 창비x카카오페이지 제 1회 영어덜트 소설상 대상 수상작이었다. 약 1년 2개월만의 2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1권을 읽으며 2권이 있어야만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2권을 덮으면서도 3권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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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은 영하 41도의 극한의 환경인 “밖에서” 사는 사람들과, 스노볼 안에서 사는 사람들과 구분이 된다. 주인공 ‘전초밤’은 스노볼 밖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고, 스노볼 안에는 디렉터와 액터들이 살고 있다. 말 그대로 액터, 스노볼 안에 사는 사람은 일 평생이 드라마가 되어 스노볼 밖으로 송출이 된다. 초밤은 그런 드라마를 연출하는 디렉터를 꿈꾸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지금 드라마의 디렉터가 초밤을 찾아오게 되고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갑작스레 지금 드라마의 주인공, ‘고해리’를 대신하게 되면서 디렉터 ‘차설’의 욕망을 알게되고 스노볼의 창시자인 ‘이본’ 그룹의 사람들과 얽히고 설켜 수상함의 눈덩이는 더욱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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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스노볼]의 환경 자체도 재미있지만 읽어 내려가며 누가 초밤이의 편이고 아닌지 신경을 곤두 세우게 되고, 어느 순간 뒤통수를 맞을 땐 얼얼하기도 한다. 이 겨울에 어울리는 스노볼에서 펼쳐지는 추리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면 추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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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도 편집이 되나요?
이지은 지음 / 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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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여러 출판사를 거치며 편집 일을 하고 있는 이지은 편집자의 에세이다. 개인적으로 타인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어 에세이를 즐겨 읽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 인생도 편집이 되나요?]는 마치 사회생활에서 만난 멘토가, 나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는 언니가 해주는 이야기 같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기초가 되는 부분들이 ‘편집자’의 일이기 때문에, 미래에 편집자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사실 책을 읽어내려가며 편집자가 이렇게 많은 일을 맡아하는 줄은 몰랐다. 그저 상상하기로는 기획자가 별도로 있고, 기획자가 섭외하거나 기획자에 의해 섭외 된 작가의 글을 편집자가 구성해 주고 교열해 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끝인 줄로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거의 모든 일을 편집자가 담당하고 있었다. 책의 서사가 시작되는 작가 섭외부터 기획하여 출판 결정, 원고 검수는 물론이고 표지 디자인 의뢰, 심지어 정산과 북토크 같은 오프라인 행사도 담당한다. 편집자가 아니라 매니저나 다름없다. 그 책의 전담 매니저. 그렇다 보니 담당한 책에 대한 애정이 가득할 것 같다. 2020년만 해도 6만 5천 권의 책이 나왔는데, 그중에 몇 권이 내 손으로 만들어진 책이라니, 애정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그만큼 쏟는 시간도 많다는 얘기로 보인다. 저자 또한 ‘일’에 한없이 사로잡혀 살다가 자신의 시간을 찾는 법을 배워나가기도 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수영이라는 휴식처, ‘딴짓’을 찾았을 때다.

“세상과 언제든지 연결되어있는 상태는 그 자체로도 적잖은 스트레스였다는걸. 하루에 두 시간 정도는 모든 연결을 끊은 채 물속에 있는 시간은, 지금 여기 나에게 집중하기 위한 휴식이 되었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간과하고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마련 해주는 것. 소위 말하는 ‘워라밸’을 지키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현실에서 잠깐씩은 벗어나리라 마음먹어본다. 같은 결로 책의 막바지에서 업무를 하면 상대방이 선을 넘을 때, 그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런 일은 너무나도 동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저자는 이런 일에 대해 크게 휘둘리지 말라고 얘기한다.

“오늘의 파도를 넘은 것에 안도하고, 내일의 파도는 내일 걱정하기로 하자. 일단 잠은 두 다리 쭉 뻗고 자기로 한다. 일을 오래하기 위해서는 나만 손해인 일은 하지 않는게 중요하다.”

백번 맞는 말이다. 문제가 생긴 일에 대해서는 당연히 해결해야 하지만 그 문제가 내 손 밖에 있거나 너무 큰 정신적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는 그 상황에 갇히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지켜줄 건 나밖에 없다.

끝으로, 아무리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필수품이 되는 시대라고 해도, 결국 종이책은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전년 대비 종이책 판매량이 8%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사그락거리는 책 넘김은 도서의 시그니처가 되었기에 종이책이 계속 존재함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닐까.

“세상은 늘 빠르고 소란스럽다. 책은 느리고 고요하다.”

나 또한 책을 주로 읽는 시간이 매일 밤과 새벽쯤이다. 소란스럽지 않은 나만의 시간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을 챙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편집자분들을 종종 생각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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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들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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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창비에서 펴낸 ‘손석희’님의 [장면들]의 서평단이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의 수식어로 명명할 수 없는 분의

저널리즘 에세이를 빠르게 읽어볼 수 있었어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언론인이자

한 기업의 사장인 ‘손석희’님을 어떻게 호칭을 붙여야할지 모르겠어서

이번 서평에서는 전 언론인, 전 앵커등의 수식어를 붙이는 대신

‘손석희’ 그 자체 또는 저자로 명할 예정이오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부디 무례하다고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없길 바랍니다.)




저널리즘, 사건이나 사실에 대해 보도하고 논평하는 것, 저자가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미디어의 중심에서. 수 많은 정보가 쏟아져나오고 미디어에서조차 진실만을 말한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가 지켜온 것이 있다. 바로 ‘어젠다 셋팅’과, ‘어젠다 키핑’이다. 말 그대로 ‘어젠다 셋팅’은 의제를 설정하는 것, ‘어젠다 키핑’은 설정한 의제를 얼마나 잘 지켜나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어젠다 키핑과 셋팅은 언론 보도 쪽에서만 중요하다고 한정지을 수는 없을 듯하다. 의제를 세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의제를 얼마나 잘, 그리고 오래 지키느냐가 관건이고, 잘&오래 지키려면 ‘올바른’ 기준으로 의제를 발화하는 것이 힘이 실린다. 즉 어젠다 키핑과 어젠다 셋팅 그 어느 하나 건성으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개인이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신만의 의제를 만들고 지켜나가는 일이 쉽지 않을텐데 이를 불특정 다수들에게 발화하며 수십년을 살아오는게 쉽지 않을터이다.



아젠다 셋팅 및 키핑은 기본적인 이론일 수 있고 그렇기에 누구나 기준을 세우고 지켜나갈 수는 있겠지만 의제 설정 자체가 사회적인 변화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분명 있다.

의제 설정이 사회적 변화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

1. 주제(미디어)가 실현할 만한 영향력이 없는 경우

2. 사회적 공감대가 결여된 경우

3. 의제 설정 기능을 가진 세력에 의해 보다 강력한 의제가 설정 된 경우

4. 의제 자체의 힘이 소멸함으로 인해 피로감과 무관심이 증대된 경우

저자가 얘기한 그 이유는 위와 같은데, 이는 그가 사장으로 부임하던 당시의 신생 기업이었던 jtbc의 위치를 대변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발화의 영향력이 타사보다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jbct는 생각보다 많은 영향력으로 힘을 키워갔다. ‘장면들’에 담긴 이야기들이 증빙을 해주는거나 마찬가지다. 1부-‘어젠다 키핑을 생각하다’에 담긴 여섯가지의 보도들은 jtbc의 뉴스를 TV 앞에서 챙겨보지 않던 나 조차도 대부분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다. (단 하나, ‘6.우리는 평양에 가지 않았다’만 제외한다면.)

분노하는 마음에 광화문 집회에 뛰어 들었던 추운 날의 겨울도, 성폭행을 당하고도 조용히 있어야 했던 강요를 당하던 사람들 사이에 피어오른 고발들도 기억에 남고 감정적으로 불꽃이 튀게 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잊을 수 없는 건 2014년의 봄에 일어났던 일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그 날이 생생하다. 대학교 2학년, 새 학기가 시작한지 한달 즈음 지나고 있었고, 여느 때와 같이 오전 전공 수업이 끝난 뒤 점심을 먹고 있는데 고등학생들과 일반인이 탄 배가 가라 앉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내 곧 모두 구출했다고 뉴스가 떠서 별일 아닌가 보다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구조는 커녕 아무 조치도 못하고 있었고 심지어 배는 가라앉고 있었다. 처음에는 지켜보는 모두가 걱정의 마음이 컷지만 이 사건의 진상이 나올 수록 분노가 가득찼다. 모두가 다 아는 그 이야기들. 그러다 잊혀져 갔다, 여느 일들처럼 그렇게. 그 잊혀짐 속에서도 팽목항을 지켰던 건 jtbc의 기자들이었다. 무려 287일 동안, 거의 1년이 다 되는 시간 동안 그 현장에서 매일 같이 중계를 했다. 그 어떤 말보다 팽목항에 ‘남겨져 있던’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2010년대는 그 어느 때보다 다이나믹했고, 그로 인해 많은 변화들을 불러오지 않았나 싶다.




어차피 세상의 변화는 조화로움속에서만 오지는 않는다.

장면들 - 손석희



그냥 보다가 웃겼던 부분. (기가 찼다고 해야하나) 그놈의 애교가 도대체 뭔지.


저자는 “선배가 생각하는 보도의 원칙이랄까, 그게 뭔가요?”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답했다. “당연히 가장 우선시되는 건 팩트지요. 그 다음엔 이해관계 속에서의 공정, 이데올로기에 있어서는 균형, 그리고 품위입니다. 무엇을 보도할 것인가와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에서 품위가 빠지면 안됩니다.” 저자가 갖고 있는 언론인으로서의 방향성, 속된 말로 ‘기레기’기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으로 여태까지의 커리어를 유지했고, 한 언론사의 보도담당 사장직으로 언론사를 위해 살았을 것이다.



때로는 상황에 끌려다니고,

더 본질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은 보인다.

다만, 그게 너무 늦으면 후회만이 남는 것이지만.

장면들 - 손석희


jtbc의 [뉴스9]을 [뉴스룸]으로 바꾸고, 네개의 코너를 꾸리는 과정에서 그의 보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앵커브리핑부터 팩트체크, 비하인드뉴스, 그리고 정치 외의 이야기를 다루는 문화초대석까지. 책을 읽으며 책에 실린 각 코너들을 몇개 찾아보기도 했다. 어떤이가 보기에는 편파적일 수 있지만, 내가 느끼기엔 정치를 제외하고도 다양한 내용을 뉴스에서 담기 위하여 많은 고심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가가 아닌 감탄에서의 느낌이다. 그리고 그가 직접 써내려간 마지막 날의 앵커브리핑도 참 인상 깊다. 흔들리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동그란 나침반 안에 들어있는 지남철.

그 자석의 끝은 끊임없이 흔들리는데…

그 흔들림이야 말로

가장 정확한 방향을 찾아내기 위한

고뇌의 몸짓이라는 의미…

장면들 - 손석희




또한 급변하는 미디어 시대에서 ‘살아나갈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내가 몸 담고 있는 업계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무리 TV, 라디오 등의 매스미디어가 저문다고 매년 큰 발화점이 나오지만 결국 이 전통적인 미디어들은 말 그대로 ‘전통’으로 여겨지고 그 역할을 하고 있고 그렇기에 매체로써 무시할 수 없다. 유튜브나 소셜미디어가 뜨는 시대에도 매스미디어를 적어도 ‘무시’할 수 없고, 쉽게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동아줄. 동아줄이라는 표현이 참 적절하다. 이 동아줄은 언젠가 썩게 될 수는 있어도 아직까지는 튼튼한, 미디어의 축을 잡고 있는 줄이다. 그 과정에서 언론이 취해야할 태도나 대중들이 취해야할 반응에 대한 표현들은 다양해져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언론사들도 고민이 참 많을 터이다. 물론 언론사뿐만 아니라 미디어나 광고 업계 모두, 부딪히고 있고 극복해야 할 것이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더라도 한장 너머 또 한장 펼치게 된다면 다시 또 그 ‘장면들’로 저자와 함께 돌아가 분노하고 공감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뉴스를 받아들이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어떻게 뉴스를 받아들여야하는지 생각하게 끔 해준다. 언젠가 ‘조화로움’ 속에서의 변화가 더 많은 날이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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