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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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거미 모양을 닮은 어느 지도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결코 크지 않은 이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 아마 이 이야기를 읽어 나가며 여러분들은 꽤 여러 번 앞으로 돌아와 지도를 펼쳐보게 될 것이다.

밖으로 나가기 쉽지 않은 곳에서 모여사는 사람들에게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긴다. 식수에서 짠맛이 느껴지는 것. 이들이 지내는 곳은 터널 안이었고, 그 안으로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는 일이 생겼다. 이 사람들의 거처가 위험하다는 신호가 다름없다. 누군가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 해결책은 밖으로 나가야만 찾을 수 있다. 터널 밖은 성인 키의 2배 만한 굶주린 괴물, ‘무피귀’가 있었다. 그럼에도 ‘다형’은 가족을 위해, 또 미래를 위해 걸음을 내디딜 수밖에 없었고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못해서 무피귀를 마주치게 된다. 필사적으로 무피귀를 따돌려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삶을 포기하려던 와중에 ‘승하’를 만나게 된다. 아니, 승하가 다형의 삶을 연장시켜주었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겠다.

어느 것 하나 믿을 수 없는 낯선 곳에서 만난 승하는 다형을 진심으로 대했다. 승하가 다형을 살려주던 날, 승하의 마을에서 지내도 된다는 현실이 다가오지만 다형은 이내 거절하고 떠나게 된다. 승하 또한 다형의 여정에 함께하게 되는데, 사실 승하의 마을도 영원히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피귀의 유일한 약점은 ‘물’이었고 무피귀를 피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섬에 거처를 마련했었다. 하지만, 승하가 지내고 있는 곳에 점점 많은 무피귀들이 몰려왔다. 그렇게 새로운 터전을 찾기 위해 떠난 다형과 승하는 숲에서 또 다른 생명체를 만나게 되고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터널 103]은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피해 안전한 거처를 찾는 다형과 승하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결코 두 사람만이 끌고 가지 않는다. 다형의 사람들, 승하의 사람들, 그리고 새롭게 만난 사람들까지 이야기를 꽉꽉 채우고 있다. 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장소에 따라 연결되기 때문에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서 설마 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뒷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존재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펼쳐지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람들이 괴물을 마주하는 장면들이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괴물들의 묘사가 뚜렷하여 공포감이 배가 되기 때문에 몰입 또한 따라오게 된다. 책 속에서 처음으로 ’무피귀’라는 것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진짜 내 앞에 저 괴물이 있었더라면,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내가 다형과 같이 터널을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내가 갖고 있는 책임감으로 마을 사람들의 거처를 찾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썼을 것 같다. 터널 밖으로 나가기 전에 다른 곳과 소통 시도도 해보고, 가능하다면 준비를 더 많이 했었을 것 같지만, 하루 만에 밖으로 나가게 된 다형만큼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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