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삼국지 -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즐기는 신개념 삼국지
tvN STORY 〈신삼국지〉 제작팀 지음, 김진곤 감수 / 프런트페이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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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아느냐고 묻는다면 안다고 답할 사람이 아마도 열에 아홉은 될 듯 합니다. <삼국지>만큼 우리나라에 두루 알려진 중국 작품은 없다는데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하겠지요. 물론  <서유기>, <수호지>, <공자>, <손자병법> 정도가 있긴 한데, <삼국지> 만큼 그 등장인물이나 사건들 혹은 사상을 섭렵하고 있지는 못할 듯 합니다. 하지만 또 <삼국지>를 ‘잘’아느냐고 묻는다면 어떨지…?


제가 처음 우애 좋은 삼형제, 유비, 관우, 장비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텔레비전에서 방영했던 KBS 인형극 <삼국지>였지 싶습니다. 무대 아래쪽에 사람들이 숨어서 짝대기에 팔,다리와 머리 등이 달린 인형들을 조종해서 성우들의 목소리를 입힌 그런 인형극 말입니다. 


그리고 계몽사라는 출판사에서 나왔던 ‘어린이세계문학전집’. 뭐 이런 이름의 전집 류의 한 권으로 만난 <삼국지>는 인형극에 비해 접근성은 떨어졌지만, 삽화와 문장으로 그려내는 상상력이 주는 재미를 알아가던 시절의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던 기억입니다. ‘도원결의’, ‘적벽대전’ 이런 사건들이 뇌리에 콱 박혀버린 때가 아마도 이때였을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중학교 즈음에 만난 <삼국지>는 PC게임의 모습이었습니다. 전략 시뮬레이션 스타일의 게임이었는데 직접 삼국지 속 인물들을 전략적으로 이용해서 게임을 진행해내는 남다른 쾌감이, 이전의 슈팅 게임이나 파이팅 게임들과는 다른 즐거움에 눈뜨게 해주었던 추억이 뭉게뭉게 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을 지나며 만났던 이문열 작가와 황석영 작가의 평역 버전과 고우영 작가의 만화 <삼국지>도 기억에 남는 삼국지들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수많은 인물들과 세세한 사건들은 책을 덮을라치면 여지없이 휘발되어버린 걸로 봐서, 제게 <삼국지>는 잘 안다고 착각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여러 버전을 흥미나 유행에 따라 읽거나 경험했지만 정작 그 깊이와 통찰을 가지기에는 작품 자체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유튜브 컨텐츠로 이런 저런 ‘삼국지’ 를 만났지만 이내 싫증이 나곤 했는데, 우연히 아들과 보게된 침착맨이 썰을 푸는 컨텐츠는 일단 재미있고, 또한 인물과 이야기의 핵심을 딱딱 짚어주는 것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새로운 삼국지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tvN에서 방영하는 <신삼국지>를 만났습니다. 인상적인 즐거움을 보증하는 침착맨이 진행을 하고, 패널로 배우 여진구와 강한나, 그리고 큰별 최태성이 함께 그야말로 ‘새롭게’ 삼국지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게 해주는 <신삼국지>였습니다. 그 덕에 중간중간 자료화면으로 나왔던 중드 <삼국지>를 넷플릭스에서 찾아서 온가족이 1회 부터 정주행을 시작하게 했던 그 프로그램!


한회도 빼지 않고 어느 회차는 본방사수를 하며 봤던 그 프로그램이 책으로 태어났다길래 뭐 방송 내용을 재탕하는 거 아닌가 하며 약간의 우려와 나름의 기대를 가지고 책을 받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버렸습니다. 너무 재미있게 보았던 프로그램이 활자화되어 보여지는데 이게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고 TV에서 영상과 음향으로 전달받은 정보가 더욱 가지런히 읽혀져서 새삼 놀랐습니다. 더 재미있게 각색된 듯 느껴졌다고 하는 편이 맞겠습니다. 방송작가들의 힘이라는 걸 느껴버린 것이지요.

번외편 처럼 나왔던 마지막 회차의 ‘기묘한 삼국지’를 책의 마지막에 배치하면서 역시 잔재미를 놓치지 않는 센스까지, 너무 즐거운 독서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습니다. 물론, tvN의 <신삼국지> 시즌2를, 그리고 프런트페이지의 <신삼국지 2>의 출간을 기대하게 하는 ‘삼국지’. 그 매력적인 컨텐츠의 무한변신은 언제나 옳다 싶습니다. 



#신삼국지 #tvNStory #김진곤감수 #프런트페이지

#침착맨 #여진구 #강한나 #최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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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란 이름의 기억 테익스칼란 제국 1
아케이디 마틴 지음, 김지원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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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히트는 자기 몸과 짐을

간신히 실을 만한 비눗방울 같은

소형선을 테익스칼란 제국의

중심 행성이자 수도인 ‘시티’에

착륙시켰다.”

 -p.18


역사가, 기후 정책 분석가, 도시 계획가 이면서 SF 작가인 아케이디 마틴. 이 책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가 창조해낸 광대한, 그저 그 이야기의 첫 권을 읽은 것 뿐이지만 아마도, 우주적 세계관의 시작을 담은 <제국이란 이름의 기억>은, 예상했던 대로 책의 절반에 이를 때까지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과 지명들, 역사적 사건들과 생소한 개념들의 정글에서 길을 잃고, 그저 책의 마지막 장까지의 남은 페이지를 두께로 가늠하며 허덕였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두발을 테익스칼란 제국의 지면에 딛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정확히 책의 절반을 지나면서 였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를 표방하는 이 소설의 1권만으로 ‘대서사시’임이 분명할 ‘테익스칼란 제국 시리즈’의 전체를 이해하거나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이전 세대의 작가들이 창조해낸 세계관을 독자에게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왜 그토록 두꺼운 벽돌책들로 출간해야 하는지 다시금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에서 부터 창조해낸 인물과 사건은 기본이고, 이들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의 역사, 문화 그리고 새로운 언어들까지. 제국을, 우주 대서사시를 펼쳐보이기 위해서는 그렇게 켜켜히 쌓아낸 고밀도의 정보들이, 그 이야기의 밀도와 그 밀도가 주는 깊이있는 재미에 까지 독자들의 손을 이끌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그 주변 이야기들이 그러했고,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가 그래했으며, 프랭크 허버트의 <듄> 시리즈가 그러했습니다. 물론 현대적 의미의 스페이스 오페라의 쌍둥이 형제라고 할만한 <스타워즈>와 <스타트렉>이 지금까지 그 이야기의 확장과 중첩을 꾀하고 있음이 또한 그러함의 증거라 하겠습니다.


자신이 창조해낸 세계를 친절하게, 혹은 장황하게, 펼쳐보이려는 욕심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것을 방지하는 살인사건과 이를 둘러싼 스릴러적 요소, 그리고 기억과 그 기억의 전달 사이의 불협으로 인한 긴장감 등이 제법 역할을 하며 이야기를 따라가게 해줍니다. 그리고 조금은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문장이 감정이 아니라 지적 유희라는 측면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떠올리게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목에 ‘이름’이 들어가는데 그걸 염두에 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 책의 원제는 ‘A Memory Called Empire’, 즉 <제국이라 ‘불리는’ 기억> 정도로 번역될텐데, ‘이름’을 넣어서 번역했으니 어쩌면..)


현재까지 ‘테익스칼란 제국 시리즈’는 2권 <평화란 이름의 폐허>까지 국내 출간된 상태이며, <Rose / House>는 해당 시리즈와 연관이 없는 개별 장편으로 보입니다. 작가의 테익스칼란 제국 이야기는 또 이후 어떻게 이어질지, 또 어떤 세상의 모습을 담아서 들려줄지 기대됩니다. 일단은 2권 <평화란 이름의 폐허>를 먼저 찾아봐야겠습니다.


  “테익스칼란 도시, 테익스칼란 언어,

테익스칼란 정치가

그녀를 온통 감염시킨 상황에서,

마히트 디즈마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그녀에게 걸맞지 않은 이마고,

빠르게 자라는 균류가 침입하듯이

그녀 안에서 자라나는 기억과

경험의 덩굴처럼.”

  -p.362


#제국이란이름의기억 #아케이디마틴 #김지원옮김 #황금가지 

#테익스칼란제국 #테익스칼란제국시리즈 

#휴고상 #SF소설 #스페이스오페라 #스릴러 #시와정치 #언어와문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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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딩 - 그곳에 회색고래가 있다
도린 커닝햄 지음, 조은아 옮김 / 멀리깊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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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회색고래를 찾아 떠나버렸습니다. 피검사 결과를 모니터에 띄워두고 한참을 마우스 스크롤을 하던 의사는 별거 아닌 듯 몇가지 항목의 수치가 경계에 있으며, 먹고 마시는 것을 조절하고 심장이 쿵쾅 거리도록 매일 운동을 꾸준히 하기만 하면 신경쓸 거 없다 말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나름대로 열심히 의사가 그어준 선을 좇아왔습니다. 


여전히 혈압이 심각하지는 않은데 경계에 계시고요…

그래서 시작한 단식에 가까운 절식. 몇 일만에 3 킬로그램이 사라졌고 묘한 카타르시스도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몸살 기운과 변비로 이틀 정도 헤메고 다녔습니다. 잠시 회색고래를 본 것도 같습니다. 그 노랫소리를 들은 것도 같습니다. 


도린 커닝햄이 살아낸 전쟁 같은 시간의 기록, <사운딩>의 원제는 <Soundings>입니다. 한순간에 나락을 경험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세워내는 힘을 차곡차곡 마주하고 연대하고 또 넘어지지만 그렇게 또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로스앤젤레스 입국 심사장의 남자 직원이 나를 노려보다 

맥스를 내려다보고는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다.”

  -p.19, 로스엔젤레스 : 세상은 잠시 기다려 줄 것이다

  -북위 33도 59’ 40”  서경 118도 28’ 57”


인생은 예측불허이고 맥스도 그러함이었습니다. <사운딩>은 그런 저자의 인생과 그리고 맥스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디인지를 매 챕터마다 지명과 좌표로 표시합니다. 모든 페이지의 좌측, 그러니까 쪽수 페이지에는 지명이, 그리고 우측 홀수 페이지에는 책의 물리적 쪽수와 함께 좌표가 지리적 좌표인 위도와 경도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매 챕터가 펼쳐지는 물리적 위치이면서, 저자 본인의 인생의 좌표를 매 페이지마다 각성하며 나아가고 있는 듯 합니다.



  “훌륭한 꼬마 여행가이긴 하지만,

이렇게 어린아이를 데려오다니 놀랍네요.” 

주디가 말한다.

  -p.153, 코르테즈해 : 두려움은 사랑만큼이나 압도적이다

  -북위 26도 0’ 53”  서경 111도 20’ 20”


매 페이지 마주하는 좌표가 어느새, 책을 읽고 있는 나는 어디에 있는지 되묻고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책 속에서 물리적 공간과 시간을 점유하고 있는 이야기와 책 밖에서 물리적 공간과 시간을 점유하는 독자가 묘하게 긴장감 아닌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은 그렇게 찾아왔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그랬습니다. 

‘난 여기서 이렇게 살아내고 있는데, 책 읽는 당신, 당신은 거기서 뭐하고 있소?’하고 말입니다.



  “그곳에서 나는 

빙하와 공허함, 치열함과 가까워졌고 

흰 설월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나는 그 안에서 살면서 

그것을 호흡하고 그것을 마셨다.”

  -p.313, 그레이셔 베이 : 우트키아빅의 빙하는 내 안에 있다 

  -북위 58도 27’ 3”  서경 135도 49’ 21”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챕터 ‘집’에서는 좌표가 더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의 자신과 맥스가 어디 있는지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그저 알고 있노라 선언하는 듯 합니다. 그렇게 선언할 수 있게 해준 ‘소리들’이 있었노라 고백합니다. 그리고 물어보는 듯 합니다. 


‘당신이 들었던 소리들은 무엇인가요?

당신을 이끌어온 그 소리들을 기억하나요?’



#사운딩 #도린커닝햄 #조은아옮김 #멀리깊이

#그곳에회색고래가있다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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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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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

정말 이 책은 이 말의 현신이라 할만 합니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20인이 ‘자신의 수상작을 확장해내서 만든 이야기’라는 조건으로 엮은 앤솔러지입니다. 그러니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세월이 만들어낸 작가 자신과 세상의 변화의 간극 만큼이나 이야기의 폭과 깊이도 쌍전벽해 일테지만, 작가들의 수상작을 읽었다고 해도 어느 것 하나 명징하게 기억나는 것이 없으니 어떻게 헤아릴 도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저 지금 들려주는 이야기만으로 어떤 실마리를 찾는 수 밖에 없고요.


  “홈런을 맞고도 웃을 수 있는 야구와 

안타를 쳐야만 재미를 느끼는 야구. 

최선을 다한 것에 만족하는 야구와 

최고가 되지 않으면 괴로워지는 야구, 

낯선 야구.


나도 저런 야구를 할 수 있을까?”

  -p.98, 김유원 <힌트>



  “옥이요, 나 옥이.

  형님, 나 잊지는 아니하였지요?”

  -p.121, 박서련 <옥이>



중학교 야구팀과 리틀 야구단의 친선경기에서 만난 두 야구를 다루는 김유원 작가의 <힌트>와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한 박서련 작가의 <옥이>가 제일 마음에 남는 이야기들 이었습니다. 전혀 다르지만 두 이야기는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이야기하는 형식에서 닮아있긴 합니다. 어찌되었건 우리네 삶은 그렇게 관계들로 이루어져있고 그 관계들 중 어떤 두드러지는 관계를 통해 스스로의 삶이 반추되고 나아가니, 어찌보면 거울 같은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물론, 평소 애호하는 강화길, 장강명, 심윤경 작가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겨레문학상 30주년 기념답게, 작가들의 현재를 들여다보는 ‘힌트’가 되어주는 즐거운 기획이었다 싶습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되 즐기는 것까지 이르는 야구팀의 중학생의 마음처럼, 한겨레문학상도 그런 지향점을 다시금 새롭게하고 나아가는 새로운 항해가 더없이 무탈하길 바래봅니다.


#서른번의힌트 #한겨레문학상 #한겨레문학상30주년 #한겨레출판 #말뚝들

#도서제공 #리뷰단 #서평단 #서른명의리뷰단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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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아
김필산 지음 / 허블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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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김필산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났습니다. 이번 책이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기도 하니 샘샘입니다. 아무튼 첫만남은 그렇게 긴장으로 시작하지만, 이야기는 그 긴장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고 결국엔 무장해재 시키고야 말았습니다. 이책은 그러니까 그런 불가역의 엔트로피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모든 미래가 결정론적으로 정해져 있고 변화하는 건 없다고? 그건 비겁한 결과론적 해석일 뿐이다. 비록 역사가 바뀌지 않더라도 난 순간순간 미래를 직접 직조해 나가고 있다.”
-p.327

컨셉만으로 호기심을 온통 빨아들이는 <엔트로피아>는, 2200년대 대한민국에서 다시 살아난 이가 기원전 100년의 로마 제국의 시대까지 역행해서 살아낸 이야기입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적 불가역을 모두 거스러며 이야기를 이끄는 이는, 선지자이자 전도자의 모습으로 시대와 장소를 오가며 그야말로 ‘미래를 직접 직조해 나가는’ 사건들을 뒤쫓습니다. 시간은 무엇이고, 나이듦과 그 무수한 관계들, 역사적 사건들과 이와 연결된 사건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류의 역사일진대, 이를 거스르는 인간의 말과 행동은 또 어떻게 그 역사의 원점으로 향해가고…

”그렇습니다. 저는 태어난 날짜도, 부모님도 알지 못합니다. 제게 있어서 태어난 날은 고려에서 노인으로서 처음으로 세상을 기억한 순간이며, 제 실질적 어버이는 노인인 저를 보살피며 고려식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준 고려인입니다. 제게 인생이란 노인에서 젊은이로, 젊은이에서 아이로 되돌아가는 생애입니다.“
-p.76

”하지만.... 그대의 말은 언제나 그랬소. 미래는 정해져 있다. 역사는 쓰인 그대로 흐른다.... 그렇다면 대체 그대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이오?“
-p.115

한 인간의 역주행 인생을 통해 작가는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고 폼을 잡으려나 했는데 이 예상을 깨부수며 사건과 인물을 주무르며 독자들을 쥐락펴락하며 묘한 카타르시스로 향합니다. 그렇게 통속소설로 세상을, 시간을, 역사를 조금은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슬쩍슬쩍 건네는 말 뽄새가 또 촌철살인입니다. 첫 장편이라는 기세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내내 이어지는 느낌이 신선했습니다.

“미래란 결정되어 있고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밝혀진지 오래다. 그럼 자유의지란 허상인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유의지는 존재한다. 과거에 난 내 자유의지에 따라 어떤 선택을 했고, 현재가 바로 그 선택에 의해 형성된 미래이다.”
-p.241

지금 이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이책을 읽도록 과거의 누군가가 한 작은 결정들이 지금이라는 미래의 이 순간을 결정내렸으려나, 하는 어쭙잖은 상상을 하노라니, 폭염이 온천지에 확산한 좀비 바이러스처럼 사람들을 무기력과 민감함으로 손선풍기와 에어컨의 노예처럼 만들어버린 작금의 현실은 또 어쩌면…

“그리고 마침내 선지자는 어머니의 몸속으로 돌아갔다.”
-p.376


#엔트로피아 #김필산 #허블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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