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들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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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창비에서 펴낸 ‘손석희’님의 [장면들]의 서평단이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의 수식어로 명명할 수 없는 분의

저널리즘 에세이를 빠르게 읽어볼 수 있었어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언론인이자

한 기업의 사장인 ‘손석희’님을 어떻게 호칭을 붙여야할지 모르겠어서

이번 서평에서는 전 언론인, 전 앵커등의 수식어를 붙이는 대신

‘손석희’ 그 자체 또는 저자로 명할 예정이오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부디 무례하다고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없길 바랍니다.)




저널리즘, 사건이나 사실에 대해 보도하고 논평하는 것, 저자가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미디어의 중심에서. 수 많은 정보가 쏟아져나오고 미디어에서조차 진실만을 말한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가 지켜온 것이 있다. 바로 ‘어젠다 셋팅’과, ‘어젠다 키핑’이다. 말 그대로 ‘어젠다 셋팅’은 의제를 설정하는 것, ‘어젠다 키핑’은 설정한 의제를 얼마나 잘 지켜나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어젠다 키핑과 셋팅은 언론 보도 쪽에서만 중요하다고 한정지을 수는 없을 듯하다. 의제를 세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의제를 얼마나 잘, 그리고 오래 지키느냐가 관건이고, 잘&오래 지키려면 ‘올바른’ 기준으로 의제를 발화하는 것이 힘이 실린다. 즉 어젠다 키핑과 어젠다 셋팅 그 어느 하나 건성으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개인이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신만의 의제를 만들고 지켜나가는 일이 쉽지 않을텐데 이를 불특정 다수들에게 발화하며 수십년을 살아오는게 쉽지 않을터이다.



아젠다 셋팅 및 키핑은 기본적인 이론일 수 있고 그렇기에 누구나 기준을 세우고 지켜나갈 수는 있겠지만 의제 설정 자체가 사회적인 변화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분명 있다.

의제 설정이 사회적 변화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

1. 주제(미디어)가 실현할 만한 영향력이 없는 경우

2. 사회적 공감대가 결여된 경우

3. 의제 설정 기능을 가진 세력에 의해 보다 강력한 의제가 설정 된 경우

4. 의제 자체의 힘이 소멸함으로 인해 피로감과 무관심이 증대된 경우

저자가 얘기한 그 이유는 위와 같은데, 이는 그가 사장으로 부임하던 당시의 신생 기업이었던 jtbc의 위치를 대변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발화의 영향력이 타사보다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jbct는 생각보다 많은 영향력으로 힘을 키워갔다. ‘장면들’에 담긴 이야기들이 증빙을 해주는거나 마찬가지다. 1부-‘어젠다 키핑을 생각하다’에 담긴 여섯가지의 보도들은 jtbc의 뉴스를 TV 앞에서 챙겨보지 않던 나 조차도 대부분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다. (단 하나, ‘6.우리는 평양에 가지 않았다’만 제외한다면.)

분노하는 마음에 광화문 집회에 뛰어 들었던 추운 날의 겨울도, 성폭행을 당하고도 조용히 있어야 했던 강요를 당하던 사람들 사이에 피어오른 고발들도 기억에 남고 감정적으로 불꽃이 튀게 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잊을 수 없는 건 2014년의 봄에 일어났던 일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그 날이 생생하다. 대학교 2학년, 새 학기가 시작한지 한달 즈음 지나고 있었고, 여느 때와 같이 오전 전공 수업이 끝난 뒤 점심을 먹고 있는데 고등학생들과 일반인이 탄 배가 가라 앉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내 곧 모두 구출했다고 뉴스가 떠서 별일 아닌가 보다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구조는 커녕 아무 조치도 못하고 있었고 심지어 배는 가라앉고 있었다. 처음에는 지켜보는 모두가 걱정의 마음이 컷지만 이 사건의 진상이 나올 수록 분노가 가득찼다. 모두가 다 아는 그 이야기들. 그러다 잊혀져 갔다, 여느 일들처럼 그렇게. 그 잊혀짐 속에서도 팽목항을 지켰던 건 jtbc의 기자들이었다. 무려 287일 동안, 거의 1년이 다 되는 시간 동안 그 현장에서 매일 같이 중계를 했다. 그 어떤 말보다 팽목항에 ‘남겨져 있던’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2010년대는 그 어느 때보다 다이나믹했고, 그로 인해 많은 변화들을 불러오지 않았나 싶다.




어차피 세상의 변화는 조화로움속에서만 오지는 않는다.

장면들 - 손석희



그냥 보다가 웃겼던 부분. (기가 찼다고 해야하나) 그놈의 애교가 도대체 뭔지.


저자는 “선배가 생각하는 보도의 원칙이랄까, 그게 뭔가요?”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답했다. “당연히 가장 우선시되는 건 팩트지요. 그 다음엔 이해관계 속에서의 공정, 이데올로기에 있어서는 균형, 그리고 품위입니다. 무엇을 보도할 것인가와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에서 품위가 빠지면 안됩니다.” 저자가 갖고 있는 언론인으로서의 방향성, 속된 말로 ‘기레기’기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으로 여태까지의 커리어를 유지했고, 한 언론사의 보도담당 사장직으로 언론사를 위해 살았을 것이다.



때로는 상황에 끌려다니고,

더 본질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은 보인다.

다만, 그게 너무 늦으면 후회만이 남는 것이지만.

장면들 - 손석희


jtbc의 [뉴스9]을 [뉴스룸]으로 바꾸고, 네개의 코너를 꾸리는 과정에서 그의 보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앵커브리핑부터 팩트체크, 비하인드뉴스, 그리고 정치 외의 이야기를 다루는 문화초대석까지. 책을 읽으며 책에 실린 각 코너들을 몇개 찾아보기도 했다. 어떤이가 보기에는 편파적일 수 있지만, 내가 느끼기엔 정치를 제외하고도 다양한 내용을 뉴스에서 담기 위하여 많은 고심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가가 아닌 감탄에서의 느낌이다. 그리고 그가 직접 써내려간 마지막 날의 앵커브리핑도 참 인상 깊다. 흔들리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동그란 나침반 안에 들어있는 지남철.

그 자석의 끝은 끊임없이 흔들리는데…

그 흔들림이야 말로

가장 정확한 방향을 찾아내기 위한

고뇌의 몸짓이라는 의미…

장면들 - 손석희




또한 급변하는 미디어 시대에서 ‘살아나갈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내가 몸 담고 있는 업계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무리 TV, 라디오 등의 매스미디어가 저문다고 매년 큰 발화점이 나오지만 결국 이 전통적인 미디어들은 말 그대로 ‘전통’으로 여겨지고 그 역할을 하고 있고 그렇기에 매체로써 무시할 수 없다. 유튜브나 소셜미디어가 뜨는 시대에도 매스미디어를 적어도 ‘무시’할 수 없고, 쉽게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동아줄. 동아줄이라는 표현이 참 적절하다. 이 동아줄은 언젠가 썩게 될 수는 있어도 아직까지는 튼튼한, 미디어의 축을 잡고 있는 줄이다. 그 과정에서 언론이 취해야할 태도나 대중들이 취해야할 반응에 대한 표현들은 다양해져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언론사들도 고민이 참 많을 터이다. 물론 언론사뿐만 아니라 미디어나 광고 업계 모두, 부딪히고 있고 극복해야 할 것이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더라도 한장 너머 또 한장 펼치게 된다면 다시 또 그 ‘장면들’로 저자와 함께 돌아가 분노하고 공감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뉴스를 받아들이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어떻게 뉴스를 받아들여야하는지 생각하게 끔 해준다. 언젠가 ‘조화로움’ 속에서의 변화가 더 많은 날이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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