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백 억만장자 - 성공의 방식을 바꾼 파타고니아 창업자의 삶과 경영
데이비드 겔러스 지음, 고현석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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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연, 파타고니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할 책입니다. 뉴욕 타임스의 기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 데이비드 겔러스는 이 책 <더트백 억만장자>를 단순히 성공한 기업가의 전기가 아니라, “기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인 한 인간의 삶, 지독하고도 강박적으로 무형의 철학을 삶이라는 유형의 결과로 만들어낸, 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가지 정도로 정리되는 관점은, 이 책을 통해 기업가 정신이란 무엇이며, 생각대로 산다는 것의 고단함과 부작용까지 들여다 보는 코스가 될 듯 합니다. 첫째, 이본 쉬나드는 전형적인 억만장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둘째, 파타고니아는 환경보호를 마케팅 수단이 아닌 기업 존재의 이유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셋째, 이 책은 창업주를 무조건 미화하지 않고 그의 모순과 한계까지 솔직하게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이 책을 “기업 경영서이자 환경운동의 역사”,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평전”이라 여겨질 구석이 다분한 책입니다.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들에서 마주하는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꼽자면… “우리는 우리만의 사업 방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좀 특이한 방식이긴 했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었어요.” -p.95 “이딴 걸 써야 한다면 사업을 때려치우겠다.” -p.209 “이 정부는 악하다. 나는 뒤로 물러앉아 악이 승리하는 꼴을 보지 않을 것이다.” -p.317 결론을 위해 과정을 정당화하는 비겁함을 거부하고, 그 대상이 정부이고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굽힘 없이 내질러 버리는 기세 혹은 허세가 작렬하는 인생의 단면들을 보고 있자니,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참으로 무모하기 이를데 없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독단적인 스타일은, 각 분야에서 도드라졌던 CEO들이 그러했듯, 거부반응을 낳기도 하고 거절을 당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어떻게든 그 방향성과 지속성을 추앙하는 이들을 끌어내는 선지자적 면모를 분명히 드러내기도 했다 싶습니다. 마침, 몇 개월 만에 한국을 다시 방문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일정에 모든 언론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삼겹살에 소맥을 먹었네, 잠실 야구장에서 시구를 했네, 유퀴즈에 출연을 하네 등등. 그러면서 함께 동반하는 한국 대표적 기업의 CEO 등의 모습과 그간의 여정들이 떠오르며, 누구라도 아쉬움과 부러움 같은 묘한 감정이 생겼을 듯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한국 사회의 기업 문화도 계속 떠올랐습니다. 단기 실적과 주주가치가 모든 판단 기준이 되는 시대에, 이본 쉬나드는 환경과 노동, 미래 세대를 경영의 중심에 두려고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물론 그 역시 수많은 모순을 안고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방향성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명의 억만장자 이야기라기보다 ‘어떤 기업이 좋은 기업인가’에 대한 긴 질문처럼 읽히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평소 즐겨 입고 사용하던 파타고니아 제품들에 담긴 창업주의 철학과 가치관을 알게 되면서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지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파타고니아의 로고를 볼 때마다 단순한 아웃도어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실천하려 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더트백억만장자 #데이비드겔러스 #파타고니아창업주 #이본쉬나드 #흐름출판 #서평단리뷰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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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트리거 - 넛지에서 AI까지 당신의 선택을 결정짓는 행동 유도 디자인
윤재영 지음 / 안그라픽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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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라픽스의 책들은 디자인을 닿을 내리고 있되, 돛에 들이닥치는 바람이 이끄는 곳이 어디라도 닿아보고야 마는 소재들을 아름다운 모양새에 담아내는 결과물로, 제게는 특별한 소감이 매권 쌓여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만난 <디자인 트리거>는 홍익대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 전공의 윤재영 교수의 저서입니다. 

책의 프롤로그는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 극심한 두통,가 어떻게 현재의 자신의 삶, 그래서 이 책의 출간까지 이어졌는지도,에 이르렀는지 들려줍니다.


  “사람은 알아도 행동하지 않고, 의지가 있어도 지속하지 못한다.

이 책이 더 나은 행동을 이끄는 디자인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p.15, 프롤로그 中


저자의 주 연구 분야인, 사용자 경험(UX), 인터렉션 디자인(HCI), 행동 변화를 위한 디자인을, 최대한 실례를 들어 비전공자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펼쳐보여주는데, 문과지향 공대 출신이 읽어도 흥미의 봉우리와 골짜기를 제법 흥미롭게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었습니다.


외국어 학습 앱인 듀오링고의 캐릭터 듀오의 사망 소식 관련한 꼭지에서는, 감정을 소구하는 UX라이팅을 아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웨어러블 기기와 AI를 통해 스스로를 기록해서 규정하는 셀프 트래킹은 이미 저의 일상이 포개어져 있는 현재형이고, 보상 알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현대인에게 매번 다른 모습으로 시도되는 다양한 앱들은 한참 동네 공원에 모여든 사람들의 포인트 쌓기의 습관을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이런 결론적 마지막 문장은 그저 수긍이 갔습니다.


  “결국 보상의 설계가 행동을 결정하는 셈이다.” 

  -p.74, 기대가 습관을 만든다 中


그외에도, 가치연결, 커뮤니티, 재미, 권위, 비교, 캐릭터, 손실 회피를 통해 어떻게 디자인은 우리 삶을 자극하고 끌어들이고 소비하고 생산하게 하는지를 흥미롭게 들려줍니다.


소싯적 손바닥 반정도 되는 알모양 장난감 안에서 키우던(?) ‘다마고치’의 현재형인, 스마트폰 안에서 살아숨쉬는 디지털 반려동물과 그들이 집사들을 어떻게 조종하는지를 듣다보면, 사람의 원형은 그대로인데 그 방향과 방법이 이렇게나 확장되고 성장하였구나 싶어 놀라기도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 뒤에는 다각도로 연구된 결과물이 반영된 설계된 의도가 당연히 존재한다는 것.


  “행동 유도 디자인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게 작동한다… 이러한 유동성과 가능성이 바로, 다양한 행동 유도 디자인 전략을 소개하되 그 부작용과 윤리적 고민 그리고 새롭게 등장하는 AI기반 전략까지 폭넓게 다룬 이유다.”

  -p.216, 에필로그 中


그렇게 고민은 끝이 없고, 변용은 제한이 없다 싶었습니다. 각자의 눈높이와 선호에 따라 디자인에 호불호가 달라지 듯, 인간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디자인 트리거는 그러기에 끝없이 연구되고 적용되고, 등장하고 또 사라지는 분야일 듯 합니다.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꾼을 소개받은 기분, 이 책을 완독하고 느끼는 마음이었습니다.


#디자인트리거 #윤재영 #안그라픽스

#행동유도디자인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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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안 사이코
버지니아 페이토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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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페이토의 두번째 장편소설인, <빅토리안 사이코>는 표지의 강렬한 붉은 색 위에 고운 꽃무늬 패턴과 아래쪽의 진흙 혹은 혈흔(!)이 흩뿌려진 듯한 그 시대의 복장이 먼저 시선을 잡아 끕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크림슨 피크>가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그래서 인지, 이 소설은 빅토리아 시대와 고딕 호러의 형식의 드레스를 걸치고 성큼 독자의 뇌리 안에 걸어들어옵니다. 하지만, 그 두르고 있는 외피는 읽어나가는 내내 도덕과 문명이라는 허울 아래 감춰진 인간의 본성, 위선과 폭력,을 단도직입적으로 들여다보는 느낌도 감지됩니다. 


제목이 만들어 내는 예상치도 있지만, 충격적이면서 불편한데 구석이 다분함에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향으로 자꾸만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출 수 없게 하는 중독성이 대단합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위니프레드 노티가 가정 교사로 앤저 저택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오롯이 화자인 위니프레드의 시선과 그녀가 듣고 말하는 정보만으로 진행되는, 1인칭 시점의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형식이라, 그녀의 모든 전횡이 독자 스스로의 전횡으로 받아들여지며 때로는 묘한 쾌감에, 어느 순간에 수치스럽기도 하고 또 무뎌져 버린 도덕성을 느끼기도 합니다. 


위니프레드는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악인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분노와 계급적 모순의 열매 같은 괴물에 가깝다 싶습니다. 특히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겹쳐지는 장면들도 종종 만났습니다. 


경제는 불안하고, 청년들은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며, 정치권은 서로를 향한 적대만 키우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정상적인 척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저택 안에서 벌어지는 광기는, 의외로 지금 우리의 현실과 멀지 않아 보였습니다. 겉으로는 품위와 질서를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분노와 불안이 언제 터질지 모를 정도로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죽음은 어디에나 있다.”

 -p.11, 서막 中


그래서 이 문장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선언처럼 읽혔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펼쳐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이 되어버린 빈부의 불균등으로 내몰린 죽음들이 그저 생각날 수 밖에 없는. 


 “모든 선한 사람, 모든 악한 사람. 모두 다 환희를 누릴 자격이 있는 거 아냐?

 -p.247


섬뜩해 하다가 키득이며 그녀의 악행에 서사를 부여하고픈 유혹을 느끼는 몇 몇 장면에서는, 묘한 카타르시스마저 찾아 옵니다. 이래도 되나 싶은 묘한 마음으로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순간들.

픽션이라는 가면을 쓰고 화려한 예절과 제도의 인간사를 조롱하는 길티 프레져.


<빅토리안 사이코>는 단순한 스릴러도, 단순한 고딕 소설도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의 시대를 살아내는 현대인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검은 거울 (Black Mirror)에 다름 아닙니다. 불황과 양극화, 정치적 피로감 속에서 읽고 있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이 소설이 겨누고 있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는 생각. 그래서 독자는 웃으면서도 불편하고, 공포를 느끼면서도 자꾸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매력 혹은 마력. 


아마, 버지니아 페이토의 신작 소식을 자꾸만 검색하게 될 것 같습니다. 


#빅토리안사이코 #버지니아페이토 #배지은옮김 #현대문학

#빅토리아시대 #고딕호러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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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차 쓰고 복수 좀 하고 오겠습니다 나비클럽 소설선
홍선주 지음 / 나비클럽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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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해놓고 퇴근해서 집에 가도 잠이 온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응, 헨리야.

말 좀 들어보자, 어디 한번.

도대체가 말이다. 꼬박꼬박 월급 받는게 미안하고 막 그렇지 않냐고?

난 미안할 거 같은데…”

 - 20XX.05.01

근로자의 날에 사무실 대청소로 출근시켜 놓고 한다는 말이.


 “메일을 보내면 전화해서 잘 받으셨는지,

첨부파일은 잘 들어가서 제대로 열리는지

확인을 왜 안하세요?

보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받는 게 중요한거라고,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가 이해하는게 중요하다고

내가 몇 번이나 더 말해야 하나요?

네, 그렇게 말 안하고 듣기만 하면,

내 말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를

내가 어떻게 아냐고요?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16년 동안

그렇게 공부하셨는데 언제까지

더 교육을 받으실라고요?”

 - 20XX.12.24

크리스마스 이브날 퇴근시간을 한참 넘기며 2시간 째 설교 중



위의 두 장면. 과장없이 토시 하나 바꾸지 않고 저의 면전에서 다양한 포즈로 단검을 날리 듯 쏟아낸 X상사들의 대사들 중, 그나마 순한 맛 버전들입니다. 


직장생활은 뭐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다른 방도 없이 성실히, 최선을 다해서 해내야만 하는 과업이었습니다. 그럭저럭 제 역할도 하고, 롤모델 같은 선배들도 가끔 만났지만, 언제 어디서든 특정 비율의 또라이, 꼴통 상사는 상수로 존재했습니다. 그건 정말 과학입니다.



홍선주 작가의 신작 <반차 쓰고 복수 좀 하고 오겠습니다>는, 잊고 지냈던 혹은 다시는 떠올리고도 싶지 않은 이름과 얼굴들을 강제 소환해내는 무섭고도 귀여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혹은 아스라이.



꼰대나 라떼는 정말 애교스럽게 상사들을 미화한 거고, X상사를 조수석에 태우고 끊임 없이 쏟아내는 말들에 심장이 조여오는 거의 공황상태를 경험하다가, 잠시 잠든 사이에 정말이지 한적한 시골 국도길을 가다가 논두렁으로 급하게 핸들을 틀어서 사고를 내고 싶게 만들던 그 숱한 순간들은 정말이지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을 도리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담긴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신라문구-대동물산-토닥-Cho’s Choice를 거치며, 시간 순은 아니고, 최혜주의 리딩 롤로 여기 저기 부서들의 알량한 그들이, 다른 모양, 같은 빡침 혹은 심드렁으로 뭐라도 해서 복수하거나 탈출하고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나로 이어지지만 또 다르게 나뉘어 흐릅니다. 당연히 작가의 전작들에서 경험했던 발직하지만 정이 가고,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게 되고야 마는 인물들과 이야기들이 종횡무진 직장과 삶을 직조해냅니다. 

앉은 자리에서 반나절만에 관통해버린 재미 하나는 완전 보장!


 “정성연이가 아직 세상사를 모르네. 내가 이 회사 직원이니까 어머님이 내 상사이신 거지, 만약 퇴사하면 그냥 친구 엄마일 뿐이다? 혹시나 나중에 너랑 절교라도 할라치면, 농담, 어쨌든 그러면 동시대를 사는 그냥 어떤 아줌마야. 그렇게 생각하면 거리낄 게 뭐가 있니? 안 그래?”

 -p.204, <회장님의 아들은 누구인가> 中



 “혜주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떴다. 이런 상황을 즐기는 자신이 너무 변태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혜주에게 최고의 인생이란 바로 이런 순간이니까.”

 -p.275, <야밤, 회식 차량을 쫓는 경찰차> 中



남극 문자의 떡밥을 신선하게 회수하며 마무리하는 마침표 같은 도돌이표는, 이 소설선의 경쾌한 리듬으로 읽히며 ‘재미’의 최혜주가, 전장에 다름 아닌 회사라는 공간이라지만 로또 1등에 당첨되고도 기어이 다녀야 할 곳이라 설파하는 그녀의 진심(!)에 수렴하는 느낌이 들어 묘하게 끝맛이 개운하였습니다. 


연말연시에 휴대폰의 연락처를 정리할 때 늘 고민하는 이름들, 그래도 살아남아 있는 그 X상사들을 가끔 떠올려볼까 하다가, 그건 하지 말자, 굳게 다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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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미풍 -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위화 지음, 백도라지 옮김 / 푸른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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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이란 뜻의 ‘山谷微風 ‘

이 책은,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의 산문집으로는 처음 만나는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위화 작가를 처음 만난 건, 장이모 감독의 영화화 했던 <인생>의 원작자로 였습니다. 그렇게 찾아본 소설 <인생>은 그 질곡진 인생을 꾸덕꾸덕하게 문장으로 담아낸 필견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허삼관 매혈기>, <형제>에 담긴 인간사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읽고 나서도 내내 맴도는 이야기로 제게 남아있습니다. 



  “아들이 태어나고 나서 나는 매일 생생한 감각을 느꼈다. 

아들의 몸과 목소리가 늘 존재했고, 눈을 뜨고 있거나 아들에게 가까이 가면 바로 아들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나 자신에 대한 느낌보다 훨씬 뚜렷했다.”

  -p.204


예의 작가의 작품들에서 드러냈던 생각이 어떻게 그의 삶의 주변부, 중심부를 두루 거쳐서 흘러나왔는지를 짐작케하는 이야기들로, 이 책을 추려져 있습니다. 


특히, 아들이 태어나 자라는 것을 지켜보며, 아버지가 되어 자식을 돌보고, 또 부모를 섬기는 아들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들과 생각들이 드러나는 부분들에선 묘하게 몽글한 감정이 들곤 했습니다. 아마도, 허구의 세계와 인물, 이야기를 지어내는 소설가의 삶을 저며낸 에세이들은, 그의 소설 작품과 불가분이게 겹쳐지고 함께 읽힐 수 밖에 없기 때문일테지요.


저의 만 30세가 되던 생일날, 첫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더욱 제겐 선물 같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생전 처음 맞닥드렸던 상황들에서, 선물은 숙제가 되었습니다. 모든 걸 기억하고 기록하고 정말 최선과 최고로 하는 것이 뭔지를 참 많이, 그 짧은 순간들 속에서, 고민하며 지나온 기억입니다.

덕분에 둘째 때는 나름 수월(?)하기도 했고 많이 내려놓기도 했고요.




또다른 이야기는, 영화나 음악, 같은 문화에 대한 체험과 생각을 들려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시대적으로는 거의 20년 정도 앞선 세대였고, 체제적으로도 다른 중국과 한국이었지만, 무척이나 유사한 분위기와 생각들을 겪고 느끼며 살았구나 했습니다.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더니 영화를 좋아하게 되어 게임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하루는 가방을 메고 하교한 아들이 비디오 CD 한 장을 내밀더니 나와 천홍에게 말했다. 

“이거 좋은 영화니까 한번 보세요.” 우리가 영화 제목을 물어보니 알려주었다. 

“<제7의 봉인>이에요.”

  -p.92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 인식하고, 그렇게 형제와 부모, 부부와 자식으로 확장되고 그 안에서 훌륭하게 만들어진 사회적 존재는, 그 울타리를 넘어서의 삶 속에서도 그렇게 살아질 수 있다고, 저는 대체로 믿는 편입니다.


Life goes on.

이 책의 여러 에세이 중, 제게 가장 각별했던 건 ‘바다를 보러 가다’ 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 그리고 형과 부모 세대와의 연결이 훗날의 관계나 사정이나 태도, 생각들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그 관계 안에 맴도는 삶이라는 향기를 속살거리듯 들려줍니다.


  “지금, 부모님이 또 바다에 가자고 하니, 그때 우리가 아버지에게 바다에 데려가달라고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부모님이 우리에게 데려가달라고 한다.

그리고 바다는 여전하다.”

 -p.184


그렇게 어떤 그리움과 그 추억들은, 

색이 바래기도 다르게 기억되기도 하지만 

내내 각자의 마음 한켠에 

여전히 남겨지는 듯 합니다.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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