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안 사이코
버지니아 페이토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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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페이토의 두번째 장편소설인, <빅토리안 사이코>는 표지의 강렬한 붉은 색 위에 고운 꽃무늬 패턴과 아래쪽의 진흙 혹은 혈흔(!)이 흩뿌려진 듯한 그 시대의 복장이 먼저 시선을 잡아 끕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크림슨 피크>가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그래서 인지, 이 소설은 빅토리아 시대와 고딕 호러의 형식의 드레스를 걸치고 성큼 독자의 뇌리 안에 걸어들어옵니다. 하지만, 그 두르고 있는 외피는 읽어나가는 내내 도덕과 문명이라는 허울 아래 감춰진 인간의 본성, 위선과 폭력,을 단도직입적으로 들여다보는 느낌도 감지됩니다. 


제목이 만들어 내는 예상치도 있지만, 충격적이면서 불편한데 구석이 다분함에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향으로 자꾸만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출 수 없게 하는 중독성이 대단합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위니프레드 노티가 가정 교사로 앤저 저택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오롯이 화자인 위니프레드의 시선과 그녀가 듣고 말하는 정보만으로 진행되는, 1인칭 시점의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형식이라, 그녀의 모든 전횡이 독자 스스로의 전횡으로 받아들여지며 때로는 묘한 쾌감에, 어느 순간에 수치스럽기도 하고 또 무뎌져 버린 도덕성을 느끼기도 합니다. 


위니프레드는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악인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분노와 계급적 모순의 열매 같은 괴물에 가깝다 싶습니다. 특히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겹쳐지는 장면들도 종종 만났습니다. 


경제는 불안하고, 청년들은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며, 정치권은 서로를 향한 적대만 키우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정상적인 척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저택 안에서 벌어지는 광기는, 의외로 지금 우리의 현실과 멀지 않아 보였습니다. 겉으로는 품위와 질서를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분노와 불안이 언제 터질지 모를 정도로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죽음은 어디에나 있다.”

 -p.11, 서막 中


그래서 이 문장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선언처럼 읽혔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펼쳐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이 되어버린 빈부의 불균등으로 내몰린 죽음들이 그저 생각날 수 밖에 없는. 


 “모든 선한 사람, 모든 악한 사람. 모두 다 환희를 누릴 자격이 있는 거 아냐?

 -p.247


섬뜩해 하다가 키득이며 그녀의 악행에 서사를 부여하고픈 유혹을 느끼는 몇 몇 장면에서는, 묘한 카타르시스마저 찾아 옵니다. 이래도 되나 싶은 묘한 마음으로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순간들.

픽션이라는 가면을 쓰고 화려한 예절과 제도의 인간사를 조롱하는 길티 프레져.


<빅토리안 사이코>는 단순한 스릴러도, 단순한 고딕 소설도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의 시대를 살아내는 현대인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검은 거울 (Black Mirror)에 다름 아닙니다. 불황과 양극화, 정치적 피로감 속에서 읽고 있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이 소설이 겨누고 있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는 생각. 그래서 독자는 웃으면서도 불편하고, 공포를 느끼면서도 자꾸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매력 혹은 마력. 


아마, 버지니아 페이토의 신작 소식을 자꾸만 검색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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