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퀸 - 테일러 스위프트 평전
롭 셰필드 지음, 김문주 옮김 / 영림카디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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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좋아하는 한 여고생은 그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러 집 앞 영화관으로 향했다. 이 여고생은 영화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검색창에 노래 제목을 입력하고 엔터를 눌렀다.


"Love Story"


 그렇게 여고생은 한 가수를 알게 되었다. 이 노래를 보다 더 가득히 마음에 품고 싶어서 가사를 프린터기로 뽑아 밑줄을 그으며 노래를 듣고 또 듣는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이 여고생이었던 사람은 스포티파이에 이 노래를 검색하고 재생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이 가수의 전시회에 가고 이 가수의 일대기가 담긴 책을 읽는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기타 소리로 시작되는 이 노래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설레인다. 


 그렇다. 다들 짐작했겠지만 나의 15년 전 이야기다. 외국 가수나 팝송을 거의 모르던 시절에 처음으로 내 손으로 찾아서 들었던 외국 노래다. 이 이후로 테일러 스위프트의 새 노래들을 계속 찾아 들었다. 벌써 테일러 스위프트를 좋아한 지 15년이라는 시간이 되었다니. 참 신기하다. 2011년에 금발을 한 소녀가 서울 한복판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사진이 아직도 선명한데, 그 뒤로 한국에서의 공연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종종 나를 슬프게 만든다. 아무튼, 나와 함께 커온 테일러 스위프트의 책이라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테일러 백과사전’ 같은 책이다. 읽는 동안 내 주변의 테일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테일러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한 사람이 썼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테일러가 잘했다고 옳다고만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테일러다. 그런 점이 참 좋다. 이런 점이 내가 테일러를 좋아하는 이유다. 테일러도, 테일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2006년의 테일러도, 2010년의 테일러도, 2019년의 테일러도 2025년의 테일러도 모두 테일러라고 여기며 그런 테일러를 좋아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테일러다움의 핵심이다. 자아를 꾸준히 수정하는 것이 바로 자아다. 그녀는 자기 노래를 다시 쓰고, 앨범을 리메이크하며, 이미 자신이 테일러임에도 재수정한다. 가끔은 연민을 품고 가끔은 용서를 구한다. 그녀는 어른들의 방식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점에서 자신의 옛이야기들을 되돌아본다.”


“나는 이렇게 바뀐 곡이 더, 훨씬 더 좋다. 그러나 이 변화에서 상실을 느낀다거나 젊은 시절의 유대를 배신당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래도 이해한다. 그러나 가수가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가사대로 노래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차원에서, 이것은 반칙일까? 글쎄, 당연히 그렇다. 그래서 어쩌라고? 자기 과거를 계속 어설프게 땜질하는 모습은 정말 스위프트답다.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과거의 자신이었던 소녀를 배신하는 것일 테니.”


“그러나 테일러는 (다행히도) 본인이 고수하는 본질적인 괴짜 성향을 전혀 잃지 않고이 새로운 테일러를 계속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각양각색의 모든 테일러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처럼 들린다. 이들은 모두 한 사람의 ‘까다롭지만 실존하는’ 여성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2022년 테일러가 말했듯 그녀의 음악에는 ”내 친구들과 열렬한 팬들 그리고 가장 까칠한 험담꾼들 그리고 내 인생에 등장했더나 떠나간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이렇듯 테일러는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여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덮어 쓴다. 지우지 않는다. 과거의 테일러도, 지금의 테일러도 모두 테일러니까. 나의 과거를 많이 부정하는 편이었는데, 테일러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보고 자라나면서 결국 과거의 나도 나니까 나 자신을 인정하며 더 나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 나 자신을 갉아 먹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이렇듯, 단순히 좋아함을 넘어서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하는 테일러다. 


 300쪽이 넘는 썩 얇지 않은 이 책을 읽으며 많은 태그를 붙였지만, 마지막으로 이 한 부분은 꼭 서평에 담고 싶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정의되고 싶어. 내가 미워하는 것들 말고. 또는 한밤중에 나를 괴롭히는 것들 말고.”



 나에게 테일러는 청춘이자, 사랑이자, 맑음이자, 윤슬이다. 나에게 있어 맑은 단어들을 가득 담아 테일러에게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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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트 : 음식으로 본 나의 삶
스탠리 투치 지음, 이리나 옮김 / 이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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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몸도 시린 연말을 보내고 있음에도 참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이토록 포근하고 웃음 지을 수 있었던 책은 오랜만이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나이젤이라고 하면 모두 알 것이다. 배우이자 감독, 프로듀서 그리고 작가 스탠리 투치, 그의 책 덕분이다.

스탠리 투치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나라에서 자람과 동시에 음식에 조예가 깊은 위 세대들과 함께 지내며 음식과의 관계성을 돈독히 쌓아왔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이 사람에게 음식은 중요하다는 것을 넘어 인생 그 자체였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만큼 음식에 조예가 깊지는 않고 훨씬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나에게 녹여져 있던 많은 음식들과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바로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다양한 나라에 오랜 기간 살아보지도 않았고 음식에 무지한 사람인 쪽에 가까워서 이 책을 읽을 때 수시로 메모하고 검색을 했다. 부이토니, 체폴레, 팀파노, 디제스티보 등등 모르는 것들 천지였지만 신기했고 궁금한 마음이 크게 들었다. 그 와중에서도 인상 깊게 남은 한가지는, 스탠리 투치가 카페 룩셈부르크에서 처음 접한 마티니다. 대학교를 막 졸업한 스탠리 투치는 종종 카페 룩셈부르크에서 시간을 보내며 마티니를 마셨는데, 혼자 사색을 하며 식당에 온 다른 사람들을 보며, 또는 멍하니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뭐 그런 생각들, 우리가 보통 하는 일상의 고민들. 그렇게 마티니는 그의 삶에서 빠질 수 없게 되었고, 영화 촬영 때 “트레일러-티니”라는 마티니를 좋아하는 모임을 만들고, 휴대용 마티니 키트를 들고 다녔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그저 물만 많이 마실 뿐인데…) 영화 촬영을 하다 방문하게 된 아이슬란드에 멋진 식당과 음식들이 많다는 것도 기억에 남았다. 처음 듣는 요리 이름이 가득했는데도 맛이 궁금해지고 배가 저절로 고파졌다.

특히 이야기의 초반에는 스탠리 투치가 어렸을 때 가족들과 함께 지낸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 시절 가족들과의 엄청난 크리스마스 음식들에 눈이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에피타이저와 두 가지 코스, 디저트. 그리고 크리스마스 날에는 무려 12~16인분의 팀파노라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게, 우리나라의 추억이나 다름없었다. 온 가족의 정성이 담긴 음식을 보고 있자니, 초~중학생 때가 생각났다. 그 좁은 집에서 혼자서 가족들을 위한 명절 요리를 잔뜩 만들어 내어주시던 외할머니가. 하나뿐인 손녀가 좋아한다고 직접 담가주시던 간장게장, 하얀 살이 포근하게 입을 가득 채우던 도미 조림. 혼자 고생하셨기에 지금 할머니의 몸은 성치 않지만, 가끔 그때를 상상한다. 거의 20년 전임에도 생생하다. 이야기를 써 내려간 스탠리 투치도 이런 기분이었겠지 하며 생각해 본다.

사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이 사람의 인생이 참 부러웠다. 많은 나라에서의 삶, 가족과 함께 특별한 음식을 먹은 소중한 기억이 많은 삶 등등. 그런데 책을 다 읽고 찬찬히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이런 일들은 많았다. 기억 저편으로 넘겨두었던 것을 꺼내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비록 나의 이야기를 책 한 권으로 엮어 낼 기회는 없겠지만, 나의 소중한 기억을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는 따스한 책이다. 얼어붙은 공기에 따스한 숨을 불어넣어 주는 책, 다들 한번 펼쳐보시길 바란다.

덧, 책 속 프리타타 레시피를 따라 만들어 먹으면서 이 글을 썼다. 포근하고 맛있었다. 제대로 된 프리타타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간단한 레시피인데 맛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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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 선물 가게 꿀잠 선물 가게
박초은 지음, 모차 그림 / 토닥스토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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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리만치 쉽게 잠에 드는 한 사람과, 그의 곁에서 한 잔의 차를 타는 부엉이 한 마리가 있다면 믿어지나요? 현대인의 큰 골칫거리 중 하나인 ‘불면’과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그는 오슬로입니다. 오슬로 옆에서 한 잔의 차를 내어주는 부엉이는 자자에요. 오슬로는 쉽게 잠이 드는 큰 불편함, 약점을 갖고 있지만 되려 이런 점을 발판 삼아 “꿀잠 선물 가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잠을 들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잠을 선물해 주죠.

[꿀잠 선물 가게 안내문]
0. 소파에 앉는다.
1. 부엉이 자자가 타주는 차를 마신다.
2. 그 어느 때보다 편하게 잠에 든다.
3. 부엉이 자자에게 꿈을 보여준다.
4. 꿀잠을 잘 수 있는 아이템을 추천받는다.

판타지 같은 꿀잠 선물 가게에는 판타지가 아닌, 모두에게 있을 불면의 사연을 갖고 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업무 실수로 인해 자존감도 줄어들고, 실수가 실수를 낳으며 부담감이 커진 신입사원에게는 빗자루 이불을 추천합니다. 이 이불을 덮고 자면 실수의 기억이 쓸려내려가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데, 사실 실수라는 것은 마냥 모른 척할 수는 없고 어느 정도의 실수는 성장의 자양분이 되기에 매일매일 빗자루 이불을 덮으면 안 되는 주의 사항도 있죠. 또는 매사에 불만이고 꿀잠 아이템의 효능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사용 후에 값을 받기도 하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꿀잠 아이템을 사용해 본 뒤 제값을 내러 오며 고민거리를 해결해 가면서 이전보다 좋은 밤, 좋은 잠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신기한 꿀잠 아이템은 오슬로와 자자가 함께 달 속 시장에 들러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들고 있어요. 달 속 시장에 들를 수 있는 특별한 부엉이 자자 덕분에 더욱 꿀잠에 가까워질 수 있는 아이템들을 만들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꿀잠 선물 가게에 오는 이유는 이 선물들도 한몫하겠지만, 사실 오슬로에게 고민을 털어 놓는시간을 보내며 위로를 받는 듯해요. 어떤 고민들은 다른 사람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해결이 된다고 하죠? 꿀잠 선물 가게에서는 오슬로와 자자가 그 역할을 하고 있어요.

멀리 내다보지 않아도, 내 친구가, 내 부모님이, 그리고 또 내가 갖고 있는 고민들을 안고 꿀잠 선물 가게의 문을 열어보시겠어요?

#꿀잠선물가게 #토닥스토리 #가제본서평단 #신간 #도서신간 #서평 #도서서평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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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 홈
문지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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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문지혁 소설집에는 9가지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야기의 지역적 배경은 모두 미국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이야기 속 인물들은 여러 방면에서 다양했다. 솔직히 말하면 9개의 이야기 중 몇 가지는 내 취향이었고, 몇 가지는 그렇지 않았다.

고잉홈, 두 번째로 실린 이야기.

문지혁 소설집의 이름이 된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이동하면서 참여할 수 있는 AI 실험을 진행한다. 보수까지 꽤나 짭짤하다. 주인공이 참여한 실험은 AI를 사용해서 책을 쓰는 프로젝트였고, 실험자는 그저 차에 앉아서 질문에 답을 하면 되었다. 이동하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밥도 먹고 프로젝트 담당자와 사담도 나누는데 중간중간 무언가가 이상하다. 분명 차 안이었던 것 같은데 멈춘 것 같기도 하고, 바깥 배경이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있고, 자연이 아닐 때도 있다.

이야기가 예상 밖으로 흘러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답한 내용은 진짜가 맞을까?’, ‘사실 주인공도 AI인데 실험을 당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라면 이런 실험에 겁 없이 참여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진 채 계속 읽어 내려갔지만, 주인공은 차에서 내린 뒤 다시 본인의 일상을 살아가는 듯했다. 약간은 찝찝한 마음으로 마지막 문장에 닿았는데, 영화 메멘토가 떠올랐다. 내가 본 게 진짜가 맞는지, 내가 말한 이야기가 거짓은 아닌지. 다른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읽고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해졌다.

뷰잉, 여섯 번째로 실린 이야기.

유학생인 주인공은 장례식장(뷰잉)에서 한 사람을 만난다. 이 사람의 제안으로 한 한글학교에서 잠시나마 일을 하게 되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이내 일은 마무리가 된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둘 사이의 유대감은 쌓였다. 하지만 이내 한국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종종 그때의 기억으로 지내는 듯했고, 투병 중인 그이를 찾아갔지만 만날 수는 없었다.

“어떤 관계세요?”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뭐라고 말해야 했었을까요. 동료? 사제? 친구? 지인? 세상에는 딱히 정의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별 관계는 아닙니다만.”

끝내 주인공은 그를 만나지 못했다. 간병인은 중요한 관계가 아니라면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종종 그런 관계가 있지 않은가. 뭐라 한 단어로 정의하지 어려운 관계.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이 단어가 너무 가볍다. 우연히 만나게 되어 많은 것을 공유한 사이. 단순히 공유를 넘어 꽤 소중해진 관계. 이런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하면 좋을지 생각이 꼬리를 문 이야기였다.

내가 느낀 [고잉 홈]은, 다양한 사람과 그 속의 관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하는 책이었다. 그 이야기들 중 나와 밀접한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낯선 이야기들을 읽어 내려갈 때는 생소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고잉홈 #문학과지성사 #문지혁 #소설집 #서평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신간 #도서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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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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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거미 모양을 닮은 어느 지도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결코 크지 않은 이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 아마 이 이야기를 읽어 나가며 여러분들은 꽤 여러 번 앞으로 돌아와 지도를 펼쳐보게 될 것이다.

밖으로 나가기 쉽지 않은 곳에서 모여사는 사람들에게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긴다. 식수에서 짠맛이 느껴지는 것. 이들이 지내는 곳은 터널 안이었고, 그 안으로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는 일이 생겼다. 이 사람들의 거처가 위험하다는 신호가 다름없다. 누군가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 해결책은 밖으로 나가야만 찾을 수 있다. 터널 밖은 성인 키의 2배 만한 굶주린 괴물, ‘무피귀’가 있었다. 그럼에도 ‘다형’은 가족을 위해, 또 미래를 위해 걸음을 내디딜 수밖에 없었고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못해서 무피귀를 마주치게 된다. 필사적으로 무피귀를 따돌려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삶을 포기하려던 와중에 ‘승하’를 만나게 된다. 아니, 승하가 다형의 삶을 연장시켜주었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겠다.

어느 것 하나 믿을 수 없는 낯선 곳에서 만난 승하는 다형을 진심으로 대했다. 승하가 다형을 살려주던 날, 승하의 마을에서 지내도 된다는 현실이 다가오지만 다형은 이내 거절하고 떠나게 된다. 승하 또한 다형의 여정에 함께하게 되는데, 사실 승하의 마을도 영원히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피귀의 유일한 약점은 ‘물’이었고 무피귀를 피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섬에 거처를 마련했었다. 하지만, 승하가 지내고 있는 곳에 점점 많은 무피귀들이 몰려왔다. 그렇게 새로운 터전을 찾기 위해 떠난 다형과 승하는 숲에서 또 다른 생명체를 만나게 되고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터널 103]은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피해 안전한 거처를 찾는 다형과 승하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결코 두 사람만이 끌고 가지 않는다. 다형의 사람들, 승하의 사람들, 그리고 새롭게 만난 사람들까지 이야기를 꽉꽉 채우고 있다. 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장소에 따라 연결되기 때문에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서 설마 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뒷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존재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펼쳐지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람들이 괴물을 마주하는 장면들이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괴물들의 묘사가 뚜렷하여 공포감이 배가 되기 때문에 몰입 또한 따라오게 된다. 책 속에서 처음으로 ’무피귀’라는 것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진짜 내 앞에 저 괴물이 있었더라면,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내가 다형과 같이 터널을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내가 갖고 있는 책임감으로 마을 사람들의 거처를 찾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썼을 것 같다. 터널 밖으로 나가기 전에 다른 곳과 소통 시도도 해보고, 가능하다면 준비를 더 많이 했었을 것 같지만, 하루 만에 밖으로 나가게 된 다형만큼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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